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17

부모님 산소에 들르다-추석을 앞두고

by 장현수

3일째 몸살감기 중이다. 첫날 콧물 기침이 기온차로 인한 단순한 비염증세가 아니었나 보다.

첫날은 무엇을 삼킬 적마다 목이 따가웠고 재채기가 많았다.

둘째 날은 한기에 온몸이 아팠다. 흔히 삭신이 쑤신다는 말과 같았다. 전날도 그랬지만 둘째 날도 거의 잠에 들지 못했다. 그리고 입맛이 사라졌다.

사흘째가 되니 기침이 잦았다.그리고 여전히 머리는 열나고 지끈지끈거렸지만 전체적으로는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다. 컨디션이 어느정도 회복이 된 것이었다. 그제야 겨우 집을 드나드는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 줄 수 있었다. 아프니까 무엇보다 뭘 잘해 보려고 하는 의욕부터 사라져 버렸다. 안 하면 어때~ 못하면 어때~ 나도 모르겠다~하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었다.


더구나 수확기가 한 달 반 남아있는 사과가 이젠 약을 칠 수도 없는데 지금 자꾸만 병들어 가고 있다. 병든 사과 열매를 볼 때마다 나의 속은 더 썩어들어 간다. 올여름 그 무더위 속에서 방제복, 방제 마스크, 장화 신은 차림으로 병충해 예방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썼건만 아랑곳 없다. 약 분사액으로 범벅이 된 비싸게 주고 맞춘 방제용 안경은 쓸모가 없었다. 앞이 흐려져 서있는 나무들이 희끄무레 윤곽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참고 견디며 약을 쳐 주었는데~


이제는 그런 고생과 고통을 감내한 보람이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봄 냉해 입은 피해보상 농협보험금조차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했다. 잔뜩 기대해오고 있었는데 대상이 아니라기에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300여 그루 중 사과가 달린 나무는 채 30%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사과가 하나도 달리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그러나 그들의 지급방식이 나와 전혀 다를 수도 있기에 원망은 하지만 한은 품지 않는다. 사과나무를 거의 돌보지 못했던 지난 2년간은 그래도 서울에서 내려가고 올라오는 차비정도는 보험금으로 충당이 가능했었다. 그러나 올해보다 훨씬 못한 작황이었다.


그래도 한해동안 내내 돌본 '내 사과'들이다. 마음이 편치 못해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먼저 올사과(조생종) 품종이 있는 밭으로 나가 반사필름을 깔았다. 반사필름은 사과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익도록 하기위한 농가의 고육지책이다. 잎들에 가린 사과들은 햇빛을 잘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오늘까지 3일째 아픈 것은 허리 통증때문이구나. 허리를 숙이고 하는 작업이다보니 허리가 더 아팠다. 바닥에는 또 며칠사이 떨어진 병든 사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필름 비닐을 깔아야 하기에 떨어진 사과를 모두 줍고 밭 한편으로 모아 버렸다.


얇은 필름을 나무아래로 일일이 허리 숙이며 편평하게 깔았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주먹돌을 구해다가 군데군데 눌러 놓았다. 부실한 내 몸에 조금이라도 닿은 사과들이 그새를 못참고 툭툭 떨어졌다.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 '툭툭' 사과 떨어지는 소리다. 속상하기만 했다. 이루 말할 수없이~


아픈 몸을 하고 아침 7시경 시작한 일이 오전 11시가 지나서야 겨우 마무리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우리 밭 옆집 손대표와 과수원 아래에서의 情談도 귀찮았다. 멀리서 보고 눈인사로 때웠다. 만사가 그냥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그냥 가서 눕고 싶었다. 아프니 집까지 걸어가는 그리멀지 않은 이 길조차 얼마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겨우 집에 오니 고양이들도 나의 이런 행색을 눈치챘는지 다들 어디로 가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밭에 나가면서 세 개의 그릇에 부어주고 갔던 사료도 거의 그대로 남았다. 이유를 찾아보니 아픈 후부터 간식을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전엔 캔 간식을 오후에는 사료용 황태 부스러기를 나눠줬었다. 늘 해오던 그것을 사흘째 빼먹고 있었으니 고양이들도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 거였구나.


다음 주에 추석이 있고 내일 개천절부터 추석 연휴가 근 일주일여 동안 이어진다. 오늘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산소를 들렀다. 원래 예정은 부모님 산소를 먼저 다녀와서 반사필름을 까는 것이었으나 그것이 바뀌었다. 갑자기 밑엣집 아주머니가 대추나무 턴다고 장대를 빌려달라며 새벽 댓바람에 찾아오셨길래 따라 집을 먼저 나섰기 때문이었다. 산소는 차를 몰고 가야 하니~


좁은 산길을 작은 차를 몰고 산소까지 올라가는 동안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어머니 아버지 산소 앞에 서니까 그리고 방금까지도 아픈채 밭에서 일하던 흙 묻은 행색 그대로 서있자니 울컥 눈물부터 쏟아졌다. 몸도 아프고 일도 힘든데 의지할 부모님은 계시지 않고. 어머니 아버지께 '오늘은 조금 아프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천국에서 잘 지내시는지 여쭈어 보았다. 말이 없었지만 어머니 아버지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일하고 댈낀데(힘들 텐데) 기양(그냥) 가지 말라꼬(뭐하려고) 오노. 아픈데 기양 나뚜지말고(놔두지 말고) 단디 약 사무래이(사 먹어라) 그래야 빨리 낫제"


어머니 아버지께 이 땅가운데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허락하여 주시고 마침내 생명이 다했을 때 한없는 사랑으로 천국 백성으로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지금은 눈물로 남아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지만 두 분을 다시 만날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새 힘주시는 은혜에 또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KTX로 서울 집으로 올라오는 동안 몇 번 잔기침을 한 것 말고는 별 탈 없이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두고 온 '나의 사과나무' 생각들로 차 있었다.


추석연휴가 지나면 빨갛게 잘 익은 사과부터 매일매일 수확을 해서 잘 팔도록 해보아야겠다. 살아 냄이 그래도 희망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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