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있는 농사일도 지금 바쁜 터에 귀농귀촌 정부지원 좀 더 받겠다고 굳이 일을 만들어서 멀리 알지도 못하는 초면의 남 농장까지 가서 풀 뽑는 일을 해주고 오는데 내가 지금 뭐 하러 다니고 있나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심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얼마나 어이없고 생각이 부족한 사람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신청했던 귀농귀촌 교육 커리큘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정부지원 80만 원 자부담 20만 원으로 총 10일 교육 기간 중 오늘이 6일째다. 이론교육은 매일 8시간씩 지난 5일간 40시간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매 시간별 체크를 당하며 꼼짝도 못하고 수강하느라 애먹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머지 5일간 40시간은 또 체험농장실습 시간이다. 오늘 첫날이어서 새벽같이 나갔더니 시답잖은 주인장 본인의 농사지은 일을 밑도 끝도 없이 들어야 했고 이 더운 날 한낮에도 아랑곳없이 농사일 체험이란 핑계로 비닐하우스 안에서 풀을 뽑고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했다.
주인장은 오전에 그 잘난 말만 늘어놓더니 오후에는 아예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낮의 더위는 피해야 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폭염경고 메시지도 여러 번 보냈었다. 탁상공론 정부정책은 이런 현실과는 전혀 무관하다.
어쨌거나 환갑도 지난 사람이 무슨 큰 영화를 보겠다고 쓸데없는 이런 욕심을 부렸는가 싶다.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이 자기일도 바쁜 처지에 알지도 못하는 남의 비닐하우스에 가서 농사일을 체험 한다니~ 그것도 땀은 뻘뻘 옷은 흠뻑 젖어가며~
그러나 정부나 체험농장 주인이야 무슨 잘못이 있을까. 모든 책임은 오로지 내게만 있을 뿐이다. 애초에 이 교육과정을 신청하지 않았어야 했다. 지혜가 부족한 탓이다.
오늘 벌어진 일뿐만 아니라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이런저런 고생을 하지 않고도 좋은 자리를 잘도 찾아가던데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인가. 내 인생은 왜 모든 것을 끝까지 다 내가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까. 죽도록 맨몸으로 생고생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냥 한 번쯤이라도 공짜는 없는 것일까. 성질이 모나지 못해서 맨날 혼자 끙끙 앓고만 있다.
어제도 농산물 저온창고가 고장이어서 사람 불렀더니 별 한 것도 없는데 무조건 45만 원 달라고 했다. 시골은 사람 부르기만 하면 무조건 수십만 원 호가다. 만만하기가 호구 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깎지도 못한다. 그런 재주가 없다. 이런 사람은 혼자 살면 굶어 죽기 딱 알맞다. 지지리 궁상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애써 받아들이고 만다. 인상 쓰고 다투고 시비하기 싫어서이다. 세상에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남들처럼 알아서 되는 것이 없다. 존귀한 삶을 살아 볼 기회가 없다.
오늘 예정된 귀농귀촌 정부지원 농사일 체험실습은 09시부터 18시까지 하루 종일 빈틈없이 채웠다. 생판 모르는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치는 시간인 18시까지 끝까지 지켰고 18시 정각에 벽시계 앞에서 교육시간 준수 확인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해당교육 앱에다가 개별적으로 GPS 출석인증 버튼까지 누른 후에야 그 자리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어두워진 늦은 시간이었다. 한 끼 저녁 식사를 위해 국밥집을 들렀다.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 있는 작은 시골식당이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한두 번 들렀던 곳이다. 어머니께서 이 집 국밥이 맛있다고 하셨는데 이 쪽 지방에서 흔한 향토음식인 돼지 국밥집이다. 늦은 저녁시간까지 수더분한 주인아주머니가 혼자 지키고 있었다. 주문하고 나온 국밥을 먹고 있는 내내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나를 굶지 않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게 이 시간까지 문을 열어주고 있었던 주인 아주머니께 속으로 감사했다.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다. 자리도 예전에 마주 보고 앉았던 그 자리였다. 여린 탓에 사사건건 세상에 휘둘리기만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어머니 앞에서 펑펑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설움이 자꾸만 복받혔다.
어머니는 시커멓게 타들어간 내 속을 말하지 않아도 벌써 다 아시고 늦은 시간 시장하실 터임에도 처음 이곳을 왔었던 그 날 그때처럼 당신의 그릇에 담긴 좋은 고기 건더기를 자꾸만 내 그릇으로 퍼 담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입맛이 없대이. 니나 마이 무라. 더븐데 오늘 욕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