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19

언니가 사라졌다

by 장현수

시골에서 친구는 사람만이 아니다.

새벽일찍 집을 나섰다. 익은 올사과를 서둘러서 따서 곧바로 택배로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올해 첫 사과 수확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2년 실패 후 3년만에 첫 수확을 보는 것이다.


작은 충전식 운반기에 빈 플라스틱 사과상자를 실었다. 잊지않고 닭고기 캔 간식도 챙겼다. 서울에서 나처럼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쿠팡으로 한세트 사 보내준 것이다.


사과밭 언저리에 닿자말자 어미 고양이 구월이가 나와서 맞아준다. 주인 손대표 말마따나 누가 오는지 발자욱 소리만 듣고도 벌써 아는 건가. 안녕~ 하고 인사를 먼저 건넨다. 구월이는 반가운 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몸으로 쓰윽 비비고 스치듯이 지나간다. 그의 인사법이다. 그런데 엄마 구월이를 늘 따라다니는 언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아직 자고 있나.


구월이는 계속 내 주변을 맴돈다. 제겐 아무것도 아닌 운반기기를 살피고 코를 대며 냄새를 맡아 보기도 한다. 내심 간식을 기다리며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조끼 윗춤에서 간식 캔을 꺼낸다. 길가 놓인 돌에다 캔을 탁탁 두드리며 소리를 낸다. 모두 얼른 나오라는 신호다. 그들의 집이자 창고 안에서 새끼 고양이 얼룩이가 먼저 뛰쳐 나온다. 그리고는~~ 더 이상 없다.


캔을 따고 사료 그릇에 탈탈 털어 끝까지 부어준다. 엄마 구월이와 새끼 얼룩 고양이가 맛있게 먹는다. 지켜보면서 등을 쓰담쓰담해도 먹는데 집중하느라 피하지도 않는다. 간식 캔 보내주신 이 권사님께 고맙다고 인사드려라 하고 넌즈시 한마디 던져본다. 대답이 없어도 그들은 다 듣고 있으려나.


언니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뒷다리를 절며 뒤뚱뒤뚱 서둘러 달려오는, 안타깝지만 친숙한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른 고양이 더러 언니 고양이가 어디 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찾아 오라고도 해본다. 이들에게 말은 하면서 눈은 언니 고양이를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지붕위나 길이나 풀이 무성한 사과 밭이나 그리고 창고 문앞이나 모두 살핀다. 어디에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 된다.


사과를 따고있는 동안 엄마 고양이 구월이와 새끼 고양이 얼룩이도 곁에서 놀며 같이 있어 준다. 그들이 베풀어 주는 나를 향한 위문공연인 셈이다. 혼자 일하며 외로운데 이들이 와줌으로 힘이되고 위안이 된다. 고양이라 할지라도 간식주는 고마움을 아는 것같다. 간식캔으로 인해 생겨난 친숙함이다.


사과를 따면서 그들을 차례로 안아 준다. 밭에서 나올 때는 고양이들이 앞서서 걷는다. 나를 따라오세요 하며 마치 길을 안내하듯이. 마치 키우고 있는 집냥이 같다.


그들과 헤어질때까지도 언니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혼자 어디에 있는 걸까.


다음날 새벽에도 사과따러 간다. 어제 한번 따서인지 익은 사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때 밭 한쪽 저켠에서 우리밭 유일한 이웃 손 사장 부부가 큰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며 건너온다. 그리고 종이컵 따뜻한 밀크커피 한잔을 내민다. 그들 부부는 늘 인정스럽다. 좋은 이웃 주심에 감사하고 언제나 그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한다.


밭 한가운데서 이웃과 더불어 커피를 나눈다. 감나무에 홍시가 하나 달려있다. 따서 같이 맛본다. 달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언니 고양이 안부를 묻는다. 그들도 못본지 벌써 여러날 되었다고 다. 아마 남친따라 집 나갔을 것이라고 손 사장이 말해준다. 낳아놓은 새끼가 세마리나 있는데 믿을 수 없다.


그런데 동생 이야기는 다르다.(손사장 부인으로 어릴적부터 같이 자란 동네동생)


"새끼들도 다 없어졌어예"


"응?"


"밤짐승한테 물리간거 같아예"


"그러면 엄마 구월이가 새로 낳은 새끼들은?"


"다 물리간 거 같아예. 이 근처 풀숲에 너구리가 살고 있다 아입니꺼. 한번 마주친적도 있는데 빤히 쳐다보고 눈하나 깜짝 안하더라꼬예. 하루 날잡은 것 같아예 "


"그러면 언니 고양이도 같이 당한 것이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예. 야생은 약육강식의 세계 아입니꺼. 낳는대로 다 키울라면 한도 끝도 없지예. 다 지들 운명이다 이래 생각합니더. 어미 구월이가 낳은 새끼만도 아마 수십마리는 넘을끼라예. 우리가 우째 그걸 다 키우고 있겠습니꺼"


지난주까지도 멀쩡했던 언니 고양이다. 한번 공격을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그렇지만 캔 간식을 먹으며 나에 대한 경계를 어느정도 줄여 나가고 있었다. 다친 동생을 찾아서 데려오기도 하고 엄마가 낳은 새끼들조차 제 새끼마냥 돌보았다. 엄마하고 비슷한 때에 그도 새끼를 낳았다. 그런 언니가 이러한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손 사장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충을 알 수 있었다. 고양이들을 집고양이처럼 키우지 않고 사료를 사다 먹이며 창고를 고양이들의 집으로 내어주고 있지만 그외 모든 것은 야생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야생의 상황이 돌발적으로 벌어질 때마다 그들의 속도 키운 정때문에 아마 검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묵묵히 견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고양이들과 공생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새삼 그들 부부가 대단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속으로 언니 고양이가 반드시 살아 있기를 바랬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외부 공격에 당했던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피할 있지 않았을까. 남친따라 갔어도 좋다. 살아있어 다시 보게 된다면 아끼지 않고 매일매일 캔 간식을 가져다 줄께.


시월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도 먹구름이 몰려다니며 싸락눈처럼 싸락비(?)를 흩뿌리고 있다. 어깃장을 놓든가 무엇인가 떼를 쓰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울하지만 바램은 간절하다. 나에게 친구인 언니 고양이가 사라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