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聖物)에의 집착
몇 년 전 독일 여행 중에 트리어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트리어에서 먹었던 점심은 너무 지독했었다. 검은색 소고기(커틀릿?) 종류였는데 짜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먹기를 시도했지만 도저히 못하고 끝내 뱉어내고 말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트리어에서 한 성당을 방문했었다. 그 성당 안에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성의(聖衣)가 여태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이 성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입었던 속옷이다.(겉옷은 현장에 있던 네 명의 로마병사들이 나누어 가졌고 통으로 된 속옷은 그중 한 병사가 제비 뽑기로 가졌다-요한복음 19:23~24)
보존된 곳은 아무나 손대지 못하게 자물쇠로 입구가 채워져 있었다. 채워진 입구 앞에서 일행은 너도나도 사진을 찍었다.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에 대한 깊은 묵상이나 공감이 있었는지 그것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트리어에 있는 성의는 본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갔다가 가지고 온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복음을 깊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아들 콘스탄티누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4세기 참회록을 쓴 성 어거스틴에게도 그러한 어머니가 있었다. 모니카(Monica)이다. 방탕한 아들 어거스틴을 믿음의 길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 수십 년을 눈물로써 기도했다. 그녀의 기도는 결국 응답을 받았다.
헬레나는 가져온 성의를 그 당시 황후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던 트리어의 한 성당 내에 보관하도록 했다.
트리어는 독일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룩셈부르크가 여기서 금방이다. 로마제국시절에 건설된 오래된 도시다.
팽창하고 비대했던 로마제국을 단 한 명의 황제가 통치하기에는 버거웠다. 3세기말 달마티아 출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서방과 동방으로 나누었다. 서방과 동방에 각각 황제를 정제와 부제로 두명씩 두고 사두체제로 분할 통치를 하게 함으로써 제국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고자 했다. 트리어는 이때 네 명의 황제가 다스리던 제국 네 곳의 수도 중 한 곳이었다. 서방의 부제(정제는 막시미아누스)였던 콘스탄티우스가 자리 잡은 곳이고 그 아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곳이다.
콘스탄티누스의 모후 헬레나는 예루살렘 순례길에서 성의 이외에도 예수님이 달려 처형된 십자가와 골고다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던 계단(성계단) 등 여러 가지 성물들도 함께 가지고 왔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이 성의를 관람하기 위해 해마다 트리어로 몰려든다.
트리어처럼 유럽에는 예수님과 관련한, 그리고 기독교 성인들과 관련한 신체의 조각이나 유물 등 성물(聖物)들을 보존하는 성당이 흔하다. 그리고 이를 특정한 시기마다 일반에 관람을 허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성물들의 진위여부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다.
유럽의 여러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성의를 포함한 갖가지 성물(聖物)들은 무엇보다 4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의 영향이 크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침탈하고 예루살렘을 포함한 인근 지역으로 들어왔다가 획득해 간 것들이 대부분이다.
성물은 그 지역의 수호자로 높임을 받는다. 그리고 많은 병의 치료에도 효험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성물이 보관되어 있는 성당으로 알려지면 순례객들 방문이 늘어 지방경제에도 큰 이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각 성당들은 기를 쓰고 성물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물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은 전설의 영웅 '아더왕 이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의 성만찬 성배(聖盃)를 찾기 위해 왕의 기사들인 원탁의 기사들이 각자 길을 떠나 겪게 되는 여러 모험담이 실려있다.
또 베스트셀러였던 다빈치코드는 어떤가. 여기서도 성배의 진실여부를 찾는 줄거리로 읽는 이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않게 하고 있다.
나폴리 대성당은 산 젠나로 대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젠나로 성인의 피가 보존되어 있다. 주후 305년에 박해받아 참수형 받은 나폴리 출신의 순교자이다. 그의 피 60밀리리터가 남아 있어 각종 재해나 대형 지진을 막아준다고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는 주후 60년경에 그리스지역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머리는 순교한 그리스 파트라스에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 산 안드레아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마태의 유해는 살레르노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를 하다가 거기서 순교를 했다. 순교 후 800년이 지난 후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그의 유해를 훔쳐와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치했다.
스페인 지역 전도에 나섰던 야고보(세베대의 아들이자 사도 요한의 형) 사도는 유해가 스페인 산티아고에 안치되어 있다.(산티아고 대성당) 그는 아그리파 왕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당하였지만 유해는 그의 제자들(아타나시오와 테오도로)에 의해 선교지역 이었던 갈리시아 즉 스페인 땅으로 옮겨졌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그로 인해 지금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루어진 것이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유해는 산 자카리아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사가랴의 유해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비밀리에 이탈리아로 들여온 것이다. 그들이 그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성당의 건물을 세웠다.
160년경 성녀 루치아가 순교를 당했다. 루치아의 유해는 유럽 여러 도시에서 나눠달라는 요청으로 본체는 베네치아에 있으며 조각으로 나누어진 다른 유해들은 오스트리아의 빈 등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안치되어 있다.
교황청 직속 대성당인 이탈리아 파도바의 산 안토니오 대성당에는 이탈리아의 3대 성인중 한 명인 성 안토니오의 혀가 금으로 만든 상자에 보관되어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그가 설교할 때에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산 조반니 성당에는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 수의가 아직도 남아있다. 십자군전쟁 당시 성전 기사단이 습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있다. 조만간 일반에 공개될 예정으로 아직은 미공개 상태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시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병사는 론지노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병에 담아서 보관하고 있었다. 이 피는 현재 만토바의 산 안드레아 성당 등 이탈리아와 파리 생트샤펠 성당에 분산 보관되어 있다.
이외에도 예수님을 찌른 창(聖槍, 롱기누스 창), 가시면류관, 예수님을 묶었던 쇠사슬 등 수도 없이 다양한 성물들이 있다. 특히 가시면류관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구해왔다고 한다. 가시면류관은 현재 파리 노트르담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프랑스 오툉이라는 곳에는 나사로의 유골이 있으며 또 다른 곳 마를렌 성당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이 남아있다.
우리나라 어느 성당에서도 단 몇 센티미터 성십자가 조각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과 관련한 성물들을 눈으로 직접 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치유와 회복을 이유로 손으로 만져보기를 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상을 버리라고 하신다. 물론 라틴어의 어려움으로 일반인들이 성경을 접하기 어려운 시기에 성화와 성물을 통해서도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믿음을 키워갈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직접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치유와 구원을 소망한다. 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믿는 그 믿음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