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9

여동생네

by 장현수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나갔다. 빨갛게 잘 익은 방울토마토랑 일반토마토가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따서 바구니에 담다보니 어느새 한 바구니다.


시골 고향집에서 오빠가 혼자 농사지으며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나보다. 여동생이 매제와 더불어 시골일을 도우겠다고 그저께 멀리 청주에서 이곳 밀양까지 내려왔다. 함께 2박3일을 보내고 오늘은 다시 올라가는 날이다.


오면서 장을 많이 봐왔다.

매제는 무더운 날씨였는데도 오자 말자 사과밭에 약치는 일을 도와 주었다.

여동생은 밤이 늦도록 배추 겉절이와 시원한 물김치 그리고 쪽파김치까지 맛있게 담가놓았다.

덕분에 당분간 반찬 걱정은 덜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돌아가신 엄마생각이 많이 났다. 시골 텃밭에서 나는 것들을 엄마가 셨던 것처럼 오늘 집으로 가는 여동생에게 챙겨주고 싶었다.


토마토 옆 두둑에서 잘 자라고 있는 풋고추도 한 바구니 땄다. 맵지 않는 고추다. 아침에도 튀김해서 먹는데 바삭바삭하고 상큼한 향에 이끌려 자꾸만 손이 갔다.


호박넝쿨이 계속 번지기만 하고 열매 맺기는 조금 더디기는 하다. 그렇지만 덩굴 속을 뒤져보니 예뻐라~ 제법 크게 자란 호박이 하나 달려 있었다. 연한 빛깔을 탐스런 호박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들기름에 볶고 끓인 애호박국이 그렇게 맛있었다. 큼직 큼직하게 썰고 나무로 불을 때어 잘 끓여진 호박은 조각조각마다 입안 가득 채웠다. 그리고 식감은 또 얼마나 부드럽던지... 애호박 국에 연한 호박잎을 썰어 넣어 끓이면 호박국물 색깔이 파랗다.

호박잎을 넣은 고동국도 파란 국물색을 띤다. 고동국은 시골에서 여름한철 별미다. 계곡 맑은 물에서 온몸을 적셔가며 돌틈을 일일이 헤집어서 잡는다. 잡는다라기보다 줍는 것이다.

삶은 고동을 반상 위에 냄비째 올려놓고 엄마하고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까지 탱자나무 가시로 알을 빼내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 고동을 까고 난 다음날 아침상에는 어김없이 고동국이 올라왔다. 쌉싸름하면서도 시원한 맛의 초록빛 맑은 국물이다.


연한 호박잎을 땄다. 잎들이 온통 바닥을 덮었다. 사이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잎과 줄기를 살짝 들춰내고 한발 한발 내디뎌야 한다. 호박잎은 따서줄기에서 거친 섬유질부터 제거한다. 그리고 쪄서 양념장으로 쌈을 싸 먹으면 밥 한 그릇은 그냥 뚝딱이다. 다른 반찬에 손 갈 일이 없다.


고구마 잎사귀도 빠질 수 없다. 조심스레 하나하나 딴다.

고구마 잎사귀는 삶아서 나물해서 먹는다.

늦가을 무렵 시골에서는 겨우내 먹을 간식거리로 고구마를 일제히 캐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전에 집집마다 고구마 잎사귀부터 따느라 한동안 손이 바쁘다. 이때 따낸 잎사귀는 소죽 끓이는 큰 무쇠솥에 한번에 넣고 김이 나도록 삶는다. 삶고 나면 말리기 위해 이고 지고 동네 근처 큰 넓적 바위를 찾아다닌다.

며칠을 말리는 동안 갑자기 라도 내리면 엄마는 밭일하다 말고 덮거나 걷어 오느라 바쁘게 움직이셨다.

고구마 잎사귀에서 잎을 뗀 줄기나물은 명절 음식에도 올라간다. 추석과 설 그리고 정월 대보름에 고사리나물, 콩나물, 무나물 등과 함께다. 덧붙이면 말린 취나물과 도라지나물과도 같이.


가을추수 후 추석날이면 윤기가 좔좔 흐르는 갓 찧은 햅쌀밥에다가 이 네 가지나물과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을 넣고 비벼서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다.


크게 자란 보라색 가지도 하나 보인다. 나머지는 아직 어리다. 요즘 우리 집 '이상과 희망' 여사도 어디서 듣고 배웠는지 전통적인 가지나물로 무치기보다 프라이팬에 넓적하게 펼치고 굽는 양념구이 조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 하나밖에 없는 가지는 오늘만은 여동생네 줄 선물 목록에 넣고싶다.


저온창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마지막 남은 사과 한 박스가 보인다. 작년 수확한 미색 사과다. 맛이 들도록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플라스틱 상자를 열어 상한 거 모두 덜어내고 깨끗한 사과로만 봉지에 나눠 담았다. 1/2씩. 여동생네 반 우리 집 반.


올해 수확한 감자도 주고 싶었는데 친구가 한 박스 보내준 게 있어서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주지못해 아쉽다. 그 대신 찹쌀을 나누어 주었다.


오빠가 챙겨준 것들을 모두 싣고는 여동생네가 시골 고향집을 떠났다. 데리고 왔던 여섯 살 강아지 '호두'도 엄마 아빠 따라서 갔다. 나를 보고 낯설었는지 사흘 내내 한 번씩 짖어댔다. 제 딴엔 엄마 아빠 보호자라 여기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다. 호두가 밥값하는 한 방법이다


우리가 한 번씩 아이들 데리고 시골 고향집 왔다가 떠나고 나면 엄마는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셨을까. 강아지 데리고 와서 분주하던 집이 동생네가 떠나자 말자 갑자기 적적함이 밀려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조차도 다시 돌아 올 월요일을 기약하고 가족이 있는 서울집을 향해 곧장 시골 고향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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