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18

닥쳐보면 하게 되어있다

by 장현수

사과가 햇빛을 받고 곱게 익어가야 할 계절에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비가 조금 잦아든다 싶으면 시커먼 먹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는다. 몇 가닥 숱조차 남아 있지 않은 머릿결 사이로 찹찹함이 하나둘 느껴지는 예감이 좋지않다. 지나간다 싶었던 먹구름이 기어코 뭉터기로 안고 가던 비를 바람결에 슬그머니 쏟아놓기 시작하는 것이다. 날씨가 이토록 심술부리는 이유가 뭘까?


수확할 날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아 잔뜩 조바심을 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썩어 떨어지는 사과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골고루 색깔이 더 잘 나오게 하기 위한 햇빛 반사필름을 깔때도 지금이다. 깔고 나서 그 위에 비를 맞으면 하나마나다. 물기가 반사광도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햇빛이 필수다. 날씨가 흐려도 빛을 비추지 못하니 까나 마나 매한가지다.


뒷밭에 심은 김장용 무가 어느새 많이 자랐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무가 너무 소물게 자랐다며(너무 붙어 심겨 있다며) 지금 솎아내야 더 크게 자란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일에 밀려 그 말을 듣고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겨우 솎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솎다 보니 뽑힌 무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반 팔 길이만큼이나 잘 자랐는데 그 양이 한아름이나 되었다. 이 많은 무를 막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다. 삶아서 손쉬운 나물이라도 해볼까 기도 했다.


그런데 이 많은 양을 나물 하면 한 달 내내 먹어도 다못먹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입맛이 통 없는데 끼니때마다 무잎 나물을 어떻게 먹나. 몇 번 먹지도 않아 금방 질리고 말 것 같다. 더군다나 주먹만 한 무는 어쩌고. 젓갈김치, 총각김치가 좋은데 내가 할 줄을 모르니.


청주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동생이 물김치를 맛있게 잘 담그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서울 우리 집에서 병으로 누워계실 때 여동생이 태안에서 열무 물김치를 매주 갖다 나르다시피 했었다. 엄마께서 입맛 없으실 때 물김치 국물을 자주 찾으셨다.


오늘 그렇다고 여동생을 갑자기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냥 서울에 싸들고 올라가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내나 아들이나 집에서 나 말고 먹을 사람이 없다. 만들면 다시 가지고 내려와 시골에서 먹어도 좋겠지만 오며 가며 번거롭기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가까이서 돈 주고 사 먹는 것이 더 낫겠다. 시골마트에서 열무 한 단 사주면 안 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솎은 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고민을 줄이기 위해 일단 가까운 이웃과 반은 나누었다. 다 드리고 깔끔하게 손을 털고 싶었지만 지난주 서울 코스트코 매장 가서 사 와 먹었던 총각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무우 욕심이 나서다. 무가 얼마나 탐스럽고 예쁜가.


반으로 또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을 해결했다고 고민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이참에 그냥 여동생이 잘하는 물김치를 직접 따라 만들어 볼까. 유튜브 레시피를 찾아보면 어느 정도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동생이 했던 그 맛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도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다. 하다가 망치면 아까운 것을 모두 내버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저녁 내내 방법을 찾다가 문득 해결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한집안으로 이웃동네에 살며 식당을 하는 친척이었다. 거기에 부탁해 보기로 다. 공교롭게도 10여 일 후 서울에서 내려오는 지인들이 있었다. 우리 포함 여섯 부부로 모두 12명이다. 저녁식사 예약을 여기로 해놓을 참이었다.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식사예약과 동시에 열무김치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내일 낮에 열무를 바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로서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고민 끝~ 드디어 짐을 덜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사과밭에 반사필름 깔러 나가봐야 하는데 기껏 솎은 무 걱정이나 하고 있었다니.


이대로 고민 끝인가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자 생각이 또 바뀌었다. 식당일 본업이 바쁜 사람한테 친하다고 사적인 부탁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또 담근 후 찾으러 갔을 때 고맙단 말만 하고 당연한 듯 덜렁 받아 그냥 올 수가 있나. 그러면 염치없단 소리 듣기 십상이다. 수고비라도 얼마 주고 와야 하나. 챙겨준다고 덥석 그냥 받을 사람은 또 어디 있을까. 그리고 수고비라 하더라도 최소 5만 원이나 10만 원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안 하고 말지. 만든 물김치를 먹을 만큼만 조금 가져오고 나머지는 만든다고 수고했으니 두고 드시라고 하면 받아줄까.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하게 꼬리를 물고 일어나니 하는 수 없었다. 결국?


결국 남은 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직접 담그는 것이다. 답답한 심정이었다. 어두운 생각이었다. 어쩌다가 빠져나갈 길이 없는 장기판이 되었을까. 이럴 바엔 내년엔 아예 무를 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답답함이 있었지만 오직 총각무처럼 연하고 아삭아삭한 무를 물김치로 먹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솟았다. 여동생이 보내준 레시피대로 시작했다. 이가 아니면 잇몸으로라도, 손이 아니면 발로라도 일은 치러내야 했다.


일단 솎은 무를 여러 차례 헹궈냈다. 줄기와 뿌리에 붙어있던 흙을 말끔히 씻어냈다. 오래전에 엄마께서 쓰시던 큰 대야와 채반을 다용도실에서 하나둘씩 꺼냈다. 몇 년 만일까. 이들이 다시 이 빛을 보기까지.


채반에 올려놓고 물기를 뺀 후 무와 줄기를 분리한 뒤 무를 세로로 길게 반씩 잘랐다. 그 반을 또 길게 잘랐다. 그리고 엄마께서 보관해 놓으셨던 항아리 속 소금을 한 대접 퍼내왔다. 이 소금조차 햇빛을 다시 보기까지 얼마만인가. 주먹 주먹 소금을 쥐고 무 위로 슬슬 흩뿌렸다. 그리고 뒤적뒤적 섞어 주었다.


이번엔 잎줄기를 3~4센티미터 길이로 쑹덩쑹덩 썰었다. 다선 후 먼저 절여놓은 무대야에 올리고 무와 같이 소금 뿌려 절였다. 1시간쯤 지난 뒤에 크게 한번 뒤집어 주었다.


절여지는 두세 시간 동안 천천히 김치국물을 만들었다. 생수에 밀가루, 다시마, 소금물, 뉴슈가, 생강, 마늘, 사과가 들어갔다. 여동생은 배도 넣었으면 했는데 없어서 넣지 못했다.


시간이 되자 절인 무와 잎줄기를 또다시 맑은 물에 두세 번 헹궈냈다. 채반에 올려 물기를 빼고 만들어놓은 김치국물 대야에 옮겨 부어 담았다. 양념국물이 스며들도록 뒤섞고 여러 번 휘저어 주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하셨던 것처럼 간을 보았다. 무가 약간 짠 듯했다.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 싶다. 이제 와서 어쩔 수가 없다.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대로 두통에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비워놓은 김치냉장고 안에 넣어 보관했다.


이로써 결국 솎은 무 처리에 대한 모든 고민은 끝났다. 여러 해결 방법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고민거리가 사라지니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닥쳐보면 할 수밖에 없구나.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할 수 없는 것이구나. 딱 그 하나 길밖에는 없는 것이었구나


담근 후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계란 프라이도 아니고 라면 끓이는 것도 아니고 평생에 혼자서 김치를 다 담그보다니. 생각해 보면 귀농귀촌 홀로살이를 잘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비록 남자이지만 바깥일과 집안살림살이 둘다 챙겨야하는1인 2역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궁즉통(窮卽通)이라고 여긴다. 닥쳐보면 해야 하고 할 수 있다. 다만 예상치도 못한 일을 하느라 겪게 된 무거운 시간과 수고가 동반될 따름이다.


김치 담그느라 오래 전의 대야, 채반, 항아리 안의 굵은소금을 꺼내면서 엄마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께 이들은 언제나 가까웠고 다정한 친구였을 것이다. 이제 엄마는 천국에 먼저 올라가 계시고 이들은 수년째 영문을 모르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낯선 새 주인을 만난 것이다. 웬일인가 싶었을 것이고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복이 있어 오늘 쓰임을 받을 수 있었다. 예정에 없었던 일에 참여하게 됨으로 밥값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일이 없을 것이라 여기고 내다 버릴 생각까지 했었다. 오늘을 겪으면서 앞으로도 이들을 쓸 일이 많겠구나 여기게 되었다.


엄마의 친구인 이들과 같이 하고 있을 때 엄마께서도 여기 와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 아들 잘하네 우째 이래 잘하노 어데 가서 배았나~'하고 말해주셨다. 어떨결에 엄마하고도 함께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젓갈을 사용하고 고춧가루를 쓰는 김치에도 도전해볼까 생각 해본다. 그러나 언어도단이란 생각이다. 그 넓은 사과밭은 누가 돌보고 장작은 또 누가 패냐고~


(후기)

직접 만든 물김치는 먹을만했다. 맛집에서 만든 물김치는 아니어도 들에 나가 사과 따다 와서 혼자 차려먹는 한 끼 식사로 때우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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