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은 직영점 절은 프랜차이즈 교회는 자영업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이다. 편견일 수 있다.
사과밭에 풀을 뽑으러 애용하는 긴 장대호미를 들고 집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더위 탓에 땀이 줄줄 흘렀다. 뒤따라 오는 차가 있어 길가에 멈추고 서서 지나 가도록 비켜 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랜저 승용차였다. 이러한 좋은 차를 마주치게 되는 것은 시골에서도 늘 보기흔한 풍경이다. 다만 일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서 최소한으로 속도를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올해들어 벌써 두번이나 할머니들이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시골 동네의 골목 길은 여전히 좁다. 그런데도 지나다니는 차들은 경계심을 줄이지 않고 있다. 어디서 사람이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조심조심 천천히 느린 속도로 주위를 잘 살피며 지나가야 하지만 차에 탄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조급할 뿐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그때서야 후회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동네 골목길의 주인은 여전히 이 동네 사람들이고 오랜 세월을 일구어 왔던 어르신들이다. 이들은 차들이 다가와도 몸을 안전하게 피하지 못한다. 그리고 피하다가 쉽게 넘어진다. 그러면 최소 골절상이다. 동네 안 골목이나 농로에서 차들은 항상 보행자 우선을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가고 있는 농업인들에게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길을 먼저 가도록 양보해 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방금 내 곁을 지나간 차에 대해서도 이래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들고 나갔던 고양이 간식 캔을 보자말자 고양이 가족 셋이서 내게로 다가왔다. 새끼 고양이가 다리를 절지 않아 보여 며칠 사이에 많이 나은 거구나 싶은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얼른 캔 뚜껑을 따서 그릇에 부어 주었다. 고양이들 세 마리가 식사기도도 없이 바로 그릇에 얼굴부터 들이 밀었다. 기도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먹고 있는 고양이 가족들을 보니 세 마리 다 셈법이 여간 아니구나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더 많이 먹기위한 머리싸움이 치열했다. 매우 지능적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밀리지 않으려고 모두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어미가 가장 머리가 크다. 힘으로도 절대 밀리지 않는 듯. 제일 어린 새끼 고양이만 계속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다음으로 언니 고양이가 온 힘을 다해 머리를 그릇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새끼 고양이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에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서로 아웅다웅 싸우거나 다투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래 많이들 먹거라. 아저씨가 내일도 가져올게.
길바닥에 앉아서 고양이들이 간식 먹고 있는 것을
ㅇ대표 부부와 또 한 명의 동네 동생과 넷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내 옆을 지나가던 반짝반짝 그랜저 승용차가 이제는 반대편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ㅇ대표 부부와 안면이 있는지 손을 흔들고 인사하고 지나갔다. 물어보니 교회 목사님이라고 했다. 이쪽에 땅을 구입하고 기도원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현재 교회도 목사님이 구입한 개인소유 교회라고 했다.
여기서 ㅇ대표가 한 말이다. 사람들이 성당은 직영점이고 절은 프랜차이즈, 교회는 자영업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방금 지나간 ㅇ목사님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어두워오고 있었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밭으로 나가 긴 장대호미로 크게 자란 풀들을 맸다. 3~4일 만에 또 이렇게 풀들이 많이 자랐다. 힘이 없고 의욕이 없어 보이는 새끼 고양이가 그래도 일하고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머리를 살짝 만져줘도 가만히 몸을 맡긴다. 지난주 알 수 없는 짐승에게 하마터면 물려갈 뻔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다친 바람에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힘들게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어 집까지 살포시 안아다 주었다. 원래 성격이 활발하고 몸놀림이 민첩했는데 그날 이후로 애교가 사라졌다. 뛰고 구르며 달리지를 않고 있다. 지금도 일하는 옆에 와서 가만히 있기만 한다. 여느 때 같았으면 벌써 나무 위로 12번도 더 올라갔다 내려왔을 것이다.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밤이 점점 더 가까이 왔다. 밭에서 나왔다. 곁에 있는 새끼 고양이를 안고 나왔다. 안녕~ 잘 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사람들이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는 교회는 자영업이라는 것을 어떻게 불식시킬 수 있나 곰곰이 생각했다. 왜 교회는 길 잃은 영혼 가난한 영혼을 품고 있지 못하는 걸까. 국가와 사회가 어려울 때 그리고 가난한 심령들을 향한 교회의 역할이 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지 못하는 걸까. 아까 이야기 나온 것 중에 '교회 목사님들이 부자들이 많고 좋은 차 타고 다닌다'는 말도 있었다. 세상 사람들만 탓할 수 없다. 누가 옳고 그른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세상에 깔린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말씀 앞에 바로 서고 신앙의 본이 되도록 항상 은혜만을 간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