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고양이 2
시골집에 자주 오는 고양이들이 13마리 정도 된다. 자주 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얹혀살고 있는 것 같다. 집 언저리 어디엔가 있다가도 나의 기척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모여든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고양이들이 시멘트 바닥에 옹그리고 앉아 있기에 추워 보였다. 마당에 폭신한 바닥 깔판을 깔아 주었다. 사료 그릇도 거기에 올려 두었다. 그들도 그게 좋은지 그 위에 자주 모이고 머물렀다. 또래끼리 또는 엄마와 새끼들이 거기서 앞발을 서로 치고 뒹굴며 잘 놀고 있다.
아침이면 현관문 앞에 고양이들이 모인다. 밖으로 나갈 때는 현관문을 살짝 밀어야 한다. 고양이들이 문에 바짝 다가와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벽두부터 와 있는 이유가 있다. 먼저 마당에 내려가 빈 그릇에 사료를 새로 듬뿍 부어준다. 그들이 현관문 앞에서 내려와 일제히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오후쯤 되면 모두가 한꺼번에 보이지 않는다. 가는 데가 있다. 여기저기 이웃집이나 집 주변 밭에서 보인다. 늦게 일하고 온 날인 그저께 밤 뒷밭에서 해드랜턴 불빛에 반사되는 고양이들의 눈들이 여기저기 드러나 보였었다. 그들은 거기서 야생성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먹이로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잡은 쥐를 현관문 앞에 두고 간 적이 있었다. 아내는 질겁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인사법이라고 했다.
저녁이 되면 다시금 현관문 앞으로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나가보면 사료가 아직 남아 있을 때가 많다. 배가 고파서 모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간식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이 되면 내가 먹다 남은 음식물로 간식을 주기도 했는데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료보다 간식을 더 좋아해서 눈만 마주치기만 해도 후다닥 숨어 버리던 새끼 고양이들도 이때만큼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사료 사다 먹인 지가 일 년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고양이들은 나를 피하거나 숨는다. 그런 중에 가장 오래된 고양이 한 마리가 그나마 다가와서 몸을 비비고 아는 척하기도 한다. 이때도 손이 닿을라치면 후다닥 내뺀다. 야성의 생명은 경계심인 듯. 아쉽기는 하지만 그들이 거리를 두고 있음이 내게도 안심이다. 내가 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다가오면 받아 주고 배를 곯지 않도록 넉넉히 사료를 채워주는 것이다. 주말에 내가 서울 가고 없을 때는 그들이 야생성으로 들판으로 나가 사냥으로 버텨야 한다. 그리고 마음씨 좋은 이웃 아주머니가 챙겨 주기도 하신다. 담 하나 사이 이웃인데 고양이들도 이 집 저 집을 들락날락 하며 얻고 사는 것이다.
고양이들은 우리 수돗물을 마신다. 외곽 수도꼭지를 틀어 고무대야에 물을 항상 받아 놓는다. 야채 헹구느라 고무대야를 쓰고 있으면 목마른 고양이들이 눈치 보며 물 마시러 다가온다. 그럴 땐 일손을 멈추고 일어나서 자리를 피해 준다. 그들이 물을 마시는 동안 멀찍이 떨어져서 기다린다. 그들이 물을 마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의외로 짧지 않고 길다. 기다리는 동안은 신호등 바뀌는 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진다. 사람처럼 금방 꿀꺽꿀꺽 마시지 않기에.
사과상자가 쌓여있는 저온창고 문을 열 때 지켜보고 있던 여러 마리가 우르르 따라 들어온다. 낯설고 신기한 듯 여기저기 흩어져서 둘러보며 다닌다. 내보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나가야 된다고, 나가자고 손짓해도 이리저리 피하기만 할 뿐 아랑곳하지 않는 고양이들이다. 겨우 내보내고 나서 나가면서 한번 더 안을 살핀다. 문을 닫아야 하는데 한 마리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집안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열어 놓을 때 한 마리 두 마리 기웃기웃 얼굴을 내밀고 들어와 본다. 아예 거실로 들어서는 녀석들도 있다. 넘어오지 못하는 곳인 줄 알고 신발장 앞에서 엎드리고 있다가 아예 졸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새 일제히 사라지고 없다. 그들이 가야 할 곳으로 간 것이다. 그들이 오로지 나만 바라고 나만 의지 하지 않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새벽이나 밤이나 고양이들 동정을 살핀다. 주로 문간방에서 고정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본다. 현관문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들이 보인다. 창문을 톡톡 두드린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양이들의 시선이 모인다. 새끼 고양이는 아직 찾지 못하고 어미 품속을 파고든다. 때로는 반대로 고양이가 고정창문 창틀에 올라앉아 집안에 있는 나를 살피기도 한다.
한밤이 되어 다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내다보면 드디어 잠자러 갔는지 모두 보이지 않는다. 환하게 켜놓았던 외곽 등을 하나하나 소등한다. 거실 등마저 끈다. 그리고 장작불을 땐 따뜻한 작은 방 안에서 그제야 내 일을 한다. 일기를 쓰고 컴퓨터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주 보이는 몇몇 고양이들은 이름을 지었다.
우리 집 작은 창고 뒤편 어디엔가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새끼 고양이는 털색깔로 구분했다. 노랑이와 흰둥이다. 어미는 모닝으로 지었다. 굿모닝의 모닝이다.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근처만 가도 피하고 도망을 치니 어떻게 사는지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 사람 손을 타면 다른 데로 옮겨 가버릴까 염려되어 무작정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튼튼한 박스로 집을 세 개나 만들어 여기저기 놓아두었다. 어느 곳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원하는 곳에서 그들이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람이다. 한 곳에는 담요를 깔아 주었다.
그렇게 해주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살던 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담요 있는 집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집을 만들어 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이권사님이 보내온 고양이 캔 간식을 새끼고양이 노랑이와 흰둥이 그리고 어미 모닝을 위해 한편에서 부어주고 있었지만 어느새 다른 고양이들도 알고 와서 합세했다. 그렇게 숨고 피하던 노랑이와 흰둥이가 캔 간식 덕분에 내게로 조금씩 다가올 수 있게 되었다.
제 엄마 모닝은 새끼 둘을 데리고 밤마실을 다녔다. 아마도 생존을 위해서 야생의 공부를 가르치는 듯. 늦은 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헤드라이트 불빛 아래 서 있는 세 가족을 마주치게 될 때 얼마나 반가운지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였다. 무섭도록 어둠이 깊은 밤에 새끼 둘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어미의 모습에서 강한 모성애를 보았다.
다음은 할멈과 초롱이다. 할멈은 우리 집에 오는 고양이들 중 제일 오래되었다. 항상 현관문 앞을 지키고 있다. 내게 와서 얼굴을 비비며 그루밍을 하는 유일한 고양이다. 낳은 지 한두 달 되는 새끼 초롱이를 데리고 최근에 우리 집 창고로 이사를 왔다. 언제 왔는지는 모른다. 우연히 창고 셔트문 아래로 기다시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까만 얼룩무늬 새끼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목격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할멈이 그 어미인 줄 곧 알게 되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창고 문 앞으로 할멈이 다가왔다. 그리고 새끼들한테 어미가 내는 특유의 갸릉갸릉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창고 안 보이지 않던 곳에 숨어있던 얼룩무늬 새끼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장 할멈한테 가서 젖을 물었다.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창고 셔트문을 닫더라도 그들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은 열어두게 되었다. 이제 그들이 창고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사과 선별작업을 위해 창고 셔트문을 열 때마다 주인이 된 어미 고양이 할멈과 새끼 고양이 초롱이가 잘 있나 확인하곤 한다.
초롱이가 창고 안에서 나하고 요 며칠 자주 눈을 마주쳐서인지 덜 피하고 덜 숨는다. 떨어진 곳에서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도 한다. 그래도 내 곁을 지나갈 때는 후다닥 하고 재빨리 지나간다.
어미 할멈과 초롱이가 창고 안에 터를 잡자 다른 언니 오빠 고양이들이 찾아온다. 특히 양쪽 눈이 파란 파랑이다. 파랑이는 다가가면 피하지만 때로는 현관문 앞까지 찾아와 쳐다보며 아웅 아웅 하며 뭘 달라는 소리를 낸다. 같은 배에서 났는지 한쪽눈만 파란 또래 고양이도 있다. 이름은 듀플이라 지었다. 영어 듀플리케이션에 따왔다.
조금 쇠약해 보이지만 아우라가 넘치는 한 고양이는 페르시아로 이름 지었다. 그는 파란 눈에 온몸에 하얀색 갈기털을 지니고 있었다. 고급종 고양이를 누가 키우다가 유기한 것 같았다. 몇 년을 보았고 사료를 먹고 가지만 여전히 경계가 심하다. 두세 달쯤 돼 보이는 새끼가 있다. 엄마 닮지 않고 평범하다. 파란 눈도 아니고 갈기털도 아니다. 특이하게도 털마저 연한 갈색이다. 이름은 가을로 지었다. 가을은 아직 새끼지만 간식줄 때 큰 고양이들 틈새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먹는다. 간식에 가장 적극적인 고양이는 할멈, 노랑이 그리고 흰둥이다. 흰둥이가 입가와 한쪽빰에 그을음 묻히고 간식 먹으러 올 때 귀여웠다. 어디서 어떻게 하다가 묻히게 되었는지.
이외 여러 고양이들은 차츰 이름을 지어나갈 생각이다.
창고에서 사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창고 깊숙이 들어가 있던 새끼 초롱이가 살살 눈치 보며 나왔다. 그리고 나를 슬쩍 보더니 쏜살 같이 마당으로 도망을 쳤다. 폭신한 깔판 위에서 얼마간 사료를 먹고 있더니 곧 언니 고양이들하고 앞발로 장난치며 놀았다.
어미 할멈이 창고 앞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어느새 초롱이가 와서 어미젖을 빨았다. 초롱이가 젖을 다 먹고 나자 미리 가져왔던 황태채를 살며시 내밀었다. 보면서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았다. 앞으로 살짝 던져 주었다. 그것을 초롱이가 물고 씨름할 때 그 어미 할멈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같이 놀아주던 언니 고양이 파랑이도 다가왔지만 뺏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새끼를 돌보는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새끼 코끼리는 이모가 돌본다는 기사가 있었다. 고양이도 새끼는 어른들이 같이 돌보는 것 같았다.
누운 어미 곁에 새끼 초롱이도 엎드렸다. 따뜻한 햇살에 졸린 것 같았다. 갈색 털을 가진 가을이까지 와서 그 곁에 붙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고양이들도 와서 한 몸처럼 서로 기대어 햇살을 즐겼다. 이들은 일하는 내게 위문공연을 펼쳐주고 있었다. 공연료는 공짜. 많이 벌어서 사료하고 간식 사다 줄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무언의 약속을 했다. 함께하는 동안 서로에게 위로와 위안의 복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