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하나
어느 부잣집에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새어머니는 전처소생으로 하나 있는 아들을 그렇게 못살도록 구박했다. 밥을 굶기는 것은 예사였고 아들에게는 옷가지조차 변변한 것이 없었다. 그녀에게 그 아들은 눈엣가시였다. 그녀는 영감의 재산을 노리고 살러 들어온 것이었다. 병으로 누워있는 영감이 언제 죽을 줄 모르는데 아들하나가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하루하루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느 날 그녀는 그 아들에게 지하 광(저장창고)으로 심부름을 시켰다. 아들이 광(壙)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 후 그녀는 밖에서 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따로 몰래 만나는 남자를 불러 광을 흙으로 완전히 덮어 버렸다.
영문도 모르고 지하에 갇힌 아들이 문을 열어달라 살려달라 아무리 소리치고 외친들 밖에서는 들릴 리가 만무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지하 광에서 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꼼짝없이 갇혔으니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긴장한 나머지 정수리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새어머니가 자기를 미워해서 한 짓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혹시나 해서 광의 문을 한번 더 힘껏 밀어 보았다. 그러나 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열 번이고 반복해 보았지만 문은 꿈쩍도 않는 바위 같았다.
배가 고팠다.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여기서 밥을 어떻게 먹을 수 있나. 갇힌 것은 고사하고 굶어서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그리고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다.
허기가 점점 더 심하게 밀려왔다. 어지러웠다. 바닥에 가만히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잠들면 배고픔도 잊힐 것이라고 여겼다. 어머니만 살아 계셨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어린 아들이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고개너머 외가로 가는 중이었다. 엄마는 보퉁이를 하나 머리에 이고 계셨다. 고갯길을 들어설 무렵 짙은 안개속에 벌써 어둠이 내렸다.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아들은 깜짝 놀랐다. 오싹 몸이 움츠려들었다. 엄마한테 바짝 기대 치마폭에 얼굴을 감쌌다.
이제는 누군가가 숨어서 흙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도 날아왔다. 어두워서 누구인지 보이지는 않았다.
좁은 산길을 엄마와 아들은 서둘러서 바삐 걸었다. 누군가 따라오면서 계속 흙을 뿌렸다. 머리가 쭈삣서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떨리는 무서움으로 아이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엄마 손만 꼭 잡은 채 종종걸음을 쳤다. 바삐 걷느라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 다시 찾아 신어야 했지만 엄마는 주춤거리는 아이의 손을 더욱 세차게 끌어당길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는 계속 괴괴한 소리를 내며 흙이며 잔가지를 던졌고 오르막 길은 더욱 가팔라졌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어느듯 고개 마루에 올라섰다. 멀리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불빛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뒤따라오며 그토록 흙을 뿌려대던 그 누군가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같이 있어야 할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손을 꼭 잡고 내내 따라왔건만 한순간 손을 놓치고 만 것인지 아무리 둘러 보아도 엄마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를 두고 엄마는 혼자 어디로 갔을까. 엄마~하고 불러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혹시라도 엄마가 앞서서 먼저 가고있나 싶었다. 엄마의 뒤를 쫓아 그는 내리막길을 뛰다시피 빠르게 내려갔다.
한참을 따라잡아 갔는데도 끝내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만날 수도 없었다. 아들은 길에서 그만 엄마를 잃고 말았다고 슬퍼했다.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아들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선가 갑자기 찬 기운을 느낀 아들이 눈을 떴다. 그렇지만 사방은 여전히 캄캄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직도 밤이라는 착각을 했다.
잠을 깨고나서 방금 꾸었던 꿈을 떠올려 보았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보고 싶었던 엄마를 꿈속에서 다시 만났다. 엄마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아들의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그리고 일어났다. 엄마가 이끌던 대로 이곳을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방법을 찾느라 궁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광은 주로 감자를 저장하는 창고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어둠 속에서 이곳저곳 손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감자를 무더기로 쌓아놓은 곳을 찾았다. 굵은 감자하나가 손에 집혔다. 그는 그것을 손으로 비벼 흙을 털어내었다. 그리고 옷에다 쓱쓱 몇 번 문지른 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감자에는 물이 많았다. 그는 그렇게 허기진 배를 생감자로 채웠다.
그는 온 감각을 동원하여 땅을 팔만한 도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맨손으로라도 땅을 파기 시작 했다. 손을 사용하여 조금씩 조금씩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그에게 꿈이란 오직 이 광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살아 있기에 가질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이었다.
흙을 파다가 지치면 쉬거나 잠을 잤다. 배가 고프면 감자를 찾아 먹었다. 잠이 깨면 다시 구멍을 뚫었다. 하루하루 날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손톱은 갈수록 길게 자랐다. 길게 자란 손톱이 땅 파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캄캄한 광속에서 혼자였다.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떠오른 유일한 말상대는 엄마였다. 그는 자주 엄마한테 혼잣말했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던 맛있는 밥을 떠올리곤 했다. 여기서 나간다면 밥을 원껏 먹어보고 싶었다. 엄마는 환한 얼굴로 아들이 하는 말을 모두 들어주었다.
어느덧 아들의 허리정도까지 땅이 파졌다. 손톱은 더욱 길어졌다.
그런데 그동안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감자가 점점 손에 덜 잡히기 시작했다. 알맹이도 잘았다. 땅은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다 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이제껏 파놓은 것조차 모두 허사가 될 것이었다. 좌절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의 희망이 어쩌면 통째로 사라질 판이었다. 모든 기대와 바람이 아예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다.
엄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엄마는 여전히 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아들은 남아있는 감자를 손으로 일일이 하나하나 세어 보았다.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먹는 양을 줄였다. 배고픔을 참기 힘들었지만 끝까지 견디기로 했다.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사력을 다해 쉴 새 없이 구멍을 파고 올라갔다. 미친듯한 그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파고 파고 또 판 끝에 자기도 모르는 새 땅으로 나갈 수있는 마지막 흙을 파내게 되었다. 드디어 땅위로 향하는 구멍이 생겼다. 구멍이 뚫리자 찬란한 빛이 뚫린 구멍으로 쏟아지듯 한꺼번에 밀려 들었다.
마침내 그는 빛을 보게 되었다. 지친 몸도 배고픔도 모두 잊었다. 빛의 광채는 눈부시게 화려했다. 그리고 숨이 멎을 지경으로 아름다웠다. 이전에 보았던 그 빛이 결코 아니었다. 빛이 그에게 말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다. 빛은 살아 있었다.
그는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빛이 있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광처럼 어둠이 아니었다. 바깥의 공기로 호흡을 했다. 얼마만인가. 공기는 신선했고 아기의 숨결처럼 보드라웠다. 그리고 달콤했다.
사람들은 땅속에서 갑자기 솟아난 괴물을 보았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했다. 그는 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온통 흙투성이었다. 늘어뜨린 머리칼과 손톱은 길고도 흉했다.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흉물스럽고 무섭다고 했다. 혼자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데 들릴락 말락 했다. 매우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기쁨으로 벅차올라 그에게 주위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감격의 눈물이 나왔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것에 오직 감사했다.
그는 힘주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토록 바라던 바를 비로소 이루었다. 더이상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