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어느 날

뒷산을 오르며 생각을 담다

by 장현수

뒷산을 오른다.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뻗어나온 산등성이는 그야말로 호랑이를 닮았다. 이마가 있는 머리와 네 개의 발 그리고 꼬리까지 다 온전하다. 큰 호랑이 한 마리가 평화롭고 여유있게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다. 부부 중 한 마리와 두세 마리 새끼들은 어디에 가 있을까.


길가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었다. 복스럽게 핀 꽃송이를 하나 따서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 넣고 한입 뜯어 씹는다. 상큼한 향이 있으며 약간 신 맛이 난다. 입안이 금새 짙은 보라색으로 변한다. 마주 보고 웃는다.


갑자기 어디선가 폭격기가 낮게 스쳐 지나갔다. 갔다가 되돌아와서는 여기저기 기총소사를 해대기 시작했다. 바위가 깨지고 파편들이 여기저기 튀었다. 총알들이 여러 갈래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이 사격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수없이 날아오는 탄환들을 피할 길이 없자 맞아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


올라가는 길에 매어 놓은 우리 염소는 잘 있나. 염소들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잎이나 풀을 뜯는다. 산에다 몰고 가서 풀숲에 매어 놓으면 그 반경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무덤에 풀이 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매어놓은 주변엔 남아나는 풀이라곤 없다. 그래도 풀숲이 있기에 염소들이 산다. 갓 태어난 두 마리 새끼들은 엄마 곁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해 질 무렵 염소들을 데리러 가면 어두워지는 산에서 그들도 무서운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한다. 매어놓은 줄을 풀기도 어려울 만큼 뱅뱅 돌며 종종걸음을 친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계곡에 제법 깊은 물 웅덩이가 있다. 선녀탕이라고 부르는데 선녀가 아님에도 더울 때는 낮에 와서 자주 목욕하고 갔다. 내리막 넓적 바위가 있어서 빠른 물살이 타고 흐른다. 그위에 등을 대고 반듯이 누워 있으면 몸을 타고 흘러가는 물줄기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낮의 햇살은 따갑다. 잎이 푸른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짝 흔들린다.


산을 계속해서 올라간다. 지게 지고 나무를 한 짐 해서 내려오는 빡빡머리 초등생 둘을 마주쳤다. 그들이 지고 있는 나무는 화력이 좋은 참나무였다. 그것도 쭉쭉 고르게 자란 나무들이었다. 이런 나무를 해서 오려면 산을 높이 올라가야 한다. 이들은 어제 큰 바위에다 각자의 이름을 돌로 하나하나 찧어 새겼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둘이서 그것 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그들 이름 말고도 바위에는 여러 다른 이름들이 삐뚤삐뚤 새겨져 있었다.


골짜기에는 가재가 살고 있었다. 내려앉은 바위 밑으로 두 마리의 형제 가재였다. 그들은 아이들이 물속으로 매달아 내미는 개구리 뒷다리를 결코 물지 않았다. 엄마 아빠 여동생이 이것을 물다가 잡혀갔다. 그리고는 여태까지 소식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골짜기 펼쳐진 편평한 바위 위로 넓게 얼음이 꽁꽁 얼었다. 미끄럼 타기에 알맞았다. 한 아이가 해서 오던 나무 지게를 받쳐놓고는 벌써 거기서 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스키장처럼 위에서 밑으로 주욱 미끄러져 내려갔다. 입은 바지가 낡아서 너덜 너덜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목이 말랐다. 얼음을 깨서 우걱우걱 씹었다. 이가 시렸다.

계곡에 들어가 발을 담그고 물속을 뒤졌다. 보라색 돌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수정이다. 속에 보라색 결정체가 비쳐 보인다. 보석일까. 팔 수 있는 걸까. 돈이 생기면 뭐부터 할까. 물에서 건져 호주머니에 넣었다.


사람들은 빌기를 좋아한다. 큰 바위 밑에 태운 촛농자국과 사과와 배 껍질 그리고 뿌려진 쌀들이 보인다. 누군가 와서 빌고 간 흔적이다. 무엇 때문에 이 외진 곳까지 와서 빌고 갔을까. 이 바위는 영험이 있는 바위일까.


길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모래알 속을 헤집고 나오는 물이었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입을 대고 한 모금 물을 마셨다. 별 맛은 없었지만 맑고 깨끗한 물이기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숯 공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군데군데 흙담이 무너져 있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도 사라진 채였다. 급하게 숯을 꺼내던 뜨거워진 손길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살다간 어떤 사람은 이미 윤회의 길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구원의 길을 도무지 알지도 못한 채로.


어느 가을 바람이 때 할머니는 여기까지 오셔서 밤을 주우셨다. 머리가 하얗게 세셨다. 바람이 불어야 밤이 잘 떨어진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떨어진 밤톨만 찾다가 떨어지는 밤송이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밤송이에 맞은 곳은 밤새 아프고 따끔거렸다. 밤은 작았지만 쪘을 때 고소하고 단맛이 났다.


좁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 구불구불 끝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낮은 돌담들이 보인다. 반쯤 무너져 있다. 한때 누군가 살았음이 틀림없다. 이 외진 곳에 그는 무슨 생각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공룡이 살았을 때부터 있었을 법한 집채만한 큰 바위가 울창해진 숲에 가려서 그만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그 바위는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이정표였다. 바위에서는 먹을 수 있는 어떤 버섯이 자라곤 했다. 미역같이 검고 촉촉한 버섯이었다. 가끔씩 벌어진 바위 틈새로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기도 했었다. 그 안에는 쌓인 낙엽이나 마른 나뭇가지 밖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혹시 모른다. 지나가던 바람이 들어와 잠시 쉬었다 갔는지도.


이제 큰 돌밭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위들로만 덮여있는 산비탈이다. 돌밭 주변으로 칡넝쿨이 우거져 있다. 칡넝쿨은 나뭇가지를 휘감아 타고 오른다. 아이들은 칡넝쿨이 덮인 나뭇가지 위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칡넝쿨이 촘촘히 엮여 있어서 발이 빠지지 않았다. 밟고 누르면 좋은 쿠션이 되어 주었다. 칡넝쿨 사이로 가끔은 머루 줄기도 같이 타고 오를 때도 있다. 여름 이맘때쯤 아직 머루는 새파랗고 시어서 먹지는 못한다. 다래줄기가 섞여 있기도 한다. 다래도 따서 먹기는 아직 이르다. 가을이 되어야 다들 먹기 좋게 익는데 아이들은 혼자 다시 이 먼 곳을 오를 수가 없다. 찾지도 못할 뿐더러 부모들이 심부름으로 자주 부르곤 하기 때문이다.


계속 돌밭이다. 어디가 길인지 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낙엽이 쌓여 있기도 해서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떨어진 곳에서 발목이라도 삐면 큰일이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발을 내밀며 걸어 올라갈 뿐이다.


계곡 안쪽으로부터 드디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폭포다. 동네에서 보기에는 아득하기만 했던 폭포가 바로 여기다. 없는 길을 찾아 거기로 들어가 본다. 2단에 걸쳐 떨어지는 물의 파편은 넓게 퍼져 튕겨 나갔다. 폭포 아래 주변이 적셔지다 못해 물기로 모두 흥건하다.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물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셔본다. 시원하다. 여기 와서 마시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이곳만의 물맛이다. 아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한참 올려다보다가 다시 갈 길을 간다. 잠시 머무른 것도 쉰 것인지 다시 옮기는 발걸음이 무겁다. 경사진 바위 옆을 타고 돌아 어느새 폭포 위로 올라섰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鳥望이었다. 산 아래 모든 동네들이 펼친 손가락 사이로 들어온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갑자기 공포가 몰려온다. 여기서 아래로 떨어진다면~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그 자리를 벗어난다.


바위길이 끝나고 누가 걸어가고 걸어왔는지 드디어 좁다란 길이 하나 오솔길처럼 확연하다. 산 아래와는 달리 울창한 숲과 웅장한 거목들이 시선을 장악했다. 이렇게 굵고 큰 나무들이 서 있었다니 상상도 해보지 못한 풍경이다. 손을 대고 나무를 살며시 만져본다. 이 나무에 사람의 손길이 여태 한번이라도 스쳤을까. 나무에 가린 이곳에서는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다. 안개까지 자욱하다. 안갯속으로 분홍색 등초롱 꽃무리가 보인다. 이 아름다운 꽃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꽃잎마다 안개로 영롱한 물방울이 맺혀있다.


이윽고 낮게 깔리듯 자라는 작은 대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경사길이어서 지그재그 길이다. 곳곳에 서있는 바위들 모습들이 재미있다. 누군가 이전에 이미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알 수 없으므로 나름대로 이름을 지어 본다. 코끼리 코처럼 생긴 것은 코끼리 바위다. 곰처럼 생긴 바위도 있다. 새의 날개처럼 생긴 것도 있다. 오르막 경사길에 갈수록 지친다. 잠시 앉아 쉰다. 이 산의 어디쯤 왔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위로는 산 끝이 보이지 않고 아래로는 아득하게 알록달록 마을들이 보인다. 얼마나 더 오르면 꼭대기에 닿을 수 있을까.


걷는 중에 서 있는 바위틈에서 마실만한 물이 흘러나온다. 이렇게 놓은 곳에서도 물이 흘러나오다니 신기하다. 손을 담가 본다.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다시 이 물을 볼 수 있을까. 맑고 시원함이 손바닥을 거쳐 가슴으로 차오르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저쪽 어디에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인가. 우리를 보고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무렵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약간 긴장하긴 했다. 그러나 한번 있었던 소리 외에 또다시 들리지는 않았다. 산토끼라도 지나갔나 모를 일이다.


이윽고 정상에 다 달았다. 올라오는 사이에 벌써 가을이 되었다. 산 수국이 하얗게 여기저기 피어있다. 꽃송이가 작다. 허리춤 높이 작은 나무들은 지나가는 바람에 얼마나 서로 비벼졌는지 잎자락이 모두 찢겨져 있다. 인기척에 놀란 풀메뚜기들이 튕기듯이 풀잎을 뛰쳐나갔다. 풀이 흔들렸다.


정상은 안개천지다. 그것은 한꺼번에 밀려왔다 밀려갔다를 반복했다. 산아래를 향하여 돌아섰다. 두 팔을 펼치고 크게 외친다. 야~호~. 더 이상 올라갈 곳은 없었다. 간다면 능선을 따라 연결된 또 다른 산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눈을 떴다. 어머니께서 구부린 허리로 닭백숙을 내오신다. 찹쌀을 수북이 넣고 끓이신 백숙이다. 아무리 아닌 척하고 먹지만 산에 갔다 온 허기진 배로는 속수무책 허겁지겁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알고 큰 토종닭으로 해놓으셨다. 아버지는 나 대신 뒷산에 가서 포클레인으로 돌들을 옮겨놓고 오겠다고 하신다. 검게 난 수염이 더부룩 하셨다. 여동생은 통장 비밀번호를 소리 내서 알려주고 있다. 오빠가 힘들다며 돈을 찾아서 도와 주겠다는 것이다. 어깨가 무겁다. 나는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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