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陶淵明)을 그리다
[젊어서 세속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성격이 본래 언덕과 산을 사랑했다
잘못 올가미에 빠져
내처 30년이 지났다
조롱의 새도 옛날의 숲을 그리워한다
연못의 고기도 이전의 늪을 생각한다
남쪽들의 황무지를 개간하자
고집을 세우고 전원으로 돌아온다
~~
오랫동안 새장 속에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구나
~~
콩을 남산 밑에 심었더니
풀만 무성하고 콩모종은 드물다
새벽에 일어나 김을 매고
달빛 속에 호미 메고 돌아온다
~~
저녁 이슬에 내 옷이 젖는다]
시골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사시사철 대문은 열려 있지만 찾아와 주는 사람이 귀하다.
좁은 골목길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그 집에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집안에 홀로 밤을 새우니 번잡스러운 생각이 끊어진다.
새벽이 되니 어디선가 낯선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왔다가 저리 울고 있을까마는 찾아가서 다독여 줄수도 없는 것이다. 간간이 개가 짖는 소리도 들려온다.
새벽 밭일을 나갔다가 겨우 한 사람을 만난다. 별 이야기가 있을 수 없다. 그저 지은 농사 이야기다.
내 밭에 과실이 달려 영글고 있지만 밤낮으로 벌레가 걱정이다. 잘 익은 과실만 쪼아대는 새들도, 바닥으로 처진 과실을 파먹는 쥐들도 다르지 않다. 언제쯤 그들은 잠잠해질까.
천둥번개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다. 비탈진 골목은 물길이 되었다. 길 잃은 고양이가 새끼를 데리고 있다. 집으로 가지 못해 슬프게 운다.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나면 엎드렸던 풀들이 일제히 하늘 보고 자란다. 솟구치듯 자란다. 호미 잡은 손이 바쁘게 되었다.
건너편 공터에서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있다. 여자애들은 고무줄놀이로 신이 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또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 귓가에도 환청이 인다. 벌써 오십 년도 더 지난 어릴 적 모습이다. 시골은 조용하다. 아이들이라고는 없다. 아이들이 놀던 자리에 정적이 자리를 깔고 주인처럼 누워있다.
비가 그친 후 밭으로 나가 본다. 신발이 금세 젖어온다. 발자국 소리에 밭에 서 있던 과실수들이 움찔하고 놀란다.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닌데. 병든 과실이 또 하나 보인다. 병을 옮기지 않도록 따서 다시 못 볼 먼 곳으로 던져낸다. 붉어지길 기다려 언제나 딸 수 있으려나. 조급한 마음이다.
그새 친하게 된 고양이들 세 모녀가 가까이 다가온다. 내가 밭에서 걸어 나오니 강아지 마냥 졸졸 뒤따라 온다. 높은 산 위로 때늦은 비구름이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어두워져서 돌아서는데 작별인사를 했음에도 또다시 고양이들이 따라 나온다. 몇 번이고 뒤돌아 보아도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다. 결국 안아서 고양이들 집까지 데려다주고서야 어두워진 길을 따라 집을 향한다.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잠시라도 빈틈은 없다. 긴 영화를 짧게 축약해서 보는 것처럼 축약인생은 없다. 공백처럼 여겨지는 부분은 지나간 일이라 기억하지 못하고 잊힐 뿐이다. 인생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들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작고 사소한 것으로도 인생은 단절 없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살던 사람이 이제 보이지 않으면 그 인생은 끝난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여기저기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예전 살던 집터에서 서성거리며 우물과 부뚜막이 있었던 자리 그리고 심겼던 뽕나무와 삼이 가꾸지 않아 썩어 그루터기 된 것을 찾아볼 뿐이다.
해가 지니 어둠이 내린다. 집들마다 하나둘씩 불을 밝힌다. 새로 익은 술을 걸러 닭 한 마리로 이웃을 불러 만찬을 즐겨도 좋은 저녁이 되었다. 그렇지만 가족을 두고 내려와 혼자인 나는 조촐한 밥상을 마주한다. 떨거덕 거리는 수저 소리만 크게 날 뿐 말을 나눌 상대가 없다. 그저께 아내가 다녀간 이후로 왠지 모를 허전함이 깊이 남았다. 한방울 눈물이 뚝 떨어진다. 아~ 이게 외로움이라는 거구나. 멀리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며 홀로 계셨던 어머니도 이랬겠구나.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에 뒤늦은 설움이 복받친다.
이렇게 살아서의 마지막 저녁을 맞는다. 내일이 되면 내일조차 마지막 저녁일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매일 마지막 저녁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 내일 아침해가 떠오르면 새로운 날이 새하얀 백지 위의 그림처럼 또 아름답게 그려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