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조금씩 배어 나오는 걸 보니 요 며칠 사이 부쩍 여름이 찾아온 것 같다. 시원한 옷차림만으로는 날씨를 상대하기 버거워져 올해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어본다. 시원한 바람에 몸이 뽀송해지는 것을 느끼며 갑작스러운 상쾌함이 찾아온다. 뜨거운 햇빛,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 가만히 있어도 불쾌해지는 습도 등 여름은 여러모로 꽤나 힘든 계절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느낄 수 있는 여름만의 상쾌함도 있다.
재작년 여름,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아쉽게도 여행의 목적이 아닌 출장의 목적으로. 제주도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서 오프라인 홍보 부스를 운영하기 위해 한 여름의 제주를 찾았던 것이다. 2박 3일의 기간 동안 야외에서 홍보를 진행해야 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숙소를 개인실로 편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첫날은 가볍게 짐을 풀고 식사를 하며 마치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을 잠시나마 느꼈지만 이튿날 아침부터는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미소를 유지한 채 홍보 부스를 운영하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온몸이 땀으로 찐득해지고 시원한 아이스커피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갈증이 이어졌다. 점심시간에 잠시 더위를 식혀보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더운 곳으로 다시 나가는 것이나 얼마나 더 힘든 것인지. 그렇게 오후까지 8월의 더위를 만끽하다가 행사가 종료된 후 숙소로 복귀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전 몇 시간 동안 숙소에서 각자의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그날 입었던 옷을 야무지게 빨아서 탁탁 털어 숙소 베란다에 말려보았다. 여름이라 길어진 해는 아직 저물지 않았고, 내가 널어놓은 빨래를 건조기보다 뽀송하게 말려주기 시작한다. 나는 시원한 숙소의 침대에 누워 바스락 거리는 이불속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감상했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와 제주도의 평화로운 동네 풍경이 어우러진다. 그 순간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꼈다. 오직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상쾌함. 여름에 지독하게 시달리고 나서야 느낄 수 있는 이 특별한 상쾌함을. 몸은 노곤노곤해지고, 그렇게나 뜨겁게 나를 괴롭혔던 햇볕은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루 종일 고생한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포상 같은 감정이었다. 벌써 이 출장을 다녀온 지 약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때의 감정이 생생하다.
올해 여름도 참 덥고 습할 거라는 예측을 지나가며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그런 예상에도 마냥 두렵거나 짜증만이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느꼈던 여름만이 줄 수 있는 상쾌함이 한편으로는 꽤나 기대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