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을 바라보는 정서

몇 가지 지명과 단어들에 대한 시선

by 장현수

보헤미아는 체코지역의 지명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해외여행으로 많은 이들이 다녀왔을 법한 프라하와 체스키크룸로프가 위치해 있는 곳이다.

역사적인 사실이야 차치하더라도 보헤미아라는 지역명칭만으로도 집시들의 삶과 더불어 얻는 영혼의 울림은 크다. 집시의 출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어떻게 지금까지 흘러오게 되었는지 또 전 세계적으로 어떻게 퍼져 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주로 어떤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굳이 알아야 할 이유를 찾기보다 보헤미안으로 불리는 그들의 삶과 노래 그리고 정서를 나는 동경한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 마주하며 어울리고 싶은 것이다.


집시들이 한때 보헤미아 지방에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에 그들은 '보헤미안'이 되었다.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미지가 빠르게 날아와 자리 잡게 된다. 유럽의 낯선 어느 들판에서나 작은 골목길 어디에서도 마주칠 수 있을 법한 그들이다. 그들에 대한 느낌만으로도 무언가 묘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법한 그들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짐을 싸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는 그들을 본다. 한두 대의 마차가 그들의 영원한 길동무다. 그들에게 대지는 침대가 되고 하늘은 이불이 되어준다. 어디서나 마주치는 비는 그들의 동무가 된 지 오래다. 옷깃을 한껏 세우게 하는 바람도 그렇다. 검게 찌들고 마른 고깃 조각 하나라도 그들에겐 훌륭한 한 끼 식사다. 그들에게도 눈물이 있을까. 찢기고 헤어진 그들의 옷자락에서부터 벌써 짙은 우수(憂愁)가 드러난다. 얼마나 쌓였을까. 누구에게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어디서든 환대받지 못하는 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들 영혼의 자유로움이다.


그들에게서 오는 느낌은 과거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향수(鄕愁) 정도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모든 상념을 아우르는 노스탤지어다.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특정할 수 없는 그들이다. 그들이 자란 곳은 여정 이외 다른 곳이 있을 수 없다. 태어난 곳조차도 여정가운데 마주치는 일상일 터이다. 그들의 고향은 여정이다. 이 여정은 끝이 아니고 한없이 이어져 간다. 지나온 날들 가운데 그들이 추억할 한숨과 아픔이 있다면 그리고 지금의 안도와 기쁨이 있다면 그들에게 그것은 노스탤지어이다. 그들의 삶 속에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멈추지 않고 펄럭이기를 바란다.


그들은 어디로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다. 구속과 억압은 그들 밖이다.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몫이요 자산이다. 그들에게서도 예정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약속'이란 단어가 있고 '내일'이라는 말이 살아 있을까. 그들과 같은 일탈을 우리는 항상 꿈을 꾸지만 그들은 삶으로 직접 만들고 헤치며 이어 나간다.


이 가을 '보헤미안' 한 단어만으로도 체코 보헤미아에 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난다. 그리고 그것은 물결처럼 사방으로 파장을 일으키며 번져나간다. 알록달록 예쁜 지붕이 모여있는 거리를 비라도 맞으며 걸어보고 싶다. 그러면 그곳에서 15세기경 한창 이 지역을 누볐을 보헤미안을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그들의 삶 속에 내 마음이 담길 때 그들이 목숨처럼 지니고 다니는 딱딱한 빵 한 조각을 건네받아 익숙한 듯 한입 베어 물 수 있지 않을까. 오물오물 씹는 빵맛은 시큼할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땀에 배인 그들의 체온이 숨김없이 담겨있을 것이기에.


보헤미아는 체코의 전신이며 오늘날 체코의 서부지역을 일컫는 지역명칭이다. 체코는 보헤미아를 체키라 부른다. 보헤미아와 인접한 동부는 포도와 와인 산지로 유명한 모라비아 지방이다. 모라비아라는 단어만으로도 벌써 서유럽과는 사뭇 다른 어감이 느껴진다. 언덕하나만 넘으면 왠지 드넓은 평원이 바람을 등지고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이미지다. 여유와 낭만이 지평선 끝까지 이를 것만 같다.


오늘 키만큼 자란 모라비아 풀밭 좁은 길을 헤치며 또는 마을 길을 돌아 시내를 건너며 서두르지 않고 멀고도 먼 길을 발길 닿는 대로 조용조용 걸어 나가보고 싶다.


배경음악으로는 슈베르트의 가곡이 좋겠다. 첫 번째로 '나그네'다. 바리톤 음정의 독일어 음미가 제격이겠다. 24개 연가곡이 낮은음으로 이어진다. 음은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로 흩날리며 떠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도 빠질 수 없다. 빠르게 건반을 두드리며 결말을 향해 치닫는 폭풍우 한밤 '마왕'의 목소리조차 두렵지 않겠다.


체코에서 루마니아로 내려오면 줄줄이 '아, 아, 아'로 지명이 끝나는 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 몰다비아를 마주하게 된다. 여전히 역사적인 여러 사실이 이 지역의 모습을 잘 말해주고 있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그것과는 달리 지명에 이끌리는 묘한 정서가 남다르다. 잊힌 이름으로 오래도록 숨었다가 이제야 하나 둘 모습을 갖추며 다가오는 것 같다. 이들 지명에서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삶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낯설지 않고 오히려 다가가게 만든다. 오래된 동유럽 낯선 지명을 통해 그들의 수많은 할 말과 이야깃거리가 저절로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듯하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보게 만든다.


발칸반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트라키아가 또 하나의 영감을 제공한다. 그곳은 불가리아와 그리스 그리고 튀르키예가 서로 나누고 있있다. 트라키아는 어떤 연유로 생겨났을까. 트라키아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고대로마의 속주였다는 역사적 배경은 빼고라도 지명이 내뿜는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지명에 대한 사실보다도(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지명을 통해 독특하게 얻을 수 있는 울림을 나는 좋아한다. 전혀 모르고 있던 지명 그 가운데서도 특히나 동유럽과 연관한 것에 쏠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선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 이국적이고 낯선 지명이 내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리고 나와 동떨어진 시공의 삶조차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나는 그들로 인해 일탈을 꿈꾸며 차가운 비를 피하지 않으며 우울을 사랑한다. 멜랑꼴리와 노스탤지어를 마주할 수 있으며 기꺼이 '쉘부르의 우산' 보기를 택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나의 오늘 하루도 숨을 내쉬며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무서운 날들 중에 살아 있는 오늘 하루는 값진 보석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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