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애
"아빠 안녕~"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출근하는 아빠를 향해 홀로 배웅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이 새벽에 집 밖에까지 나와서. 일어난 채로 눈 비비며 나온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옷을 다 갖춰 입은 채였다.
이른 시간에 아이가 아빠한테 배웅인사 안 해도 누가 뭐랄 사람 아무도 없다.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고 뭐랄 사람 아무도 없다. 침대에 누운 채로 아빠 안녕~ 해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 아이한테는 그 아침 아빠 배웅인사가 진심이다. 순수한 마음이다. 아빠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다. 2008년도 어느 날 목동 빌라 앞에서 작은 꼬마하나가 간밤 늦은 회식 때문인지 여전히 피곤한 표정으로 서둘러 출근길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을 향해 또렷한 목소리로 인사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힘이다. 아들이 힘이다
간식 캔을 챙겨 들고 가꾸고 있는 사과 밭으로 나갔다. 간식을 보고 좋아서 달려 나올 새끼 고양이와 가족들을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밭 모퉁이를 돌아서자 말자 발자국 소리를 듣고 벌써 고양이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첫째로는 어미 고양이 구월이가, 둘째로는 다른 짐승으로부터 공격받아 뒷다리를 절뚝거리며 저는 몸이 불편한 언니 고양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막내 새끼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세 마리가 붙어 다니는데 어디에 가 있을까. 밭에서 뛰놀다가도 또 창고 안 그들 집에 있다가도 누구보다 먼저 알고 나에게로 다가오던 새끼 고양이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주인에게 새끼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며 간접적으로 안부를 물어보았다. 고양이들한테는 시골이 반 야생의 세계라 하루하루 생존이 관건이다. 근처에 오소리 너구리도 있어 밤중에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들어온 터다. 다행히 O대표의 입에서
"어디 가 있겠죠~"
하는 말이 떨어졌다. 그 말인 즉 간밤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말이다. 안심이 되었다.
두 마리 고양이는 내 곁을 서성거리며 간식을 빨리 내놓으라며 쳐다보고 아우성이다. 아웅 아웅 번갈아 앓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어미는 내 가랑이 사이로 왔다 갔다 계속 그루밍 중이다.
언니는 다른 야생동물로부터 두 번씩이나 공격을 당한 바 있다. 그 이후로 겁이 많아져 사람들조차 피했다. 그렇지만 주인이 주는 사료(밥)와 내가 주는 간식에는 어쩔 수 없이 다가오기는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엄마 고양이와 막내 새끼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붙임성이 좋다. 엄마는 늘 무게감이 있고 팔자가 늘어진 모습이다. 언제나 느긋한 모습이다. 새끼 고양이는 활달해서 아저씨들과도 손을 깩깩 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드러누워 네 발을 저으며 발톱으로 살살 할퀴기도 한다. 안아주면 가만히 온몸을 맡긴다.
먼저 온 엄마와 언니 고양이 둘이 간식 달라고 더욱 보챈다. 그러나 새끼 고양이가 없는데 지금 미리 풀 수가 있나. 고양이들한테 일렀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새끼 고양이가 와야 줄 것이 아니냐. 그러니 어디 가 있는지 찾아보고 빨리 데리고 와야 해"
라고 했다.
주인 O대표한테는 새끼 고양이에게 핸드폰 전화 넣어 보도록 부탁했다. O대표가 말문이 막혀 잠시 의아해하더니
"요즘 멀리 다니는 것 보니 제 딴에 바쁜 것 같아요. 핸드폰해도 아마 받지 않을 텐데요"
하고 대답해 준다.
자주 뛰놀던 사과밭 안쪽이나 자주 올라가던 O대표 집 지붕 위까지 두루 찾아보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갔다가 혹시라도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갈수록 쌓였다.
그때였다.
"저기 올라오고 있네요"
하고 주인인 O대표가 소리쳤다.
"그런데 다리를 절면서 오는데요"
한다.
주인이 한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길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저만치서 다리를 절면서 올라오고 있는 언니 고양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다시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가 왜 다쳤을까. 걱정되어 주인인 O대표보다 먼저 내가 달려가 새끼 고양이를 안았다. 그리고 먼저 몸 이곳저곳부터 살폈다. 다행히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를 잘 타니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삔 걸까.
새끼 고양이를 모셔다(?) 놓고서야 드디어 캔 뚜껑을 땄다. 그리고 그릇에 먹기 좋도록 부어 주었다. 그러나 웬걸. 새끼 고양이가 입을 조금 대다가 말고 곧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 드러눕는 것이었다. 이러고 있을 새끼 고양이가 아닌데 말이다. 우짜든동(경상도 말. 어떻게 해서든지) 엄마와 언니사이에 끼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고 싶어 할 텐데 말이다. 어딘지 모르지만 많이 아픈가 보다. 집에서 키우고 있었더라면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반 야생에서는 이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주인 O대표도 으레 그래왔다는 듯이
"내일 되면 또 낫겠지요"
한다. 정말 내일이 되면 깨끗하게 나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과밭을 누비며 잘 뛰어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매일 와서 간식 줄게.
그런데 이런 상황 중에 언니 고양이의 행동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눈앞에 놓인 간식 캔을 두고 자리를 비우긴 본능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자리를 떠나 동생 새끼 고양이를 찾으러 나선 것이다. 새끼 고양이를 찾아와야 간식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내 말을 이해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동생 고양이를 찾으러 한참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혼자 찾아다닌 것이다. 그리고 찾고 나서 다리를 절어가며 아픈 동생을 데리고 같이 올라온 것이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동생 찾아오라는 말을 그는 정말 알아 들었던 것일까.
그는 평상시에도 동생과 잘 놀아주는 언니였다. 동생이 격하게 달려와 부딪히며 장난쳐도 모두 받아주는 너그러운 언니였다. 세상에~ 동생을 찾아 데리고 오는 마음씨 고운 언니 고양이가 있다니~
새끼 고양이에게 가족은 복이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힘이다. 언니가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