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여정

이동의 역사를 보며

by 장현수

튀르키예의 역사는 긴 여정의 역사다. 앞으로도 또 어떤 이동으로 계속 이어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몽골초원 동부에서 최초 흔적이 드러나는 유목민으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 가면서 자리 잡은 곳이 지금의 위치다. 아나톨리아 반도. 수없이 많은 역사서에서 아시아라 일컫는.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위대한 영웅 헥토르와 아킬레스가 맞붙었던 트로이 전쟁의 그 트로이가 위치해 있었던 곳.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개 교회들 중 서머나 교회, 에베소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다.


그들은 최초 흉노 제국을 일으켰고 이어서 세워진 돌궐 제국은 우리의 고구려와도 소통했다. 그들은 다시 셀주크 제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여 근세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은 국명이 튀르키예. 그들은 유라시아 초원을 거쳐 서쪽으로 이동하며 제국의 긴 흔적을 남겼다. 튀르키예는 물론이고 아제르바이잔, 이란의 아제리인, 이라크의 튀르크 멘, 투르크메니스탄이 아직도 그들의 민족으로 남아있고 그들끼리 언어도 거의 유사하여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 부럽다. 우리 민족과 닮았고 우리와 언어가 유사한 어떠한 민족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반갑고 서로 의지가 되겠는가. 우리가 우리말과 닮아 있다는 인도 타밀어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러 민족이 섞여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도 많다. 하물며 동질적인 민족이 각 나라에 걸쳐 살며 역사를 세우고 서로 왕래할 수 있다면 민족의 힘은 더욱 크고 위대해질 수 있을 것이다.


튀르키예는 아랍민족이 아님에도 이슬람 국가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초원을 따라 점진적으로 이동해 갔다. 그러다가 중앙아시아 서쪽에 위치한 아무다리야 강과 시러다리야 강 사이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일시적 대규모 정착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거기서 그들은 이슬람 두 번째 왕조인 아바스 왕조와 교류하게 되면서 수니파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산업도 주류였던 목축업에서 상업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그들은 점차 제국형성의 기틀을 쌓게 되고 11세기에 들어서서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이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셀주크 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랍인과 페르시아인을 그들의 지배하에 두기에 이르렀다. 셀주크(정확히 말하면 직전 멸망한 이란 이라크 지역 대 셀주크제국이 아닌 아나톨리아 셀주크 조)는 십자군 전쟁에서 이슬람 편에 서서 승리했다.


튀르키예가 흉노족으로 제국을 세웠을 때 그 한 일파인 훈족이 게르만을 치고 들어가는 바람에 게르만 대이동이 일어났다. 이에 서로마가 흔들리고 결국 게르만족 출신의 오도아케르에게 476년에 멸망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눈이 동쪽도 아니고 굳이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튼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면 남쪽인 지금의 중국 땅 당나라나 송나라 그리고 거란 땅으로 몰아 칠 수도 있었을 텐데 역사의 현상은 참으로 알 수 없기만 하다.


몽골의 칭기즈칸 세력에 의해 튀르키예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정복을 당하고 급기야 함몰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또다시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일으켰다. 다른 곳으로부터 이동해 왔던 그들이 그곳 반도의 원주민이었던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유대인들까지 모두 복속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우리는 메흐메드 2세를 특히 주목하게 된다. 그가 아버지 무라드 2세로부터 술탄직을 이어받을 무렵 비잔티움 제국은 수많았던 영광의 시절을 뒤로하고 제국의 기운은 나날이 쇠퇴해져 가고 있었다. 인구 또한 전성기 40여만 명에서 4만여 명 정도로 급감했다. 제국에서 남아있는 영토라야 오스만 제국에 둘러싸인 도시 콘스탄티노플 밖에 없었다. 이미 튀르키예는 오스만 제국으로 새롭게 일어서게 된 터라서 나날이 강성해져가고 있었다. 그들은 트라키아(발칸반도 남동쪽. 로마시대 트라키아 속주라 불리던 지역. 오늘날 불가리아 남부, 그리스 북동부, 튀르키예의 유럽영토 즉 발칸반도 끝자락) 이북으로까지도 유럽 땅을 곧장 치고 올라갈 기세였다. 이렇게 긴 이동을 이어가고자 하는 역동적인 민족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중원으로 멈추지 않고 내달으며 호령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말발굽 소리와 그 함성을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 맥박이 우리 민족에게도 여전히 뛰고 있지 않은가.


나이 21세의 메흐메드 2세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이 마지막 남은 콘스탄티노플을 끝내 함락시키고 유럽을 향한 길을 열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다. 그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병사들에게 콘스탄티노플 진격을 명령했다. 그들은 코앞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골든혼(금각만)' 우측 측면으로 진입했다. 원래 골든혼 입구에는 굵은 쇠사슬이 가로 쳐져 있어서 그 당시 어떠한 배도 침범할 수 없었다. 쇠사슬에 걸리면 배는 전복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는 대규모 함대를 '갈라타 언덕'을 넘어 육로로 이동시켜 하루아침에 골든혼 가운데로 내려놓았다. 큰 전함을 골든혼 건너편 산길로 한 척씩 한 척씩 밀어 육지를 타고 바다로 넘어가도록 한 것이었다. 동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피눈물 나는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참패를 면치 못하게 되면서 천연의 요새로 이름을 떨쳤던 이 세기적 대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방인의 제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서로마에 이은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이 결국 멸망한 것이었다. 1453년 5월 29일 화요일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튀르키예 공화국 성립 이후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로서 유럽은 중세를 마감하고 세기는 드디어 근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튀르키예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 정복 후 스스로 엄청난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조정 신하들조차 근접을 허락하지 않았다. 외국의 귀한 손님이 와도 만나주지 않았다. 이전에 그가 하던 모든 일은 대재상에게 맡겨졌다. 그는 특별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식사를 즐겼다. 그는 자신을 로마제국을 승계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신성한 황제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원정을 서두르다 야영 중에 통풍으로 49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의 손자인 셀림 1세가 이집트의 노예제국 맘루크 왕조를 격파함으로써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지역 거의 모두가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 들어왔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면서 이슬람세계의 수장인 칼리프가 되었다. 비 아랍계에서 이슬람 최고위가 탄생한 것이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발칸반도를 통한 트라키아 이북지역 유럽땅을 밟기 위해 원정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등에서 오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50세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럽전역은 그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에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갑자기 전해지자 비로소 한숨을 놓았다.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에서 감사의 특별 기도회를 가졌다.


그러나 셀림 1세의 아들 쉴레이만 1세는 유럽 원정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베오그라드를 포함한 헝가리까지 진출했다. 그에게는 후궁출신 휘렘술탄 황후가 유명하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우크라이나 출생으로 어린 나이(14세)에 타타르 족에게 사로잡혀 노예 신세가 되었다. 그 뒤 오스만튀르크 술탄에게 팔려와 궁전내실 하렘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서열 1위로 오르게 되었다.


1683년 오스만 제국 메흐메드 4세가 빈 원정을 시작했을 때 유럽은 또다시 경악했다. 그가 드디어 유럽의 심장부 합스부르크가 의 빈을 포위했다. 그러나 식량부족과 전염병으로 인해 포위를 풀고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오스만 제국 서진(西進)의 역사는 '일단' 멈추어지게 되었다.


메흐메드 4세의 아들 아흐메드 3세는 내정에 치중하고 튤립 시대를 열었다. 그는 아름다운 톱카프 궁전을 온통 튤립으로 꽃장식했다. 튤립의 원산지로 우리는 유럽 네덜란드로 이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중앙아시아다.


18세기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행진곡인데 심벌즈와 큰 북을 사용하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군악연주에 감명을 받아 작곡한 행진곡이다. 그는 튀르키예 문화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유럽이 오스만 투르크를 아직 이방의 아시아로 이해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오스만 투르크는 유럽과 점차 화해를 위한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루어 온 바와 같이 튀르키예는 또다시 어떠한 모습으로 서진을 계속할지 모른다. 그들 민족의 속성은 미래에도 변하지 않고 지금처럼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구를 돌고 돌아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올 날이 언젠가는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결국 우리와도 국경을 마주하고 대치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우리와 어떠한 모습으로 마주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우리와 싸워서도 그 강력한 저력을 또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까.


튀르키예가 지금은 아시아의 서쪽 끝 유럽의 변방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는 튀르키예 민족의 저력이 또 불을 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은 결코 한 곳의 땅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사는 이동의 역사이며 멈추지 않는 삶의 역사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낯선 땅을 찾아 언제라도 옮겨갈 운명을 타고난 민족이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와 같이 우리 민족의 앞날에도 제국으로 크게 번성할 날이 반드시 올 것으로 믿는다. 우리도 중국 땅을 밟고 유럽 땅을 밟고 그리고 미국 땅과 러시아 땅을 밟을 날이 반드시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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