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페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by 강정민

용감한 주먹은 이미 땅에 쓰러진 상대는 결코 더 이상 때려선 안된다고 하는데, 이는 실로 우리가 모범으로 받들 만하다. 여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덧붙여야 한다. 패배한 뒤,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후회하여 다시 찾아오지 않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복수를 하러 와야 한다. 그렇다면 안될 것이 없다.


그러나 개로 말하자면, 그런 예를 적용하여 정정당당한 적수와 동일하게 볼 수 없다. 개가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도 사실상 모든 도의를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는 헤엄을 칠 줄 알기 때문에 반드시 뭍으로 기어올라올 것이고, 주의하지 않으면 그 놈은 몸을 추켜세우고 한바탕 흔들어서 사람들의 몸과 얼굴에 온통 물방울을 튀기고서는 꼬리를 사리며 도망칠 것이다. 그 뒤로도 그런 성정은 여전히 변치 않을 것이다.


어리숙한 사람이 개가 물에 빠진 것을 보고 세례를 받은 것이라 여기고, 이미 참회했음이 분명하며 다시는 물에서 나와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착각치고는 대단한 착각이다. 빛이 어둠과 철저하게 싸우지 못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이 악에 대한 방임을 관용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계속 대충 넘어간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란 상태는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사람을 무는 개는 물에 빠졌다고 건져주지 말고 버릇을 고칠 때까지 계속 패야 한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 것은 훗날 남의 자식을 망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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