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포처럼 쓰다
글을 쓰는 것은 참 좋다. 생각들을 나름대로의 전개방식으로 정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금방 잊히고 만다. 특히 한 해 두 해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그렇다. 그래서 서둘러서 기록해 놓아야만 한다.
요즘은 누구나 글을 많이 쓰는 시대다. 교육의 효과라고 본다.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여러 방법을 통해 글을 쓰는 방식을 누구나 쉽게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가히 글의 홍수 시대라 할만하다. 넘쳐나는 글에 비해 읽어 볼 마음의 여유는 따라가지 못한다. 타인의 글을 읽고 여기에 공감하고 감동을 서로 나누면 참 좋겠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훌륭한 작가의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인다. 글 속에 푹 빠져서 벗어나기가 쉽지 읺다. 그리고 나도 이런 작품하나 언젠가는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또한 좋은 문장을 보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되뇌곤 한다. 문장을 씹는 맛이다. 어떻게 이러한 문장이 나올수 있을까 감탄하며 놀라기 일쑤다. 좋은 문장을 대하게 되면 스스로의 격이 한층 올라가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과 주요 전개상황 그리고 느낀 감동을 빈 노트에 같이 적어 나간다. 책을 읽고 나서도 노트를 들추며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적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렇게 정리한 노트 중 최근에 한 권을 잃고 말았다. 서울 집에서나 시골 집에서나 그리고 수트케이스나 사용하는 모든 가방을 다 뒤지고 찾아보았지만 결국 ㅠㅠ. 마지막으로 닿은 추측은 KTX. 매주 시골 가고 오는 KTX안에서 노트를 펴고 정리한 내용을 읽기도 하는데 내리면서 좌석 매거진 함에 둔 채 잊고 내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 노트를 찾지 못해 아직도 아쉽고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트에는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책 내용을 통해 깨달았던 수많은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 간절하게 찾고 있는 이 노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든지 딴생각이 나기 전에 속사포처럼 글을 써 내려가기 바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빨라 글 쓰는 손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이로 인해 오탈자와 띄어쓰기 오류가 속출한다. 어떻게 보면 글을 쓰기보다 쓰고 난 후 틀린 철자와 문장을 바로잡는 것이 시간이 더 걸리고 또 어렵다. 어쨌든 거친 문장과 어휘로라도 글 하나가 초안으로 완성되면 그것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마치 빠르게 지나가는 물고기를 그물을 쳐서 잡아놓은 것과 같은 느낌이다.
글을 하나 썼다 하더라도 이대로 책을 낼 수는 없다. 책 낼 구체적인 계획이 서면 좀 더 다듬고 수정을 해야 할 것이다. 브런치는 벼와 같은 곡식을 거둬들이는 대로 담아두는 자루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시장에 내고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자루를 풀어 따뜻한 햇볕에 널고 말려야 하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천부적인 소질을 바라고 그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할 말은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자기 생각을 담아 가장 자기답게 펼쳐 내는 것이 가장 잘 쓰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도 글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부족하다고 여기지만 글로 먹고사는 프로는 아니기에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담기 위해 열심히 써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 속의 나를 계속해서 밖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의 일과 생각이 투박하지만 글이 되어 오래 남게 되기를 바란다.
시공을 초월해서 다시 누군가에 의해 이 글들이 빛가운데 드러나게 된다면 그때는 켄터베리 이야기(제프리 초서)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한때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때가 되면 문학작품이 되고 또 하나의 역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