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람들
자주 사용하는 앱의 프사를 바꾸었다. 사과를 재배하는 모습이 담긴 프사다.
어느날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된 한 직원으로부터 문자 연락이 왔다. 그와는 목동에서 같이 근무 했었다. 무려 16년 전의 일이다.
본부에서 내려와 첫 번째 발령받은 사무소가 목동이었다. 사무소가 위치한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시장통이 펼쳐져 있었다. 거래고객은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셨다.
거래하러 오시는 분들 중 한 할아버지는 귀가 무척 어두우셨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꼭 동행을 하셨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역정을 내셨다. 답답한 심정을 본인 스스로에게 토로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두 분 다 젊으셨을 때는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셨을까. 생기 넘치던 푸르름의 계절은 어느덧 지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회색의 그림자가 메꾸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 앉았다. 벤치 위의 가지에서 잎새하나가 톡 하고 떨어졌다. 노랗게 변한 잎이었다. 한줄기 바람이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었다. 한기를 피해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무는 인생의 황혼 녘은 더없이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세월이 처음 뵈었던 그때 이후로도 많이 지났지만 두분께도 그런 삶이 주어졌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떤 할머니는 입술을 유독 빨갛게 바르고 오셨다. 머리는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휘감듯이 둘러쓰셨다. 자그마한 키에 볼이 오목한 할머니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귀여운 인상이셨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이미지가 겹치곤 했다. 진짜 그였다면 한 통의 성냥을 기꺼이 사 주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성냥으로 우리 시골집 방 부석(사투리. 표준어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로 인해, 할머니 덕분에 불 땐 방의 아랫목은 장작 불 열기로 쩔쩔 끓었을 것이다. 불 때는 아궁이 앞 작은 공간에서는 어미 고양이 '모닝'과 새끼 고양이 두 마리 즉, '노랑이'와 '흰둥이'가 서로 몸을 기대고 나란히 앉아 불을 쬘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졸음에 겨워 가물가물 해지는 눈을 깜박깜박 거리다가 어느 새 꿈나라로 향했을 것이다.
또 다른 창구 한편에서는 할머니 한분이 창구 앞에서 선임 여직원과 오래 싱강이를 벌이고 계셨다. 일전에 예금을 해지하고는 돈을 받아가지 않았다는 다소 특이한 논리를 펼치셨다. 직원의 설명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그 금액이 소액이기도 하고 매일 찾아오셔서 같은 말로 떼를 쓰는 것을 견디지 못한 그 직원이 자기 비용을 들여 조용히 무마했다고 들었다. 어르신을 대하기란 힘들기도 하다. 치매이셨을까.
1월부터 2월 사이는 직원 인사철이었다. 외부에서 축하 화분이 이동해 온 직원들에게 보내져 왔다. 한 할머니가 이를 알고는 해마다 찾아오셔서 화분을 요구 하셨다. 정기예금거래가 있는 고객이셨다. 새로 온 화분 중에 골라서 할머니의 시장 손수레에 담아 드리곤 했다.
사은품에 욕심이 계신 할머니가 계셨다. 지점에서는 적은 예산범위 내에서 필요에 따라 사은품을 구비해 놓고 효용성 있게 사용하고 있었다. 직원들조차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은품 장부에 사유를 기록한 후 담당 책임자 허락을 받아야만 불출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오셔서 무조건 사은품을 내놔라며 지점을 온통 헤집어 놓으셨다. 사은품이 떨어졌으니 다음에 드리겠다고 양해를 구해도 듣지 않으셨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먼저 지점장실로 쳐들어 가셨다. 그리고 마음대로 옷장문을 열어 헤치고 뒤지셨다. 은행지점은 동네북?
쓰레기나 고물, 폐지 수거장을 운영하는 사장님 사모님은 아직 젊으셨는데 아파트 살아보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두 개 기업체의 주식가격을 기준으로 주가가 어느 하나라도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6개월 단위로 수익이 확정되고 계좌가 종료되는 이엘에프 투자상품이 있었다. 지점단위 추진 목표치가 있어 이 사모님께도 권유해서 가입시켜 드렸다. 사모님이 수시로 오셔서 수익률에 대해 물어보곤 하셨는데 자칫 원금손실이라도 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사모님이 들를 때마다 주가를 체크하며 내심 조마조마해 했다. 다행히 가입한 상품이 수익을 내고 조기상환 되었다. 막혔던 가슴을 안도의 한숨으로 쓸어내렸다. 수익이 나자 실상 내가 한 것은 없는데 사모님이 무척 고마워하셨다.
지점 정규직 여직원 세 명이 줄줄이 출산휴가를 갔다. 연도 중에 정규직원 인원보충은 불가한 것이었다. 다른 사무소에 잘 근무하고 있는 직원을 함부로 빼내올 수는 없었다.
부득이 업무보조로 있던 비정규직 직원을 창구 직원으로 업무분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창구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금융사고의 개연성은 매우 높았다. 책임자들은 날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이 었다. 외부 추진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결과 그해 지점 사업실적은 전국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이 와중에 남은 비정규직 여직원들조차 한 책임자의 성적언사, 책임전가, 업무불성실을 사유로 두 명씩이나 한꺼번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화해와 소통을 위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직원은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누구도 만나주지 않겠다는 여직원이었다. 그를 만나 면담하기 위하여 집을 찾아가 늦은 시간까지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하기도 했다.
결국 둘 다 사직하고 말았다. 그들이 써놓고 간 경위서의 내용은 가관이었다. 누가 봐도 전혀 설득이나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이었다. 사무실에서 이들을 돌봐주지 못한 모든 부분에 대해 가슴 아프게 여긴다.
그들의 이후 인생은 빛의 길이었기를 바란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따뜻한 밥 한 그릇 사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에게 새겨졌을 멍자국을 조금이나마 지워주고 싶다.
연말이 다 되어서야 정규직 직원 한 명을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언덕배기 오르막길에 위치해 있던 지점하나가 결국 폐점되었기 때문이었다. 애초 누가 거기다가 무리하게 지점을 내도록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지점에는 찾아오는 고객이 거의 없었다. 그곳 지점장은 아무리 해도 고객이 찾아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오죽하면 사람도 아닌 전봇대에까지 고객맞이 인사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을까. 사업실적은 매년 최하위를 도맡아 했다. 그럴 경우 사무소는 결국 소리없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폐점한 지점에서 넘어 온 한 여직원이 또한 가관이었다. 그는 자제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그리고 잘 취했다. 술을 마시는 회식자리에서 이 직원에게 붙잡히면 그 자리를 좀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이야기만 하소연하듯 끝없이 이어갔다. 친언니가 정치권에 몸담고 있다고 했다.
해가 바뀌고 정기인사철이 되자 그는 고향 부산으로 발령을 받아 떠났다. 그 뒤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부디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졌기를 바란다.
한 직원이 있었다. 그는 내 소관 여신담당이었다. 총명했지만 자기 주관이 강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마이너스통장 한도가 얼마나 남아 있냐고 물었다. 하루 전이었던 어제 금요일에 상담이 끝난 고객의 전세자금대출 기표를 깜빡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대출신청인이 오늘 토요일 이사하면서 잔금을 치르려고 하는데 통장에 은행에서 약속한 대출금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난리가 났다. 여신담당자는 그제야 그 전세자금대출 금액만큼 직원들의 여유자금으로 먼저 돌려 막아 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은행일은 그렇게 함부로 자의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금융사고이기 때문이다. 신청인에게 양해를 구해서 월요일에 정확히 기표를 해드리도록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음날은 일요일 즉 주일이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왔는데 그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수없이 와 있었다. 어제 전세자금대출 건이 떠올라 또 무슨 일인가 하고 걱정부터 되었다. 그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연결되자 말자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곤 "아 또 왜? 무슨 일이야?" 하며 짜증을 내었다.
그런데 그가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새벽에 교통사고가 나서 하나 있는 동생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했다. 그는 사실 여신 직속 그리고 총무담당 책임자인 내게 부고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방금 전 그에게 짜증을 낸터라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미안했다. 그리고 그가 당한 비통한 일에 대해 함께 가슴이 쓰리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출납담당 책임자였을 때 금고 시재가 이백만 원 정도 빈 적이 있었다. 가지급처리를 하여 마감하고 그 후 3개월 정리기한이 지나도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아직 어린 출납담장 여직원에게 그 금액을 변상하게 하고 보충하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책임자로서 내가 모두 안고 가기로 했다. 타 지점에 가서 200만 원 현금을 찾아와서 출납직원에게 내밀었다. 그것으로 가지급금 장부정리를 끝냈다.
그런데 얼마 후 담당 출납직원이 금고 안 어딘가에 지폐다발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며 내게 이백만 원 입금을 해주었다. 자세히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분명 그럴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사리판단이 빠르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직원이었다. 스스로의 짐을 내게서 받아 직접 메었을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 다른 지점에서 만난 직원은 달랐다. 그는 본인이 잘못해서 내려진 짐(대출변상금)을 상사에게 대놓고 전가했다. 월급의 반이 날아갔다. 미안해서인지 이후에도 죄송하단 말조차 없었다.
지점내부 리모델링이 연도중 책정 예산항목이어서 추운 12월 겨울이 되어서야 진행되었다. 공사는 야간에도 휴일에도 계속되었다. 직원들이 교대로 나와 공사현장을 지켰다.
보름여의 공사가 끝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지점에는 놀랍고도 특별한 일이 하나 생겼다. 좀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40대 초반 여직원과 20대 후반 남자직원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갑자기 결혼 발표를 한 것이었다. 모두 놀랐다. 그리고 누군가 한마디 했다.
'리모델링 공사감독하랬더니 둘이서 눈맞추고 있었구만'
남녀의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남자직원의 어머니가 못내 우셨다고도 하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모두가 축하해 주었다. 무엇보다 둘이 서로 마냥 행복해 했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한 할머니는 매월 마지막 금요일만 되면 만 원권 깨끗한 지폐 다섯 장을 바꾸러 오셨다. 주일에 성당에 나가 헌금할 돈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인근 가정에서 아이돌보미로 일하고 계셨다. 바람피운 한의사 남편이 미워 서울로 혼자 도망치듯 올라오신 분이셨다. 따님이 삼성전자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이고 주로 해외 파견 업무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사리분별이 명확하셨다. 남편이 예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천만 원 예금자보호한도 금액 이상은 할머니 이름으로도 넣고 있었다. 할머니도 이를 간파하셨다. 할아버지 돈이라 하더라도 할머니 명의로 된 예금은 실명거래법에 의해 할머니의 소유라고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셨다.
다른 지점으로 옮긴 후 안부전화를 드렸었다. 따님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학원을 열었고 할머니도 따님과 같이 살고 계셨다.
할머니의 이름자(字)에는 순(順) 자도 들어 있었다. 유럽에서 흔히 사용하는 이름 캐서린, 케이티, 카트린느, 카타리나가 순수함을 뜻하고 우리로 치면 순심이란 이름과 비슷한 의미라고 한다. 할머니께서도 이름처럼 남은 인생이 굴곡없는 순한 인생이셨으면 좋겠다. 그 따님이 엄마의 깨지고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늘 잘 돌봐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명절이 되었다. 일정거래 이상 고객상대로 A, B, C 그룹으로 나누어 명절 선물을 보냈다. 그중 두 사람이 울그락 푸르락한 얼굴을 하고 보내드렸던 선물을 되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객장바닥에 패대기치고 갔다. 많은 고객들과 직원들은 순식간에 얼음장같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 사람은 인근 학원의 원장이고 또한 사람은 현재 한국최고대학 전직 교수님의 사모님이셨다. 이딴 명절 선물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드릴 말씀이 없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란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교회를 돌며 찬양가수(CCM가수 활동을 하고 있었던 듯)로 활동하고 있던 어떤 아주머니는 지점 청경을 무척 싫어했다. 청경직원이 그 손님이 오실 때 안에서 정중하게 문을 열어 드렸다. 그런데 깡마른 표정의 아주머니가 갑자기 손잡이를 반대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 나만 보면 청경을 빨리 바꾸어 달라고 요구했다.
무엇보다 그는 창구에서 안하무인이었다. 모든 창구는 자기가 항상 최우선이었다. 번호표는 아예 뽑지도 않았다. 먼저 받아주지 않으면 인상을 쓰고 큰소리를 쳤다. 직원에게 반말은 물론이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칭 유명한 기독교 찬양가수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잘 못 꼬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 할머니와는 목동을 떠나서도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는 사무소마다 계속 나 한 사람 고객으로 인연을 이어왔다. 천주교 성당에 다니시는 분이셨다. 늘 나를 좋게 보셨다. 내게 대한 호칭은 처음과 변함없었다. 지점장이 되었어도 그분께는 아직도 여전히 '장 차장'으로 남아 있었다. 뉴스전문 유명 방송사 기자 아드님과 국영방송 아나운서 며느님을 두셨다. 손녀 또한 재외국인대상 영어방송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안타깝게도 귀가 많이 어두워지셨다. 오가는 대화가 쉽지 않았지만 늘 따뜻하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자애로우셨다. 내겐 평생 좋은 고객님으로 남아 계신다. 아마도 구십 년 세가 되셨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주 뵙기를 바란다. 조만간 직접 키운 맛있는 사과를 선물로 보내드려야겠다. 오랜만에 안부인사도 여쭈면서.
내게 문자를 보내주었던 직원이 목동에서 정규직 직원으로 한꺼번에 출산휴가를 들어갔던 여직원 셋 중 바로 그 한 명이다. 문자내용에는 안부인사와 사과주문 내용이 들어 있었다. 계장이었던 그가 이제는 승진해서 부지점장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끊어져 있던 오래 전 직원과 다시금 이어진 소통의 통로는 우리 사과였다.
그리고 이 목동에서의 직원으로 인해 선물처럼 '목동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되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에 이 추억선물을 한보따리 풀어놓고 풍성히 누린다. 감사하다.
오늘 따라 아메리카노는 유난히 고소하고 달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