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만한 관계

흘려보낼 인연, 지켜낼 사람.

by nemo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믿게 되는 사람이 있다. 긴 시간의 경험들이 각자의 삶을 빚어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얼마나 많은 다름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우리의 전부가 아니라 극히 일부의 '얼' 몇 가지가 같은 결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그것은 뜨거운 '사랑'과는 또 다른 의미의 깊이일 것이다. 영혼의 주파수가 맞닿는 그 찰나의 경험은 희귀하기에,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란 더욱 어려운 법이다.

서서히,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은 누구의 특별한 잘못 때문이 아니다. 계절이 바뀌듯 관계에도 자연스러운 멀어짐이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리 애쓰고 붙잡아도 결국 멀어지는 것이 관계의 진리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떠나가는 것을 억지로 움켜쥐기보다 바람에 돛을 맡기듯 흘려보내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그럴만한 이유는 이미 우리 내면이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관계를 흘려보낼 수는 없다. 내 삶에는 분명 '지켜내야 하는 존재'가 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나의 귀한 시간을 떼어내어 함께 쓰는 것, 거기에는 언제나 헌신과 노력이 수반된다.

진짜 소통을 원한다면, 그 헌신은 '섬세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거친 단어가 아니라 정성껏 다듬어진 작은 질문을 건네고, 상대의 목소리에 섞인 아주 미세한 떨림까지도 집중하여 들어주는 '경청'의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이를 '공감적 경청'이라 불렀다.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소중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환대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깨닫게 된다. 함께 있으면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사람, 나의 못난 모습까지도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에게는 나를 떼어주는 헌신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음을.

오늘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과 깊이 뿌리 내린 인연을 가만히 분류해본다. 흘려보내야 할 것들에는 담담한 작별의 인사를, 지켜내야 할 것들에는 "요즘 마음은 어떠니?"라는 섬세한 질문을 건네본다. 관계의 숲을 가꾸는 일은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이들을 지켜내는 숭고한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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