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주는 사람이 더 받는다.
좌절과 절망의 이야기를 꼽으라고 하면 하근찬의 <수난이대>가 아닐까 하다가도 결론에 다다르면 용기의 끝판왕이다. 일제강점기 징용에 끌려가 비행장에서 일어난 폭격으로 왼팔을 잃은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나간다. 아버지는 아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였으나 수류탄에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을 짚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들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면 좋을지 아버지에게 하소연하고, 아버지는 팔 하나 없는 나도 잘 살고 있다며 격려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외나무다리가 나타나자,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은 두 손으로 짐을 들어 건너간다. 절망이 희망과 용기로 바뀌는 순간이다.
2003년 대전으로 직장을 옮기고, 결혼 전 의미 있는 일을 찾다가 한 야학교를 찾아갔다. 나를 위해 비워둔 자리였을까 중졸 검정고시 준비반 국어와 영어 과목을 맡게 되었다. 학생들은 인근 시장에서 장사하는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었다. 지식의 수준도 모두 달랐다.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라 수업에 오셨다 안오셨다 해서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 모르겠다. 한분 한분 잘 기억해 뒀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 요즘 같으면 스마트폰 사진이라도 몇 장 남겼을 텐데. 학교 주변 주차장이 협소하여 주차단속 딱지만 몇 장 남았다. 각오한 지식 전달자의 일은 약간의 인내와 용기가 필요했다.
교육 내용을 이해하는 건 쉬었지만, 쉽게 가르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어르신들의 학습 감각을 깨우고 잘 알아듣게 할지 그림과 이야기를 마구 섞으며 나름의 기획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영어 감각동사를 설명할 땐 캐릭터 심슨의 눈, 코, 입 등 오감각을 이용했다. 어르신들의 수준이 다 다르고 내 전달 능력이 모자라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르신들은 어쩌다 하나를 알게 되면 크게 웃고 즐거워했다. 반면, 나는 계속 용기를 내어 검정고시 준비 역할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어느덧 계획된 진도는 나갔지만, 어르신들이 다 소화해 낼 순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용기는 과한 욕심이었다.
6개월이 흐르고 마지막 수업이었다. 부족한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순간, 한 분의 어르신이 선생님~ 하고 외쳤다. “잘생기고 똑똑한 우리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검정고시는 무슨. 그저 하나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좋은데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되어 행복해요. 우린 가진 게 없어요. 작지만 이건 저희 성의에요.” 하면서 꼬깃꼬깃한 오천원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시장에서 채소, 생선 등을 팔고 번 돈이다. 심장 저격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르신들은 내게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는 실천의 용기를 보여주셨다.
지금은 사라진 야학교지만, 가끔 근처를 지날 때마다 어르신들의 삶의 용기와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용기는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