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는 흔히 관념적인 그림이라고 알려졌다. 서양화는 대상을 눈앞에 두고 치밀하게 관찰을 하며 그리지만, 동양화는 화첩(畵帖)을 참고하여 그리거나 대상을 보지 않고 그린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정말 동양화는 보지 않고 관념적으로 그리는 그림인가? 그렇지 않다. 동양화도 서양미술 못지않게 철저한 관찰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원(元) 나라의 대가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의 관찰 태도를 보면 동양의 화가들이 대상을 관찰하지 않고 그린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대(元代)의 화가 황공망은 종종 깊은 산속에 들어가 대자연의 변화를 자세히 살피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해변에 나아가 조류와 파도를 살펴보기도 하였는데, 비바람이 몰아쳐도 이러한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진복조, 동양화의 이해, p.41)
모든 미술의 출발은 관찰로부터 시작이 된다. 동양의 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동양화 창작의 제1원리는 응물상형(應物象形)이다. 응물상형(應物象形)이란 실제 현실의 사물(物)을 접하고/대하고(應) 형태를 그린다(象形)는 뜻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상을 보지 않고 그리는 동양화가들이 많던데...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아마 다음 둘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정말 관찰을 하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을 대강 그리는 얼치기 작가이거나 아니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철저히 관찰한 후 사물의 핵심만을 기억했다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그리는 진짜 화가일 것이다. 어떤 동양 화가는 육 개월을 머리로 구상하고 30분 만에 그린다고 한다.
서양화는 눈앞의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면서 화면에 옮긴다. 작품을 마칠 때까지 그는 거의 대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반면 동양의 화가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관찰한 후 마음에 기억해 두었다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단번에 화면에 옮긴다. 여기에 동양미술의 커다란 특징이 있다.
동양화는 눈앞의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한 후 먼저 마음속에서 그리고자 하는 내용을 그린다/구상한다. 화가의 마음속에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온전히 그려지지 않으면 현실에서도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동양의 화가들은 관찰할 때 시종 느낌이 가장 크고 깊으며 가장 생동하는 장면을 관찰하고 포착하여 그린다. 동양의 미술은 마음속에서 먼저 그림이 그려져야만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흉중 형상(胸中形象)이라고 한다. 마음속에(胸中) 그리고자 하는 그림(形象)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흉중 형상(胸中形象)을 한다고 해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뛰어난 화가가 되려면 마음속에서 그려낸 그림을 꺼내어 화면에 옮길 수 있는 뛰어난 솜씨가 있어야만 한다.
원래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흉중(胸中)이 아니라 안평대군의 흉중에 있었던 그림이다. 안평도 한 그림 하는 사대부 예술가였지만, 무릉도원의 아찔한 이상향을 그릴 정도의 솜씨는 없었다. 만약 안평이 안견 같이 흉중에 그린 장면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는 뛰어난 솜씨가 있었다면 <몽유도원도」는 안평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