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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질서와 법치주의 - 우리 사회의 마지막 방파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건을 보며

by 토빈한

헌법재판소는 2024. 4. 4.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건에서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2023. 12. 3.경 선포한 비상계엄과 포고령이 계엄 선포권 및 국군통수권을 남용하여, 국회·지방의회 등의 헌법상 권한을 침해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의 중대성이 대통령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결론지었다.


이로써 약 3~4개월간 이어진 탄핵 정국은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법과 원칙을 생업으로 삼아온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사태를 둘러싼 혼란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과거에도 ‘사법의 정치화’ 또는 ‘정치의 사법화’라는 문제가 제기된 적은 있었지만, 헌정질서 자체가 정치와 사법의 쟁점이 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헌정질서와 법치주의가 정치적 이념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모습은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법정에서는 흔히 ‘괘씸죄’가 가장 무섭다고 한다. 법원을 호도하는 수준의 의도적인 거짓말을 지속하면, 가중처벌을 받거나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우리 대법원도 ‘피고인의 행위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는 가중적 양형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1. 3. 9. 선고 2001도192 판결 등).


그렇다면, 법정에서 가장 괘씸한 주장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한 불법을 넘어, 국가 공동체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헌정질서와 법치주의가 무시된다면,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규범과 신뢰가 모두 무너져 아노미(anomie) 상태와 다름없는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따라서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는 결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정치적 갈등이 심화하더라도,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는 정치나 사법의 논쟁 속에서도 모두가 지켜야 할 근본적 가치로 존중되어야 한다.


윤 대통령을 둘러싼 재판 과정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프레임과 감정이 앞서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막대한 정치적 유불리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보니, 정치적 선동이나 음모론이 난무하는 현상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치에서 군사적 해결이 시도된 전례 없는 사실만으로도, 이 나라가 지켜온 헌정질서와 법치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은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법의 정치화’‘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현재의 상황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방파제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넘어, 국가의 존립 기반 자체를 수호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통해 우리는 헌정질서와 법치주의가 왜 중요한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헌법과 법치주의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의 수호는 단순한 정치적 쟁점이나 사법적 결과를 넘어서는 가치이며, 공동체의 지속성과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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