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25

고양이들의 위문공연

by 장현수

우리집 창고에는 고양이 모녀가 산다. 어미 고양이 할멈과 아직 젖먹이 아기 고양이 초롱이다. 초롱이는 처음에는 나를 보자마자 숨기에 바빴는데 요며칠 창고에서 일하는 동안 자주 마주쳐서인지 어미 곁에 붙어있을 때는 가만히 있기도 하다.

어미 할멈(우리집에 머무는 고양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보기에도 할머니 같아서 지은 이름)은 우리집 터줏대감으로 나를 피하지 않는 유일한 고양이다. 엎드려 있는 동안 코 앞으로나 꼬리 곁을 지나가도 무반응이다. 가던지 오던지 내몰라라 느긋하다. 오히려 어떤때는 다가와서 야옹 소리를 내며 무엇을 요구하기도 한다. 맛있는 거 내 놓으라는 것이다. 다가와서 이마로 있는 내 다리를 비벼대기도 한다.


사과 택배보내느라 연일 바쁘게 창고에서 박스를 꾸미고 사과를 골라 담는 일을 하고 있다. 집안에서 나오면 출근인데 일하는 곳, 사무소가 바로 창고인 것이다.


아침에 나와 창고 셔트문을 열면 어미 고양이가 빈 박스 위에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이 먼저 보인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모녀가 밤새 잘 지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선다.


아침에 햇빛이 창고 문 언저리까지 다가오면 그때 어미 고양이 할멈이 슬슬 다가와 창고 앞에 자리를 잡고 엎드린다. 그리고 어느새 꾸벅구벅 졸고 있다. 창고 구석에서 아기 고양이 초롱이도 쪼르르 달려나와 엄마 곁에 같이 엎드린다. 배가 고픈지 엄마 배를 헤집는다. 그리고 젖을 문다. 여유롭고 포근하다.

어미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선다. 허리를 길게 펴고 기지개를 켠다. 엄마가 일어나니 곁에있던 초롱이가 신난다. 어미 고양이한테 장난을 건다. 모녀는 서로 딩굴며 씨름하듯이 장난을 친다. 저러다가 날까로운 발톱으로 서로 얼굴을 상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러다가 어느새 서로 포개고 또다시 잠에 든다. 햇살이 점점 더 따뜻해진다. 오히려 더워질 지경이다. 그러나 해가지면 설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갑자기 시리도록 쌀쌀해지고 기온은 급강하다.


한낮의 따뜻한 햇살을 쬐며 나만 방해하지 않으면 모녀가 제법 오래 잠을 잘 듯도 싶다. 그러나 나는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다. 사과를 골라서 담아 박스가 차면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왔다갔다 박스에 테이핑 업도 해야하고 새로운 박스를 꾸며야 한다. 이러한 부산한 움직임에 아기 고양이가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급히 피할 곳을 찾는다. 그냥 그대로 있어도 좋으련만


아기 고양이 초롱이가 여기저기 놓여져 있는 박스와 박스 사이를 지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조그만 얼굴이다. 지나가도 안전한지 살피는 것같아 귀엽다. 귀엽다고 사진 찍겠다고 핸드폰을 드는 순간 쪼르르 바로 도망쳐버린다. 아쉽다. 그래서 핸드폰 대신 미러리스에 멀리서도 찍을 수 있는 400미리 줌렌즈를 장착한다.


어미 고양이가 이렇게 하루종일 떠나지 않고 창고 앞에 머무를 때 아기 고양이의 재롱을 R석 눈앞에서 직관하는 횡재를 얻는다.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 하는 여행 광고 문구처럼 열심히 자리를 지키며 일하다보니 고양이 모녀와 누리는 즐거움이 크다.


이들 모녀 고양이들 곁에 다른 고양이들도 줄줄이 들른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와 같이 놀아주고 간다. 특히 노랑이와 파랑이다. 그들끼리 서로 누르고 냥펀치 날리다가 숨바꼭질도 한다. 차곡차곡 높이 쌓아놓은 맨 박스 더미가 그들이 도망가고 숨을 좋은 장소가 된다. 이 곁에서 놀아주는 것이 내게 즐거움이다. 그들은 모두 내게 위문공연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밥값을 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어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간식을 더 챙겨 주기도 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나는 이들이 있어서 좋다. 이 집에서 혼자 있지만 찾아오는 이들 덕분에 결코 혼자가 아니다. 이들은 내게 이웃이자 친구들이다. 이들을 위해서 가끔씩 기도를 한다. 이들 고양이들이 나하고 만나 지내는 동안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으신 분이 끝까지 함께 돌보시도록.


퇴근해야 할 시간이 왔다. 사무실인 창고에서 집안으로. 모녀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바라기로는 다른 고양이들도 우리 창고로 들어와 밤새 찬공기를 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창고의 창문들도 모두 닫았다. 바람이 없으니 창고안이 의외로 춥지 않다. 모녀 고양이들도 창고 밖에서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더니 셔트문을 내리자 말자 저들의 세상이 되었다. 야행성이라 더욱 그런 듯. 어두운 가운데서도 살판 났다. 분주히 서로 쫒고 달렸다. 셔트문을 내리고 나오면서 어미와 아기 고양이가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남겨 놓았다.


어미 고양이 할멈이 내려진 셔트문아래 경계선까지 어느새 나와서 앉아있다. 흔들며 퇴근 인사를 한다. 안녕~ 잘자~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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