그리고 더 넓게 채워지는 마음
작은 메모를 모아 글이 되고, 글이 모여 책이 된다. 하지만 모든 원고가 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출간이라는 결실 뒤에는 수많은 고민과 디자인, 마케팅이라는 현실적인 산을 넘어야 한다. 이 치열한 과정 속에서 문득, 오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저 사는 이야기만 도란도란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하루하루를 가엽게 버텨내던 그 시절에 '친구'라 불리었던 사람들.
당시 내가 한 계단을 오를 때 그들은 두세 계단쯤 위에 있었다. 나를 보면 반가워했고, 진심으로 환대해주었다. 먼 길을 운전해 달려가면 밥이며 술이며 사 먹이던 그들의 호의에 나는 감동했고 행복했다. 지금도 그 시간만큼은 고맙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이어진 우정을 꽤 오랫동안 자랑하며 지내왔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를 올려다볼 것도, 내려다볼 것도 없는 각자의 길. 나는 계속 책을 읽고 만드는 일을 했지만, 그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나의 첫 책인 그림책이 나왔을 때 축하한다는 말은 건넸지만, 정작 내 책을 사거나 읽은 이는 없었다. 멀리 있으니 모를 거라 생각했겠지만, 내 책의 제목도 내용도 모르는 그들 앞에서 나는 가슴을 관통하는 휑한 허망함을 느꼈다.
비싼 술값은 치르면서도 친구가 쓴 책 한 권에는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관계.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관계임을 깨닫고 나는 조용히 마음을 비워냈다. 친구가 없는 것일까, 잠시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15년쯤 연락이 뜸했던 옛 직장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상 속에서 내가 올린 소식들에 조용히 하트만 눌러주던 이였다. 멋지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응원하고 싶고 보고 싶노라고.
그 한마디에 눈물이 날 만큼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좁은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 누군가를 들이고 빼며 스스로를 외롭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내 삶을 격려해주는 수많은 얼굴이 떠오른다. 해성 작가님, 형정 피디님, 대진 작가님, 민수 작가님, 현옥이, 은아 선생님, 미연이, 정미 쌤, 인숙 쌤, 경란 쌤, 은진 작가님, 하늘 작가님, 인옥 작가님…. 헤아리다 보면 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만큼 참 많은 이가 내 곁에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 없던 이들에게는 미련 없이 마음을 비우기로 한다. 대신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싶다. 먼 길 한걸음에 달려와 시간을 나누어주었던 소중한 인연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쉰을 앞두고 나는 친구라는 의미를 다시 정의한다. 나는 꽤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따뜻한 지지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