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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재개발, 표현의 자유, 그리고 무죄 판결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 사건에서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며

by 토빈한

최근 도시 곳곳에서 재개발 조합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은 단순히 노후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 속에서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사업성과 투명성을 둘러싼 의견 차이를 야기하고, 이는 조합원 간 갈등으로 확산되며, 때로는 형사 고소와 법적 공방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 갈등 등 다양한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부동산·건설 경기 침체와 공사비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조합 내 불신과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법원에는 지역주택조합 총회결의 무효확인 및 취소소송, 조합장지위 확인소송 등이 다수 계류 중이다. 일선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에서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 관련 사건이 반드시 대규모 분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이나 입주민이라면 누구든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필자가 담당한 한 사건에서, 의뢰인은 입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주택조합(비상대책위원회)의 운영에 대해 나름대로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하였다. 해당 게시글의 내용은 허위나 과장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정당한 문제 제기였다. 그럼에도 조합(비대위) 집행부는 이를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며 형사 고소에 이르렀고, 의뢰인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재판에 넘겨졌다.


필자는 상담 직후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문제된 게시글이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실질적으로 훼손할 정도의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며, 그 목적 또한 공공의 이익 실현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지역주택조합은 준공공적 성격을 지닌 조직으로서, 그 운영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입주민 전체의 권익과 직결된다. 따라서 입주민의 표현은 헌법상 보다 높은 수준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이는 공동체의 정당한 관심사에 해당한다는 점을 함께 주장하였다. 담당재판부는 이러한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번 판결은 재개발과 같이 공공성이 강한 사안에서 주민의 감시와 비판,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지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결과만 보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의뢰인은 자신의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건이 확대되며 수개월 동안 고통스러운 법적 공방을 감내해야 했다. 지역주택조합에서 파생되는 형사사건은 구체적인 쟁점이나 사안의 경중을 막론하고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만큼, 신중하고도 균형 잡힌 대응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사건이 불필요하게 확대되어, 당사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개발 조합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해 왔고, 이에 따라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보다 강력한 제도적 규율과 책임 있는 운영이 요구되고 있다. 동시에 조합원과 입주민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쉽게 형사입건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도 공동체의 건전한 감시 기능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이번 판결이 그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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