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10

어느 사랑 이야기

by 장현수

우리 사과밭 건너편 밭 언저리에 배롱나무 한그루가 빨갛게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8월이다. 배롱나무는 100일 정도 피었다가 지는 꽃이라고 해서 주로 백일홍이라 불린다. 물론 이와 다른 백일홍이 있기는 하다.


배롱나무가 시골에서는 주로 산소 옆에서 자란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후손들이 무슨 의미를 두고 심어 놓았음이 분명하다. 옛날 한 양반은 집안에 심어놓고 매일 아리따운 첩 보듯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꽃이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묘목상에서 분양을 많이 하고 있는 나무들 중에 하나다. 지인 중에서도 한 분이 집 근처에 심어 키워보고 싶어 했다. 서울에서는 어떤 백화점 옥상 정원에도 있고 국회의사당 잔디밭 한편에도 서 있었다. 지방에서는 오래된 기와집 건물이나 서원, 옛날 양반가 별채 마당가에 한두 그루씩은 다 있게 마련이다. 엊그저께 들렀던 밀양 금시당 백곡재에도 두 그루 나무가 담장가로 높이 자라 붉게 핀 꽃을 마음껏 뽐내며 자랑하고 있었다. 경북 울진군에 있는 도화동산은 배롱나무 군락지이고 군내 여러 곳에 조성된 배롱나무 가로수는 요즘 핫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배롱나무 꽃은 7월에서 9월까지 3개월에 걸쳐 피었다가 지고를 반복한다. 여름철에 꽃을 피우는 나무는 배롱나무가 유일하게 여겨진다. 꽃말에 '인내'와 '부귀'그리고 '평안'도 지만 나는 무엇보다 '사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 속으로 가본다. 어릴 적 뒷산에 소 먹이러 갔다가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우연히 들려준 배롱나무 이야기다.


오래전 어떤 마을에 한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내외간에 금슬이 무척이나 좋았다. 아내는 남편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문 앞에 나와 서서 남편을 기다리곤 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반갑게 맞았다. 그리고 금방 따뜻하게 지은 밥으로 정성껏 밥상을 차려 주었다.

아내를 귀하게 여긴 나머지 장날이 되면 남편은 장에 가서 맨 먼저 아내를 위해 청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고급 서양 분(粉)부터 찾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내를 위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밖에서 일하다가 혹시라도 다칠까 봐 새벽마다 맑은 물을 떠놓고 남편 몰래 천지신명께 빌었다. 자녀들의 결혼을 앞둔 이 동네의 부모들은 항상 이들 부부의 금슬을 칭찬하고 본받기를 바랐다. 부부는 성실했고 날마다 둘이서 열심히 일했다. 서로를 바라보고 의지하며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 그들은 결코 서로 떨어져 살 수없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 가을추수가 끝난 어느 날 아내가 그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남편이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 동네 의원마다 다 찾아다녔다. 심지어는 객지 멀리 있는 일본인 의원의 집을 찾기도 했다. 그 집은 용하다고 멀리까지 소문이 난 집이었다. 거기는 일본에서 들여온 좋은 신약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내의 병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하다못해 무당을 불러 굿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다. 겨우내 아내는 시름시름 앓았다.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새로 왔다. 아내가 누워있는 방안에도 따스한 봄 햇살이 곱게 스며 들어왔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 고열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이 봄이 다 가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숨을 거두기 전 아내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남편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아내는 꿈에 어떤 아이가 찾아왔더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무덤에 덮어야 한다면서 하얀 저고리를 하나 던져 주고 갔다는 것이었다. 저고리는 여기저기 붉게 물이 든 것이었다. 아내는 자기 죽은 후 무덤가에 만약 피같이 붉은 것이 보이거든 자기가 남편을 찾아온 줄로 알기를 바랐다.


믿고 의지했던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남편은 더 이상 세상 살아갈 힘을 잃었다. 아내가 없는 세상을 도무지 살아갈 수 없었다. 많은 이웃 사람들이 걱정돼서 새 사람 중매를 넣어 주어도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웃음기 좋았던 얼굴은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고 깎지 않은 수염이 수북수북 자랐다. 날이 갈수록 삶을 포기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아내가 죽은 후 일 년여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아내의 무덤가에 알 수 없는 작은 싹이 하나 삐죽이 솟아 나왔다. 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운차게 쑥쑥 자랐다. 그리고 껍질이 반들반들한 윤기 있는 나무가 되었다. 드디어 얼마 후 여름이 되자 나무는 가지마다 몽글몽글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붉은 꽃이었다. 꽃이 피고 얼마 지나자 부는 바람에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잎은 여기저기 날렸다. 그리고 돌보지 않아 풀이 무성한 어떤 이의 무덤 위로도 군데군데 떨어졌다.


남편이 아내 없는 삶을 견디다 못해 드디어 죽음을 결심했다. 그리고 수년째 들르지 않았던 아내의 무덤에 가서 마지막으로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죽어서 아내를 다시 만나는 길을 스스로 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의 손에는 그만 아는 독한 약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온 남편에게 이전에 보지 못한 어떤 나무하나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붉은 꽃들이 피었다. 무슨 꽃인가 하다가 불현듯 아내가 숨을 거두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덤가에 피처럼 붉은 것이 보이거든 자기가 찾아온 줄 알라'라고 했던. 그러고 보니 풀이 무성한 아내의 무덤에도 군데군데 꽃잎이 날아와 쌓여 있었다. 이것을 보자마자 남편이 아내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쥐었던 약봉지가 손에서 떨어졌다. 남편의 눈에는 검정치마 하얀 저고리 차림의 젊고 예쁜 아내가 밝고 환한 미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무덤을 두 팔 벌려 감싸 안으며 반가움과 기쁨으로 오열했다.

우리 밭 길가에는 풍성한 가지로 높이자란 벚나무가 하나 서 있다. 이곳 사람들은 벚나무에 단풍이 드는 것을 보고 사과 딸 '때'를 정한다고 한다. 봄에 피는 벚꽃이야말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높이 솟은 뒷산을 배경으로 찍은 벚꽃 사진은 가히 작품 수준이다. 후지산 배경사진 부럽지 않다. 수년 전에 갔었던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거리 나무들도 이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여름에는 또한 시원한 그늘 길을 만들어 준다.


나무가 자꾸만 자라자 위를 가로지르는 전기 고압선에 닿게 되었다. 나무를 베느냐 마느냐 한동안 말들이 많았다. 결국 남겨두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다만 고압 전기선이 닿는 가지 몇 개는 잘라내야 했다. 그 때문에 예뻤던 머리 한가운데가 조금 비어 보기에 안쓰럽고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정도라도 어디인가. 70% 이상은 무사하기에 사시사철 나를 포함한 우리 이웃과 여전히 추억을 쌓고 동무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 이 벚나무 아래로 지나가는 낯선 할머니 한 분을 뵈었다. 물통을 실은 작은 손수레를 끌고 계셨다. 그 모습이 힘겹게 보였다. 일하다 말고 다가가서 도와 드렸다. 알고 보니 한참 아래 계곡까지 내려가서 물을 퍼담아 오는 것이었다. 오늘도 몇 번째 갔다 왔다 물을 나르는 중이었고 이전에도 여러 번 이렇게 물을 퍼 날랐다고 한다. 그래서 힘들게 멀리 가지 마시고 가까이 있는 우리 밭 농사용 수도를 이용하시도록 말씀드렸다. 그리고 위치와 사용방법까지 알려드렸다. 할머니는 가까이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 고마워하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를 돌보는 중이셨다. 무덤 주위로 예쁜 꽃모종을 심고 계셨다. 그러면서 내게

"영감님이 살아 계실 때 나한테 참 잘해 주셨지요"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밭의 주인이라고 하셨다. 원래 우리 마을 분이셨는데 타지로 이사하고는 거기서 주욱 사셨다고 한다. 부치던 이 밭은 팔지 않고 그대로 둔 채였다. 지금은 이 동네 누군가에게 무상으로 경작하도록 내어 주셨다. 연세가 있으셔서 동네 좁은 길을 운전하기가 어려우시다며 마을회관 공터에 주차해 놓고 여기까지 걸어오셨다.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이곳 할아버지 산소에 올 때는 자식 며느리 등 다른 가족들은 데려오지 않고 혼자서 오신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이곳 고향 땅에 묻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먼 길을 이렇게 조용히 다녀가시는 것이었다. 살아 계실 때처럼 할아버지와 마치 데이트를 이어가시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음성에서 잔잔한 애달프음이 묻어 나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평생을 어떻게 잘하셨던 걸까. 죽은 후에라야 가까이 있었던 사람에게 살았을 때 잘했나 못했나를 알 수 있다고 누가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오늘이 명절 날도 아니고 제삿날이나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닌데 멀리서 할아버지 무덤을 찾아와 골짜기까지 내려가 물을 나르고 꽃을 심고 가꾸는 할머니를 뵈니 할아버지가 평소에 정말 많이 사랑해 주셨음이 틀림없다. 스티비 원더의 노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가사들이 문득 떠오른다.


할머니가 자리를 뜨신 후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밭에 올라가 보았다. 여러 가지 꽃모종들이 무덤가를 빙 두르고 있었다. 애써 심고 물을 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꽃을 심으셨을까. '할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나한테 참 잘해 주셨다'는 말이 자꾸만 나의 귓전을 맴돌았다. 돌아가셨어도 할머니께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할아버지는 복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벌써 하루 해가 지고 있다.


오늘 할머니가 이곳에 와서 할아버지와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내셨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남은 가족들이 있는 집에 무사히 잘 도착하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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