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믿음의 길

by 장현수

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앎이 극히 피상적이다. 그들의 빈정대는 질문들에 일일이 답을 달기에는 내 입술이 짧다. 그리고 나오는 말조차도 그들을 설득하고 이겨낼 정도로 논리적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분석하고 파헤치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고 영성임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다. 교회에 와서 보면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와보지 않고 단순히 밖에서 보기만 한다면 그냥 구경꾼일 뿐이다. 더욱이 그러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면 단순한 단체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내용들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학문적 지식의 축적물이 아니다. 인간이 왈가 왈부하거나 함부로 단정지으며 옳고 그르고의 가부를 결정할 수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 세밀하고 은밀한 비밀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구경꾼들이 보기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미련하고 위험천만하게 보이는가. 나의 여동생조차 오빠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 의아해하고 궁금해 한다. 들이 보기에 교인들은 얼마나 가치 없는 말을 믿고 있으며 하찮은 짓들을 하고 있는가. 우둔하고 바보같아 보여 교인들을 향한 질시를 거두지 못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부모한테나 잘해라. 그 돈 교회 갖다 바치지 말고. 그들에게 말한다. '부모한테도 잘하고 있거든요.' 부모한테 못하는 교인은 없다. 있다면 그는 교인이 아니다.


직장에서 교인인 직원이 있다면 열에 열이면 다 골머리를 앓게 하는 존재로 낙인찍힌다. 회식자리에서 그들은 술로 교인을 상대하면서 얼마나 즐기고 있는가.

그러나 특이한 점은 상사나 오너가 교인일 경우는 반대로 훨씬 관대하다. 직장에서 상사가 교인이거나 술을 멀리 하거나 부하직원을 마구 부리지 않는다면 그나마 최상의 상사 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가끔씩 그조차도 어떤 직원들은 종교 선입견에 휩싸여 불쾌한 감정을 가진다. 그들은 사내 노조를 통해 은근히 갑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특정종교를 직원들한테 강요하지 마라.' 이것이 조직에서 이마에 띠 두르고 선동하는 노조 하는 자들의 억지이다. 이 억지와 막무가내가 오직 그들의 무기인 것을.

한때 내가 그랬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멀쩡한 사람이 왜 저래'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반 아이 하나가 유독 교회 다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고 여린 성품은 여자아이 같았다. 그는 수학여행을 앞두고 여행지가 불국사 그리고 속리산 법주사 등 절 위주로만 가는 거라면서 반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을 진작에 포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나의 생각들이 모두 바뀌었다. 과거의 모습들에서 벗어나 신학교도 가고 싶고 무엇보다 목회자가 되고 싶다. 다시 전공을 찾아 대학을 갈 수 있는 나이라면 신학, 종교학, 철학을 모두 공부하고 싶다. 모르고 지나쳤던 지난 수많은 시간들이 아쉽고 안타깝게 여겨질 뿐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로 교만의 그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예수님은 지치고 피투성이 된 채로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오르고 계셨다. 너무나 힘에 겨우셨다. 육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마침 그곳을 시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다. 시몬에게 벌어진 이 상황이 자발적일 수는 없었다. 로마군병들이 그를 강제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인생의 중반을 지날 때까지 나는 교회에 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직장의 일들에 얽매여 인정받고 승진과 좋은 부서를 위해 오직 열심히 일하고 어울렸을 뿐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회 가야 한다며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퇴근하는 교회 다니는 직원들이 얼마나 얄미웠던지. 그리고 주말이 되면 직장일로 지쳤다는 핑계로 내리 잠만 자기 일쑤였다. 그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반납하고 교회를 나간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마음에선지 모르게 교회를 다니는 아내를 따라 교회를 나갔다. 한번 나가보고 난 후에 계속 다닐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날은 새 가족 소개를 할 때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마음이 경계심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다. 교회에서 내가 앉는 자리는 항상 뒤쪽이었고 아니면 측면 끝 편이었다.


그즈음 교회에서 교인들이 함께 해외 다른 나라의 교회를 둘러보는 일정이 하나 생겼다. 아내와 오랫만에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마음하나로 덜컥 신청부터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구경하고 먹고 자고 하는 식의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었다. 같이 간 일행들조차 알고보니 장로님, 권사님들이었다. 그리고 교회를 오래다닌 집사 직분자들이었다. 나처럼 교회를 처음나왔고 아직 세례를 받지못한 어리숙한 '선생' 신분은 한명도 없었다. 이처럼 아직 교회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부족했기에 그때 그들은 내게 이웃 아저씨나 아주머니들로만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만.

그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처음에는 반교회적 정서로 떠돌던 내가 지금은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로가 되었다. 장로가 되겠다고 의도해 본 적이 없었다. 또한 노력한 일도 없었다. 결정 되었을 때 처음에 나는 너무나 당황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속으로 부인했다. 나 이외의 다른 장로님들은 모두 누가 봐도 그만한 경력과 과정을 거쳐 온 출중한 분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무얼까. 오래도록 고민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로 임직에 필요한 장로고시에서 한 문제라도 틀려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그 조차도 장로가 되는 명분과 답이 되지는 못했다.


오늘 구레네 시몬을 통해 나를 되돌아 본다. 그는 다만 유대인들의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 왔다가 느닷없이 무거운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다. 십자가를 지면 그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따돌림 그리고 외면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그 당시 풍습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가 진 것은 그냥 십자가가 아니라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지던 바로 그 십자가였다. 구레네 시골 유대인 디아스포라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던 시몬이었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그도 모르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그가 고향에서 출발할 때부터 예정에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예수님을 모르고 막무가내 목청 드높여 부인하던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가. 또 내가 지었던 수많은 죄를 알고 이에 대해 부끄러움과 민망함으로 어떻게 돌이킬 수 있었던가. 그리고 다시는 그들을 멀리할 마음을 품게 되었던가. 나의 모든 삶은 '살다보니 이렇게 흘러오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안에서 하나하나 이루어져 온 것임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가.


구레네 시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다가오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굳어서 드디어 딱딱해진 나의 마음을 녹이고 다가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로 함께 가자고 초청하신 것이다. 절대로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누가 고집스럽게 손을 내밀어서 끌고 가거나 아니면 거듭되는 부탁에 도저히 미안한 마음으로 '그래 한번 가주자' 하고 교회에 나오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날 구경삼아 지나가던 구레네 시몬에게 오셨던 것처럼 건성건성 교회 언저리를 구경꾼으로 맴돌고 있던 나에게도 그분이 먼저 찾아 오셨던 것이다.


한때의 나처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주께서 먼저 찾아오실 것이다. 혼자 생각으로 교회 나가겠다며 어느날 문득 집을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고기잡던 베드로와 야고보에게도 예수님이 먼저 찾아 오셨다. 십자가의 피와 고통 중에도 같이 가자고 오시는 주님이다. 교회에 나와서 줄곧 눈물이 쏟아지는 은혜를 누릴 기회를 한 번이라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것은 단순한 성경적 지식만으로 이해될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복되고 가치가 있다. 이 길은 믿는 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을 때가 되어 천국에서 다시금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길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주님의 사랑하심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도 온전히 주님께 맡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이 지금 이 순간도 모두를 향해 말씀을 해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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