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겨울 범일 성당에 머문 날

부산 범일 성당

by 엠제이


부산으로 기차여행을 떠났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 그곳의 성당을 한 곳쯤 들러보는 편이다. 신앙이 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낯선 도시에서 성당을 찾는 일은 여행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춰 준다.

점심을 마치고 나온 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범일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도로변에서 오 분 남짓 걸으면 된다고 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십자가 하나가 먼저 보였고, 그 방향으로 언덕과 골목길을 지나게 되었다. 하얀색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범일성당이라는 이름이 또렷이 읽혔다.

성당의 모습은 익숙한 인상과는 달랐다. 명동성당이나 전동성당처럼 고딕 양식의 화려함은 없었고, 오히려 근대 모더니즘 건축물에 가까워 보였다. 성당이라기보다 하나의 공공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 건물이 지어질 당시를 떠올리며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범일성당은 부산 최초의 본당으로, 몇 차례 이전을 거쳐 1965년 알빈 신부에 의해 현재의 자리에 새로 지어졌고, 2010년에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기보다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구조였다. 권위와 중심을 드러내기보다는 공동체와 머무름을 생각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당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 건너편에서 바라보니, 성당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지형에 맞게 공간을 아끼며 지은 듯 보였다. 크지 않았지만 단정했고, 불필요한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2층 본당의 문을 열자 햇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빛은 과하지 않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특별한 말이나 형식 없이,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성당을 한 바퀴 돌아 나오던 중, 마당 한쪽 긴 의자에 앉아 계신 어르신과 마주쳤다. 성당을 오래 다녀온 자매님처럼 보였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눈인사 뒤로, 자매님은 다시 묵주기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자매님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인자한 얼굴의 성모상이 서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자매님은 장소나 날씨에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묵주알을 한 알 한 알 넘기고 계셨다. 그 기도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의 일상이 이렇게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범일성당은 눈에 띄는 장식이나 크기로 기억되기보다, 잠시 머물렀던 시간과 사람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그날의 부산에서, 나는 한 성당에 들렀고, 그곳에서 잠시 여행의 속도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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