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서정
매우 추운 날씨였다. 방안까지 한기가 스며들어 왔다. 우풍있어 문 연 방안과 거실과의 격심한 온도 차이는 비염있는 내게 몇번이고 연이은 재채기로 몰아부쳤다.
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의 성경말씀 한줄을 읽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창12:3)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노랑이가 걱정되었다. 간밤 엄동설한에 잘 지냈는지. 불때는 아궁이가 있는 부석으로 나갔다. 혹시나 노랑이가 놀랠까 조심조심 걸었다. 노랑이 살피느라 매일 밤 켜놓는 전등불빛 아래로 노랑이의 집이 보였다. 그러나 노랑이는 보이지 않았다. 창고안 집에 들어가 있나 보았다. 아무튼.
노랑이가 언제든지 와서 불을 쬘 수 있도록 활활 불을 피웠다. 오래 탈만한 한아름 굵은 사과나무 장작을 아궁이에 밀어 넣었다. 오전 내내 열기를 뿜으며 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농협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가서 사과택배보낼 때 사용하는 자재를 여러가지 구입해왔다. 한 3년 얼굴 익힌 덕에 이것저것 물어도 농협직원들이 대답을 잘 해주었다. 과수재배에 필요한 농자재 외상구매약정을 하지 않고 그동안 체크카드로만 결제해왔다. 그런데 직원이 다른 방법을 알려 주었다. 1년 무이자 외상구매후 한꺼번에 결제하는 방법이었다. 연간 이용대상 자재 금액만큼 1년 약정 적금에 가입하거나 정기예금에 가입해 놓는 것이었다. 적어도 예적금 이자만큼 이득이었다. 조합원으로서 조합 전이용 실적도 쌓아 배당금도 높일 수 있는 것이었다. 서류를 갖춰 올해는 외상구매 약정부터 해야겠다.
농협에서 돌아 왔을때 노랑이가 아래로 조금 열어놓은 창고 셔트문을 통해 고개를 내밀고 밖으로 살짝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노랑이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고양이가 하는 감기 재채기 소리 "욱~욱~"하는 소리를 더이상 내지 않는 것이었다. 참치캔 간식을 꺼냈다. 그런데 손이 시릴 정도로 너무 차가웠다. 집안으로 들어가 캔을 따뜻하게 데워서 나왔다. 캔 간식을 주겠다는 신호로 캔을 들고 바닥을 탁탁 두세번 두드리니 노랑이가 다가왔다. 내 눈을 빤히 쳐다 보았다. 사료 그릇에 듬뿍 부어주었다. 노랑이가 먹기 시작했다. 노랑이가 잘 먹을때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이집에 고양이는 이제 노랑이 혼자가 되었다. 노랑이는 무리 고양이들보다 나와 마주치는 적이 훨씬 많아졌다. 나와 고양이가 서로 마주치면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나를 피해 오던 길을 되돌아 달아났다. 그러나 노랑이와 나는 서로 가던 길을 비껴가는 정도가 되었다.
추운 날씨 움츠리고 있으니 따뜻한 목욕탕이 생각났다. 집에서 가까운 언양 가지산 온천 쪽으로 알아보고 갔는데 갔던 두군데 온천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심지어 철거중인 곳도 있었다. 웅장한 건물규모로 보아 한때 잘 나갔던 목욕탕인 듯 했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서 였을 것이었다. 왜 이용객이 그렇게 갑자기 많이 줄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밀양시내 '해미안 사우나'로 차를 돌렸다. 가는 길에 면소재지 송백 농기계 수리 센터에 들러 아는 안면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전기톱 고장수리를 맡겼다.
넓은 목욕탕에서 마음껏 따뜻한 물을 누렸다. 얼었던 몸이 녹았고 구겨진 주름살이 활짝 펴졌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7~8명이 한쪽 탕안에 모여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나올 때 안타까운 할아버지의 모습이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다. 추운 겨울 위 아래로 너댓겹씩 꺼내입고 목욕 오셨다가 다하고 나서 불편한 몸으로 오랜시간 내내 옷들과 씨름하며 겨우겨우 다 입었노라 이제 일어 설려는 순간 눈 앞에 보이는 빤쓰 한장~ 왜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한탄하며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계셨던 할아버지... 내가 대신 입어줄 수도 없었던...
아내가 좋아하는 버거킹에 들렀다. 아내는 밀양 올 때마다 버거킹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덕분에 따라 간 내게도 한 세트 푸짐하게 펼쳐졌다. 나는 치즈버거를 좋아한다. 91년도 총각때 연신내에서 500원하던 '조 아저씨' 치즈버거를 자주 이용하곤 했다. 치즈맛을 통해 서양의 이국적 풍미를 느꼈다. 그리고 가보고 싶은 나라들을 하나 둘 상상하곤 했다.
자리를 옮겨 스벅에 왔다. 아메리 한잔 그란데로 시켜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웃집 제00 아저씨 전화가 왔다. 지난 주 만났을 때 한 부탁이었는데 벌써 운반기기 한가득 베어놓은 사과 나무를 싣고왔다고 했다. 어디에 내려 놓을까 묻길래 우리 넓은 마당에 아무렇게라도 부려놓기만 해도 좋다고 했다.
어제 우리 과수원 한 곳에서 작년에 전지작업한 사과나무와 가지들을 주워모아 싣고 나왔다. 마침 동네동생 손00과 최00동생을 오랫만에 만났다. 그런데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운반기기 타이어가 바람이 빠졌다는 것을 그들이 먼저 보고 창고에 있던 에어 꼼프레샤를 기어코 끌고나와 바람빠진 양쪽 타이어마다 빵빵하게 공기를 주입해 주었다. 차가운 날씨였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제와 오늘 고향 시골마을에서 좋은 이웃이 있어 도와주는 것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깨닫는다. 나같은 것이 무엇이라고 놓지않으시고 묵묵하게 살아가는 내게 그들로하여 사랑이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도록 인도 해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