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향해 향기를 볶다.
하늘은 푸르고, 벚꽃은 바람에 흩날린다.
아침 일찍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주신 밥을 말끔히 비우고 어제 준비해 둔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떨지 말고."
문밖까지 따라 나온 어머니께 들어가시라고 손짓하는데 어머니는 끝내 재이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자! 다들 자리 찾아 앉았으면 책상 위 시험 주의사항을 읽고, 곧 시작될 1차 시험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시험 중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오.”
전국의 숨어 있는 고수들이 이번 가배사 시험에 응시하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재이의 두 눈으로 이렇게 많은 응시생들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두둥!”
북소리가 울리자, 1차 시험 과제가 내려온다.
"생두를 시간 내에 볶아 제출하시오. 중간 볶음으로 만들어 제출하시오."
시험장은 곧바로 분주해진다. 각자 숯불 앞에 놓인 생두와 망을 바라보며 움직인다. 숯을 빼는 이, 더 집어넣는 이, 망을 좌우로 돌리는이, 숯불에서 높이 들었다 내렸다 하는이... 모두 모두가 뜨거운 숯불 위에서 움직이는 생두처럼 바쁘게 움직인다.
주어진 2시간은 북소리에 맞춰 빠르게 흐른다. 북소리가 점점 커지며 마지막을 알린다.
“둥! 둥! 둥!”
“멈추시오!”
감독관의 외침에 따라 재이의 손도 멈춘다.
“23번 탈락”
웅성거림 속에 23번이 원두를 만지다 적발되었다고 감독관이 소리친다.
“56번 탈락”
재이와 함께 온 친구가 56번인데 재이는 56번 친구의 시선을 마주 못하고 고개를 숙인다. 1등 가배사가 되기 위해 궁에 들어오기 위해 몇 달을 동고동락하며 함께한 친구를 차마 볼 수가 없다.
바람에 날린 벚꽃 하나가 숙여진 재이의 머리 위에, 볶은 원두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책에서 본 가배 꽃처럼 보인다.
“1시간 후 2차 시험이 있으니 쉬는 시간 잘 지켜 각자 자리에 앉아 있길 바랍니다.”
감독관들이 응시자들의 원두를 채점한다. 볶아진 콩도, 그들의 손도 분주해진다.
“재이 군! 시험 어땠어? 로스팅 잘 되었지?”
같은 학당의 현성이가 재이에게 다가오며 재이에게 묻는다.
“그냥 그래. 자넨 어땠어?”
대답은 평범했지만, 재이가 볶은 원두가 시간이 지나며 퍼져 나오는 향에 조금씩 자신감을 느낀다. 볶을 때도 좋았지만 이걸 갈아 마신다면 어떤 맛일까 라는 궁금증이 드는 걸 보니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2차는 아마 시음일걸? 다른 학당 가배사들 말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더라”
현성이는 쉬는 시간에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듣고 와 재이에게 속삭인다.
푸른 하늘에 다시 벚꽃이 춤추듯 흩날리고 다시 북소리가 울린다.
“두둥”
“다들 자리에 앉으시오.”
2차 시험이 시작되었다.
’ 볶은 콩을 갈아 가배를 내린 뒤, 원산지와 맛을 적어내시오. 시간은 30분.‘
응시자들은 다시 바빠진다. 맷돌에 볶은 콩을 갈며 향을 맡아본다. 벚꽃 향이 살짝 섞인 듯,
단내도 감도는 게 첫사랑의 시작으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향이라는 생각이 재이는 들었다.
’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그래, 이 향이야. 과일 향과 꽃향기. 확실해!‘
재이는 확신에 차서 손을 놀린다. 가루를 면 보자기에 담고, 숯불에 올린 물을 부을 준비를 하며 온도를 확인하려 손을 살짝 대어 본다.
'아! 뜨거워! 원장님 마름대로라면 이 온도에서 살짝 떨어진 온도로 가배를 내려야 해. 30초만 기다렸다 내리자.'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과일의 단맛, 봄처녀 머리 위에 내리는 벚꽃 향, 첫사랑 연인들의 설렘.'
“다들 멈추시오! 일어나 나가시오!”
시험 종료. 감독관들이 시험지를 걷어 가고 있다. 수험생들은 각자 자리에서 털털 털며 일어난다. 제각기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소곤소곤하는지, 시험장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이다.
“다들 조용히 일어나 나가시오!”
“재이 군! 난 콜롬비아 썼어. 산미도 있고 부드러워서 말이지!"
현성이가 활기차게 말하지만, 재이는 조용히 웃기만 한다.
합격자 발표 시간이 돌아왔다.
"2차 시험까지 통과한 합격자 5명을 호명하겠습니다. 이름이 불리지 않은 수험생들은 돌아가십시오. "
수많은 수험생들이 또다시 웅성거린다. 단 다섯 명이라니!
"3번 김 아무개, 28번 박 아지, 30번 정 용만, 65번 박 재이.... "
재이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불렸으나 귀가 멍해지면서 잘 들리지 않는다.
"이상 다섯 명은 20분 뒤 3차 대면 시험을 준비하시오."
현성이가 다가와 재이를 앉아 주며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는 바람에 마지막 후보가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자네가 붙을 줄 알았네. 원장님도 자네 칭찬 엄청 했잖아. 진심으로 축하하네”
“아직 3차 시험이 남았잖아”
재이는 겸손히 말하지만, 마음속에는 열망이 굼틀댄다.
‘진짜 합격하고 싶다. 조선 최고의 가배사가 되어 어머니께 보탬이 되고 싶다.’
3차 시험. 다시 북소리가 울린다.
“앞에 놓인 가배 가루로 가배 세 잔을 내려 쟁반에 올려 두시오”
5명의 수험생 앞에 숯불, 주전자, 가배 가루가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린 3인의 최종 감독관이 앉아 있다.
‘누구일까? 유명 학원 원장님들일까?’
재이는 학당에서 배운 대로 손을 움직여 본다. 물 온도, 원두 무게, 면 보자기 위치까지 철저하게 계산해 가며 가배를 정성스레 내린다.
“쨍그랑”
“28번 박 아지 탈락”
찻잔을 떨어 뜨려나 보다, 시험장에서 물러나는 박 아지를 보며 재이는 순간 손이 떨려 오지만 마음을 굳세게 다잡는다.
‘흔들리지 말자’
재이는 가배 세 잔을 완성해 쟁반에 올리고 종을 울려본다.
심사를 맡은 최종 감독관들이 조심스레 한 잔 한잔을 들어 음미하는 모습이 하얀 모시 천 사이로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데 다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어느 나라 원두인가? '
감독관 중 한 명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데 78번 성 윤수가 먼저 대답을 한다.
"브라질입니다. 외관이 균일하고, 둥글며 납작합니다. 산미와 쓴맛이 균형 있게 느껴졌습니다. "
"다음"
재이가 대답을 한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입니다. 강한 신맛에 묵직한 향, 꽃향기와 단맛의 조화가 느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