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도착, 쇼핑과 저녁 만찬, 사이프러스 설경, 골든 이어스
9년째 몸담아온 로펌 생활 중 모처럼 짧은 휴가를 얻었다. 대한항공의 최신 기종 B787의 깔끔한 좌석에 앉아 구름 위를 10시간 날아 밴쿠버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공항 인근의 맥아더글렌 디자이너 아울렛(McArthurGlen Designer Outlet Vancouver Airport)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첫 쇼핑이라 설레기보다는 시차 적응으로 인한 피로가 먼저 밀려왔다. 그래도 바나나 리퍼블릭에서 고급스러운 셔츠 몇 벌을 사고, 올드 네이비에서는 캐나다스러운 맨투맨을 골랐다. 점심은 캐나다 대표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A&W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쇼핑을 마친 뒤에는 밴쿠버 시내로 이동해 몽블랑 매장에 들러 수성펜 하나를 장만했다.
저녁 무렵, 밴쿠버 외곽에 거주하는 지인의 집에 도착했다. 저녁상에는 두툼한 고기와 칼칼한 김치찌개, 그리고 면세점에서 가져온 Caymus Napa Valley 와인이 함께했다. 식사 후에는 다음 날 일정을 두고 4시간 넘게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원래 계획은 죠프리 레이크(Joffre Lakes Park) 하이킹이었지만, 사전 예약을 놓친 데다 장비도 부족해 아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사이프러스(Mt. Cypress), 시모어(Mt. Seymour), 마운트 베이커(Mt. Baker), 시투스카이(Sea to Sky) 등 다양한 산과 트레일을 두고 끝없는 브레인스토밍이 펼쳐졌다. 몇 시간째 이어진 토론만으로도 산 하나쯤은 이미 정복한 듯한 기분이었다.
첫날부터 2일 차 오전까지 고민한 끝에 사이프러스 주립공원(Cypress Provincial Park)이 선택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아 스키장 근처까지 올라가니 어느새 공기가 달라졌다. 등산로 초입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으로 덮인 숲과 능선이 나타났다. 6월 초 한여름에 설경을 보고 눈을 밟는다는 것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산 아래로 내려다본 밴쿠버 시내의 전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산 후에는 팀홀튼(Tim Hortons)에 들러 커피와 도넛을 테이크아웃했다. 곧바로 골든 이어스 주립공원(Golden Ears Provincial Park)에 위치한 알루엣 호수(Alouette Lake)로 향했다. 맑은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산들이 조화를 이루고, 햇살이 물 위에 반사되어 한적하고 시원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산책하거나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고, 캐나다구스들도 호숫가를 따라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과 도넛 하나가 그 어떤 근사한 만찬보다 더 값지게 느껴졌다. 도심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밴쿠버의 진면목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