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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Nov 21. 2024

언양가서 불고기 직접 먹으려고 했는데

언양성당과 살티공소 순례기



우리는 주말부부이다. 남편이 있는 곳은 나의 세컨하우스이다. "달달한 언양불고기를 직접 먹으러 가요." 세컨하우스를 방문한 내 말에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지만 언양성당 9시 미사를 참석하고 그 주변 성지를 다니기로 했다. 

언양성당 교우 이외의 사람들이 주차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다. 주차하고 올라가니 오른편 잔디밭에 돌바퀴(?)와 커다란 화강암 돌이 있었다. 화강암 돌은 야외 제단으로 사용하나보다.

언양성당은 고딕양식의 2층 건물로 높은 첨탑과 회색 벽돌은 현실과 분리된 느낌을 준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퍼를 신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성당규모에 비해 성전은 작았고 내부는 민트색과 노랑색의 어울림이 산뜻했다. 내부를 살펴보고도 시간이 남아 조용히 예수님과 대화를 했다. '예수님, 오늘 하루 함께 해주세요. 순교자들과 통공할 수 있게 이끌어주셔요. 우리 부부의 순례의의 끝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제 맘의 변화들을 이끌어주실지 정말 궁금합니다.저희 부부와 함께 해주소서.'

생활성가로 하는 미사가 마음의 울림이 컸다. 작은 성당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성가를 불러본게 얼마만인가? 오랫만에 정성을 다해 노래로 미사를 봉헌했다. 성가대가 있어 못부르는 내 노래도 잘 부르게 들렸다.


부산 교구의 수호 성인이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고, 오늘이 바로 그 대축일이었다. 신부님이 묵주기도의 의미와 사용법 첫부분을 알려주었다. "묵주 가지고 있나요?" 아침에 기도를 하고 가지고 말까 고민하다 호주머니에 넣었다. 씨익 웃으며 남편에게 건넸다. 1570년 레판토해전에서 그리스도 연합군이 오스만투르크족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에 비오 5세 교황은 모두와 함께 묵주기도를 하고 전투에 임했고 승리를 했다. 그 이후 묵주기도가 공식화되었다고 한다. "알고 계셨나요?" 처음 듣는 소리이다. 올바른 묵주에는 십자가에 예수님 상과 그 위로 INRI(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가 있어야 한다. "묵주기도란 참회를 하며 겸손하게 바치는 기도이다. 성호경을 긋고 예수님 발에 친구를 하고 기도를 시작하면 됩니다."  왜  다 처음 듣는 소리들일까? '앞으로 묵주기도를 할 때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겠구나. 남편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다. 오기를 잘했다. 정말 감사하다.' 라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남편은 어땠을까? 궁금하지만 아직은 묻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가서 "언양성당 순례왔는데 뭘 보고 가야할까요?" " 어서 오세요, 신앙유물관, 성모동굴과 가는길에 십자가의 길은 꼬옥 보셔요."

오래된 배롱 나무 뒤로 계단을 올라 성모동굴을 향했다. 한참을 가도 십자가의 길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상선 순교자의 묘도 지나고 대나무숲길로 한참을 더 올라가니 커다란 화강암 표지석이 보였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를 시작하자 남편은 멀찍이 서서 내 속도에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화강암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이 인상적이다. 14처 끝에 이르니 성모동굴이 나타났다. 남편은 이미 기도를 마친듯 하다. 성모동굴에서 보니 언양성당쪽 시가지가 훤하게 보였다.

내려와 신앙유물관으로 갔지만 불이 켜지지 않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유물관 옆으로 지금 언양성당을 지으신 에밀 보르댕 신부님 흉상이 있다. 교육관 2층에 깔끔한 카페가 보여 올라가 커피와 율무차를 테이크아웃해  남편에게 갔다. 가격은 맘대로 넣게 되있어 고민을 하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었다. 맛은 다행스럽게 둘 다 괜찮았다.

시간이 너무 일러 언양불고기 대신 커피를 들고 살티공소로 향했다. 살티마을엔 차를 가지고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마을입구에 세우고 내리니, 살티공소같은 파랑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문이 닫혀 있어 내부는 볼 수 없다. 성지 도장찍기를 하고 김영제와 김아가다 남매 묘소로 걸어갔다. 마을안 골목길은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고 호기심이 생기는 길이었다. 길냥이들이 많은지 6마리를 만났다. 눈을 마주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고양이들을 보며 우리집에 상주하는 길냥이 생각을 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 우리집 길냥이 작고 잘 있을까?"묻는다. "아랫집 휘엄마에게 부탁을 했으니 밥 잘 주고 있을꺼에요."라고 말하면서도 작고가 도망가지 않고 잘 있는지 궁금했다.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신자들은 간월산의 죽림골로 피신했다. 이후 경상도 지역의 박해가 본격화되자 더 안전한 안살티(청수골)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 김영제 베드로는 대재공소 죽림굴에서 체포되었다가 특사로 풀려났으나, 장독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생인 동정녀 김아가타는 경신박해(1860년) 때 자진 체포되었다가, 자신을 팔아넘긴다는 소문을 듣고 도망쳤다. 그 후 죽림굴에서 지내다가 박해의 후유증으로 1860년, 최양업 신부의 임종경을 받으며 선종하였다.


김영제와 김아가다남매처럼 묻힌 곳과 순교 사연이 남아 있는 경우 다행이다. 반면에 얼마나 많으 사람들이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마트에서 판 언양불고기를 직접 먹으려고 한 건 욕심이었을까? 언양까지 갔는데 못먹고 온 언양불고기는 얼마나 맛있을까? 점심 시간까지 기다리기보다 박해시대 때 100명이 숨어 살았다는 천연동굴 죽림굴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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