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이 전주

by 김기건

오랜만에 전주를 방문했다. 약 2년 만이던가.. 전주역은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몹시 북적거렸다. 미리 도착해 있던 친구의 차에 탑승해서 순대국밥을 먹으러 가면서 남자 셋의 전주 여행은 시작됐다.


오랜만에 1박 2일로 놀러 가자는 대학 친구들의 제안에 부산, 천안, 순천, 춘천 등등 여러 후보지가 나왔지만 생각만큼 남자들끼리 여행하고 싶은 도시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기차로 방문하기도 수월하고, 맛집도 많을 것 같은 전주를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전주 여행을 계획하기도 녹록지 않다. 전주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의 약 7할은 '전주 한옥마을'에 대한 정보뿐. 이미 각자 아내(혹은 여자친구)와 전주 한옥마을을 방문해 본 우리들은 썩 내키지 않는다. 결국 암묵적으로 '먹고 마시는 전주 여행'을 모토로 우리는 1박 2일의 서막을 열었다.


피순대가 들어간 순대국밥을 먹고, 한적한 카페를 찾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카페가 있는 동네를 좀 걸어보다가 차를 타고 예약해 둔 숙소에 입실한다. 어렸을 때만큼 시끌벅적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정적인 여행이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노곤해진 30대들은 낮잠을 잠깐 자며 기운을 채우고 전주의 유명한 가맥집에 방문해 보기로 한다.



아직 6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황태포에 맥주를 즐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황태포와 갑오징어를 포장하며 황태포를 기계로 두들기고 있는 주인 할머니의 뒷모습을 구경한다. 세월이 묻어 있는 가게의 외관과 각종 집기들이 황태포라는 메뉴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명 가게답게 포장을 기다리는 사이 가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고, 우리는 포장된 황태포와 갑오징어를 손에 들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이어서 방문한 곳은 전주 남부시장의 야시장. 낮에 전주역에서 보았던 수많은 방문객들이 마치 이곳에 다 모이기라도 한 것 마냥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육전부터 비빔밥 아란치니, 새우튀김, 김밥 등 다양한 메뉴의 냄새들이 방문객들의 코 끝을 자극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숙소. 가맥집과 시장에서 포장한 메뉴들로 한상을 차리고, 조금은 초라해 보여 중국집에 양장피와 술국을 주문한다. 시원한 맥주 한잔과 바삭하면서도 감칠맛 넘치는 황태포로 우리의 두 번째 식사는 시작되고, 별 볼 일 없는 대화가 오고 가며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밤새 친구들의 우렁찬 코 고는 소리에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한다. 숙소를 정리하고 나와 전주의 유명한 콩나물 국밥집에 방문해 얼큰한 국물을 즐기고, 난생처음 보는 콩나물 아이스크림을 먹어본다. (잊지 못할 맛이었다.) 그리고 마당이 예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잠시 여유를 느끼다 전주역에 가서 기차를 타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현장에 있을 때는 큰 감흥이 없던 여행이 집으로 돌아오니 왠지 조금씩 더 생각이 난다. 짧았지만 별생각 없이 다닐 수 있던 그 순간들이 썩 지루하거나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또 가라고 하면 굉장히 피곤해할 나지만, 여행은 다니는 재미만큼 곱씹는 재미도 있는 거니까. 한동안 전주는 햇볕이 좋았던 초여름의 날씨와 황태포, 시장, 맥주로 내 일상 곳곳에서 기억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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