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23

시골 고양이 1

by 장현수

작은 손수레에 수확한 사과 15kg 4 상자를 싣고 내리막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덜컹하더니 수레 위 상자하나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손쓸 새도 없이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꽃무늬를 이루며 사과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통통 튀며 길바닥을 누비듯이 굴렀다. 일 년 내내 피와 땀으로 키운 사과다. 할 말을 잃었다. 한순간 쓰나미에 넋이 나갔다.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과들을 살폈다. 상처가 심한 곰보사과는 쓸데가 없는 것이다.


깨달음을 하나 얻는다. 내 손 안에 있다고 다 내 것이 될 수 없다. 주신 분이 되가져 가신다.(신학적 해석이 남는다) 남아 있는 것이라도 오직 감사다.

다음날이 되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아직 따지 못한 남은 사과들을 서둘러서 따야 했다. 아침 8시부터 작업을 시작했지만 혼자서 따고 모으고 나르느라 일은 더디기만 했다. 밤10시가 지나도록 오직 이마에 쓴 랜턴에 의지한채 밭과 집을 오가며 씨름을 했다.


늦은 밤 초생달빛아래 사람은 보이지 않고 이마 랜턴 불빛만 환하게 비칠 뿐이었다. 남들은 밤중 과수원에서 뭐하냐고 궁금히들 여기겠지만 나는 계속 홀로 야근 중이었다. 은행 직장 근무할 때도 야근을 많이 했었다. 결산시기에는 아예 퇴근을 하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샐때도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났다.


마무리하면서 주스로 가공할 흠사과를 주워 모았다. 포기한 것이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어제 쏟아져 구른 사과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온통 멍든 자국 투성이었다.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 나오는데 못 보던 구덩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장마철에 흙이 쓸려나가면서 생긴 홀인 것 같았다. 랜턴 불빛에 고양이가 보였다. 누웠는데 움직이지를 않았다.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길 옆인데 왜 아무도 몰랐을까. 그런데 내게는 보였을까. 낮도 아니고 하필 밤중이다.

집에서 신문지를 두툼하게 챙겨 왔다. 고양이를 덮어 바람이라도 막아줄 양이었다. 정성껏 묻어 주었다. 가여운 생명이다. 밤이고 낮이고 온 들판을 헤매고 다녔을 터였다. 이 생명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께서 거두어 주시도록 기도했다. 죽고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영역이다.


시골에 내려와서 벌써 두 번째다. 다 내가 모르는 고양이다.


들고양이들 13마리가 우리 집에 날마다 매끼니 밥을 먹으러 오고 있다. 올해 태어난 아직 새끼인 고양이들도 있다. 폴짝폴짝 뛰어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어찌나 빨리 도망가는지 한번 안고 싶어도 도무지 언감생심이다.


이제 추운 겨울이 왔다. 걱정이 되어 그동안 굳게 닫고 있던 창고를 내주기로 했다. 찬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출입할 수 있는 정도의 틈만 남겨 놓았다. 생후 한두 달 됐을까 말까 한 얼룩 새끼 고양이와 어미가 출입을 시작했다. 창고는 이제 그들의 집이 되었다.

창고에서 내가 바쁘게 일할 땐 그들이 또한 친구가 되어 주겠지.


13 마리 이들을 모두 지켜줄 수 있을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료는 넉넉히 사놓았기는 했지만.


사과나무에 부딪힌 옆구리가 계속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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