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설명회를 마친후

나를 넘는 길

by 장현수

부모님이 일구시던 사과밭 농사를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니 더 이상 누구도 지을 사람이 없었다. 임대를 하고 싶어도 시골은 고령화에다 남아도는 평지 좋은 땅들마저 많아 우리처럼 언덕배기 밭은 모두들 관심 밖이었다. 경사진 곳은 기계장비 즉 유인동력살포기나 동력 운반기들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다. 다른 의미로는 옛날 방식대로 일일이 손으로 약을 치고 몸으로 운반해야 짓기 가능한 땅이라는 것이다. 누가 선택하겠는가.


퇴직 후 부모님을 이어서 사과밭 농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회원을 모았다. 매월 일만 원씩 자동이체하면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단풍이 붉게 물들고 밤마다 서리가 하얗게 깔리는 무렵에 수확하는 사과를 있는 그대로 두 박스씩 보내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매출액의 10%를 자선 기금으로 적립하자는 취지이다.


회원들과 좀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사과나무에 회원 명찰도 달아주었다. 나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자라는 모습들을 SNS를 통해 수시로 소통을 하고 있다. 회원들이 현장체험은 아직 어렵다. 거리가 멀어서이다. 그들의 거주지는 모두 서울이고 이곳은 경남 밀양의 영남 알프스 산자락이기 때문이다.


또한 귀한 회원들에게 소속감과 유대관계를 높이고자 기념품을 만들어 함께 나누고 싶었다. 기념품은 아는 도예작가님께 부탁을 드려서 빨간 사과 도예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밀양얼음골해피사과연구소 ㅇㅇㅇ'라는 각각의 이름을 새겨 넣기로 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연락을 해오셨다. 만들어서 가마에 넣기만 하면 금이가고 깨져서 만들기 어렵겠는데~라고 하셨다. 전문가의 손으로 빚어 수천 도의 불가마에 넣어 굽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렇지만 고민하고 고민해서 정한 도예 사과이고 작가님과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이대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비용이 더 올라가더라도 끝까지 해보기로 작가님을 설득했다. 그러나 여전히 쉽지 않았다. 다 만들었다는 작가님 연락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다리다 못해 가끔 먼저 연락을 드리면 "아직~"이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길어야 한 달쯤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예 잊고 지내는 편이 나았을 정도였다.


두 달이 지나고 석 달, 넉 달~ 부탁한 지 반년이 훌쩍 지나서야 드디어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완성작을 찍은 사진과 함께였다. 예쁘고 아름다워서 긴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 평생을 도예작업만 해오신 전문 작가님의 솜씨여서 더욱 그랬다. 작가님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회원들을 만나 사과작품을 선물할 때 금가고 깨진 사과 도예품을 펼쳐놓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것까지 챙겨 주시면 좋겠다고 부탁드렸는데 작가님은~ 안되죠~ 하고 당연한 듯 거절하셨다. 이유를 묻기가 어려웠지만 작품에 대한 자존감 때문이셨을까. 옛날 고려시대 한 도공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만들었던 도자기를 가마 안에서 모두 망치로 내려치던 장면을 언젠가 TV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일반백성의 눈으로 볼 때는 더없이 아까운 일이었을 터였다.


이에 대해서는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애써 그린 그림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거나 불사르고 마는 일들이 허다하다고 한다. 감히 '함부로 버릴 거면 그것 나 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에서 사뭇 장엄함이 느껴질 듯하다.


옛날에 어떤 명필이 있어서 본인이 써놓은 글 마지막에 자기 이름 석자 쓰는 것은 주저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작가정신이 따로 있다고 여기는 대목이다.


이웃에서 사과나무를 가꾸고 있는 O사장이 있다. 사과를 수확하고 시장에 내다 팔 때 눈속임이 절대 없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돈 몇 푼에 일 년 내내 수고한 내 모든 노력과 정성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주신 한 분을 팔 수는 없었다.


지난주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설명회를 한 적이 있다. 나보다 앞서 진행한 사람이 있었는데 흠잡을 데 없었다. 다음 차례인 나 자신도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대로 무리 없이 설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장소를 나와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부족했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것이었다. 특히나 영상으로 보게 될 때는 낯선 목소리 하며 표정들 그리고 익숙지 않은 말투 등으로 인해 아예 "난 안 보련다" 할 정도로 어색하고 얼굴마저 화끈거렸다. 누가 "좋던데요"하고 말해주어도 그 진심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치를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면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오기까지만 해도 누구나 백점 만점이라는 생각에 뿌듯하다. 이제부터 놀러 갈 생각에 마음이 앞서고 즐겁다. 그런데 웬걸. 곧이어 틀린 답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온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그리고 기운이 빠지는가. 세운 자존감이 산산조각 난다.


작가분들이 만든 작품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게 될까 싶다.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건만 나온 결과로는 여전히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산다.


나도 그렇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잘 나가는 전문가도 아니기에 이름을 걸고 얼굴을 보이며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주어지는 기회도 극히 한정적이지만 본성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거나 티 나는 것은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보이는 나의 얼굴표정, 말투, 제스처 등이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준비와 연습은 물론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먼 곳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자기 이해가 먼저라는 생각을 한다.


설명회가 끝나서도 여전히 설익고 서툴렀다는 그때의 부끄러운 감정이 남아있다. 이제 그것을 내려놓기로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나서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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