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삶의 무게
3개월여 짧은 생을 마감하고 새끼 고양이 초롱이가 오늘 우리별을 영영 떠났다. 초롱이는 비로소 밤하늘을 비추는 영롱한 또하나의 꽃별이 되었다. 살았던 짧은 생에 대한 애닯음은 오로지 지켜본 자 나의 몫이다.
그동안 창고문을 열어놓고 다닌 적이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때는 더욱 그랬고 나조차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니 닫힌 생각이 열린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닫혀진 창고문 빈틈을 통해 등을 낮추고 기다시피 들어가고 있는 새끼 고양이 뒷모습을 어느 날 우연히 목격했다. 우리집을 드나드는 고양이들이 여러마리 있었지만 창고안으로 들어가는 새끼 고양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뒤따라 들어 갔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쌓아놓은 수백장 두꺼운 종이박스 뒤쪽 어디쯤인 것 같긴한데.
그 뒤로도 새끼 고양이가 터를 거기로 잡았는지 들락날락 하는 통에 아예 창고를 고양이들한테 개방하기로 했다. 새끼 고양이를 따라 들어오는 고양이들도 여럿 생겼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대소변 청소 등 뒤치닥 할 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 들이기로 했다. 원래 창고 문을 닫아 놓았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불편 때문이기는 했다.
창고에 터를 잡은 새끼 고양이 이름을 초롱이라고 지어 주었다. 아직 젖먹이였다. 어미가 어떻게 무슨 이유에서 데려온 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택배작업 할때면 보이는 저만치서 초롱이가 어미 곁에서 재롱부리며 놀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미 젖을 빨기도 했다. 때로는 따뜻한 햇살아래 어미 곁에 붙어 졸음에 겨워했다.
창고안으로 들어와 거처하는 곳으로 지나 가거나 나올 때 처음에는 내 눈치를 살피고 나를 저만큼 우회하며 후다닥 달아나듯 했다. 그러나 점차 내 모습이 눈에 익었는지 처음만큼은 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리들 속에 끼어 사료통에 같이 입을 대고 사료를 먹기도 했다.
초롱이는 몇개월 빠른 노랑이가 같이 잘 놀아 주었다. 초롱이가 노랑이든 제 어미든 제일 작은 몸으로 같이 딩굴고 냥펀치 할 때 일하면서 지켜보는 내게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새끼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을 시골이 주는 하늘의 복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종종 사람들에게 고양이들과 친구되어 더불어 사는 것이 시골사는 또하나의 이유라고 늘어 놓았다. 누가 순진한가. 보이는 것이 모두 다가 아님을 벌써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댓가를 치러야 함을 왜 몰랐던가. 댓가를 치를텐가 하고 미리 누가 물어 주었더라면. 키우던 소나 닭, 염소 이외에 다른 동물들에게는 정을 두지 않으셨던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현명하셨는지 이제서야 알 것같다.
처음부터 그들과 거리를 두고 모른척 했어야 했다. 내 마음이 그들에게 가도록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그들에게 왜 밥을 사주고 간식을 사주고 집을 사거나 지어주고 왜 그들은 바라지도 않은 관심을 그들에게 막무가내로 보여주었는가. 그들이 원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들의 삶에 내가 왜 기꺼이 개입하기를 원했는가. 그것이 그들에 대한 사랑인가. 사랑이라면 철저한 짝사랑이었음을 알아야 했다. 오직 나만의 짝사랑. 살아 오면서 여태 그렇게 많고 큰 일들을 겪었고 수많은 눈물을 쏟아냈음에도 아직 깨닫지 못했는가... 나혼자서 책임지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미리 깨달았어야 했다.
나는 오늘 그러한 고통의 댓가를 원치 않았음에도 또하나 짊어졌다. 오늘 아침 햇살 아래 초롱이가 초췌한 모습으로 어디선가로부터 나왔다. 창고 안에서가 아니었다. 일전에 서울에서 내려오지 못한 10여일 이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양이들의 위치가 모두 파괴되어 있었다. 상처를 심하게 입었거나 다른데로 떠났거나 죽기도 하고... 초롱이의 창고안 거주지도 된통 털렸는 듯 초롱이네 식구들도 떠나고 없었다. 누가 그들을 상하게 하고 자리에서 몰아 내었는가.
나오긴 나왔지만 초롱이는 오늘따라 생기가 거의 없었다. 며칠사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주에는 괜찮았었다. 갑자기 왜 이지경이 됐을까. 사료도 참치 캔 간식을 뜯어 내밀어 보았지만 입을 대지 않았다. 햇살이 있어도 바람이 찼다. 안고 새로 사온 바닥이 폭신한 집으로 옮겨 주었다. 그러나 곧바로 빠져 나왔다. 내가 다시 밀어 넣었지만 내 손을 물고 할퀴기만 할뿐 듣지 않았다.
눈에 촛점이 흐려지고 점점 고개를 바닥에 댈 무렵이 되자 내가 결단을 했다. 시내 병원을 바로 조회하고 그중 한 곳을 향해 달렸다. 노랑 사과상자안에 패드를 깔고 그위에 초롱이를 올렸다. 머리를 들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기만 했다.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와 주사 등 처방을 받았다. 젖먹이용 동물 분유도 따로 구입했다.
집에 와서는 바로 방으로 안고 왔다. 노랑상자에 든채로. 분유를 타서 먹여 보았지만 전혀 빨지를 않았다. 사투를 벌였다. 초롱이도 나도. 머리를 들어주고 짜서 먹였다. 그러나 삼키지 못했다.
이내 초롱이는 숨을 거두었다. 그 순간 내 가슴 깊은 곳에서 한줄기 찬 바람이 새어 나왔다. 초롱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초롱이의 눈빛을 이제다시 어디에서 볼 수 있단 말인가. 너무 싫다. 이런 감정.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이런 마음의 아픔까지 겪어야 하나. 시골에 살지 않고 서울에서 온전히 살았더라면 없었을지도 모를 상처를 나는 기어이 입고 있다. 누구한테 이 일을 하소연할까. 초롱이를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은 너무 짧았다. '어느정도 예상'은 몇년 후에나 가능했어야 했다. 예상치 못하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이 상황을 나더러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인가. 누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걸까. 못내 원망스럽다.
초롱이를 마음으로 묻어 주었다. 병원에서 받아 온 분유 가루도 남김없이 모두 다 부어 주었다. 하루종일 먹지도 못하고 보내게 된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보내신 분이 기쁘게 다시 받아 주시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했다. 나를 위로 할 자 누군가. 오직 소망인생을 주신 분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