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속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들이 고대 로마의 기원이었다. 이 로마인들이 점차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탈리아 반도를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중부 아펜니노 산맥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남아있던 에트루리아인을 최종 복속시켰다.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주인은 로마인이었다. 그들은 왕정시대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까지 물리치는 저력을 보였다. 그리고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완전히 폐허화시켰다.
왕정 이후 공화정 시기에는 카이사르가 지금의 프랑스 땅인 갈리아까지 휩쓸었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는 공화정에서 일인 황제 제정치하로 나아갔다.
로마인들은 북아프리카와 이집트를 포함한 아프리카, 히스파니아(스페인 이베리아반도), 갈리아(프랑스), 브리타니아(영국), 게르만과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등 전 중서부 유럽은 물론 근동지역 시리아 일대 소아시아 방면까지 나아가 정복하고 그들의 속주로 삼았다. 바야흐로 로마는 대제국이 되었다.
그러나 넓은 국경은 갈수록 점점 밀려드는 야만족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폴란드 남부에서 이동을 시작한 동게르만계 반달족에게는 수도 로마가 무방비로 약탈을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스칸디나비아계 게르만 일파 고트족은 아틸라의 훈족에 밀려 서고트와 동고트로 나뉘면서도 세력이 더욱 강해졌다.
서고트는 도시 로마를 함락시켰다. 고트족들은 이탈리아 내에서 서고트 동고트 각각 그들의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서고트는 로마침략으로 세력을 키운 후 이베리아반도에서 왕국을 건설하고 그 땅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또한 북아프리카에서 들어온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에게 땅을 내주고 말았다. 12세기 후반 이슬람으로부터 잃어버린 땅을 수복하기 위한 레공키스타가 시작되었다. 란다 하울라츠는 서고트 왕국이라는 말인데 안달루시아다.) 그리고 오늘날의 건축양식 고딕은 이들 고트족(서고트)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서로마 제국은 야만족들로부터의 침략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게르만의 용병 오도아케르를 위시한 여러 족속들에 의해 476년에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비잔티움 즉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아 로마제국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동로마의 주인은 이미 이탈리아 밖이었다. 그 땅의 주인은 로마인은 아니었다. 그리스계와 로마계로 불렸을 뿐이다.
오늘날 역사적인 사실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대의 로마인 직계인가 하는 것이다. 단연코 아니다. 로마인은 밀려든 게르만과 헝가리 훈족, 다뉴브 고트족 등 여러 족속들에 의해 복속당하여 정체성을 잃고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더 이상 로마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찬란한 제국의 시민이었던 로마인은 사라지고 도시 로마만 그들의 흔적위에 남았다.
유럽 다른 여러 나라의 상황도 이에 못지않다.
영국의 땅은 독일북부 해안지대 출신 게르만 앵글로색슨족이 기존에 살고 있던 켈트족을 밀어내고 그곳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다시 덴마크에서 바다 건너온 바이킹 노르만 족속에게 패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한꺼번에 대규모로 이동을 시작한 노르만족은 프랑스 북부 해안가를 포함한 내륙 지역(노르만 족속의 땅이라는 노르망디)을 프랑스 왕으로부터 할양받고 이동을 멈추었다. 프랑스왕이 그들의 위세에 눌려 그 땅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영국해협을 건넜다. 잉글랜드로 쳐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노르만 출신 정복왕 윌리엄 1세의 등장이었다. 이로 인해 노르만 왕가가 세워지며 영어를 쓰는 백성들 위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왕과 귀족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영국의 지배계층은 노르만족이었고 피지배계층은 앵글로색슨인이 주를 이루었다.
플랜태저넷 왕가가 노르만 왕가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노르만계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플랜태저넷 왕가의 사자왕 혹은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영국에서 태어나 3차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 회복을 위해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겨루기도 했다.
리처드 1세는 잉글랜드의 왕으로서 10여 년 재위기간 중 영국에서 거주한 기간은 겨우 6개월여 정도로 매우 짧았다. 그는 노르만 출신이면서 뼛속까지 프랑스 인으로 살았다. 그는 프랑스에서 영지수호를 위한 전투 중 프랑스 소년병이 쏜 석궁에 어깨를 맞아 42세로 숨을 거두었다.
플랜태저넷 왕가 이후 랭커스터가, 요크셔가, 튜더가, 스튜어트가 등 여러 왕가가 뒤를 이었는데 뿌리는 모두 노르만 왕가 혹은 노르만 계열이다.
스튜어트 왕가는 스코틀랜드에서 먼저 왕조를 세웠다. 스튜어트 가가 스코틀랜드에서 왕가를 이어간 기간은 잉글랜드에서는 랭커스터 왕가, 요크 왕가, 튜더 왕가가 걸쳐져 있던 시기였다. 스튜어트 왕가 또한 영국 북부해안으로 상륙한 노르만 계열인데 조상들은 프랑스의 노르만 족속의 땅 노르망디에서 대법관 등을 역임했다.
튜더 왕가에서는 헨리 8세,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15세기 영국을 이끌었다.
튜더 왕가 이후 이어진 왕가는 하노버 왕가인데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지 1세부터 시작되었다. 하노버 왕조는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하노버 왕가는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독일에 적대적이었던 영국 내 정서를 감안하여 독일을 지우고 윈저 왕가로 개칭한 후 현재의 영국왕실에 이르렀다.(엘리자베스 2세 사후 그의 아들 찰스 3세가 왕위계승)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땅이나 포르투갈 땅도 영국의 형편과 다름 아니다. 서고트족 등이 동쪽에서 밀고 들어와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인종구성을 이루고 있다. 한 민족이 자기의 땅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간직하며 살아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땅 또한 예전의 주인이 그대로 인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과 중동 이슬람 등 다양한 인종들이 밀고 들어와 그 땅을 차지했다. 그 땅이 비록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그 땅의 사람들을 흑인이 주류인 아프리카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무리가 있는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이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땅이다. 근동의 시작점이고 흔히 소이시아로 불리는 곳이다. 그 땅은 한때 히타이트와 아르메니아 민족들의 거주지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세워졌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 땅은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에서 대서사시로 펼쳐졌던 땅이다. 바로 트로이 전쟁 이야기다.
작은 도시국가 트로이가 그 땅 북서부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다. 기원전 1200년경 청동기시대였다. 서쪽으로는 에게해가 멀지 않았다. 남으로는 지중해가 연해 있었다.
트로이 전쟁의 빌미는 트로이의 둘째왕자 파리스에 의해서였다. 그는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로 납치해왔다. 그녀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였다. 여러 차례 그녀를 되돌려 보내라는 스파르타의 요청을 파리스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스파르타는 그리스 연합군을 구성하고 미케네의 왕이자 메넬라오스의 형인 아가멤논이 그들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리스 연합군을 상대로 한 전쟁이 시작되자 트로이는 첫째 왕자 헥토르가 나와 맞섰다. 그는 용감했지만 그러나 신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를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말이 끄는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조롱했다.
이를 보며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한밤중에 변장하고 아무도 모르게 아킬레우스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의 몸값으로 가져온 선물을 보이며 아들의 시체를 돌려주기를 무거운 심정으로 간청했다.
천막 막사 안에서는 거의 꺼져가다시피 하는 모닥불이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탁탁 소리를 내며 작은 불꽃이 튀어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모닥불은 이 땅의 늙고 지친 아버지 프리아모스와 혈기 왕성한 적군의 장수 아킬레우스가 마주하여 조용조용 주고받는 그 말소리를 모두 엿들었다. 터질듯한 긴장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음날 프리아모스는 자랑스럽고 용감했던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다시 품 안으로 안을 수 있었다.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유린했던 그리스 연합군의 용맹한 장수 아킬레우스도 헥토르의 아우 파리스의 화살에 발 뒤꿈치를 맞아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
10년 간이나 이어진 전쟁의 승부는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고안하여 만든 트로이 목마에 속아 트로이는 결국 그들의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건장한 키에 잘 생긴 왕자 헥토르가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호령하던 목소리와 늦은 밤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이제 그만 놓아 달라고 애끓는 심정으로 간청하던 늙은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의 굵고도 떨리던 목소리는 그 곳 그 땅에서 못내 초연한 바람에 실려 사라져 갔다. 그리고 트로이는 끝내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의 땅이 훗날 동로마 제국의 땅이 되었다가 이제는 동쪽 수만리 떨어진 몽골초원에서 수세기를 걸쳐 이동해 온 돌궐 튀르키예의 땅이 되었다. 트로이 전설에 튀르키예의 겉옷이 입혀졌다. 낯설기 이를데 없다.
땅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누군가가 그 땅을 차지하고 있다가도 어느새 또 누군가에 의해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 머무름 또한 길지않다.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땅과 그 땅에서 머물다 간 군상들이 한때 어우러지면 신화가 되고 위대한 시인이 있어 노래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역사가 된다.
그래서 묻는다.
땅이 주인인가? 차지한 사람이 주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