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기쁨

우리 해피

by 장현수

우리 해피가 나를 빤히 쳐다 보고 서 있다.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가와 바짓 가랑이를 앞발로 싹싹 긁어댄다. 말 안해도 다 안다. 지금 먹고 있는 것 빨리 내놓아라는 것이다. 한켠에 사료가 가득 담겨 있어도 아랑곳 없다. 재촉하느라 킁킁 콧방귀 소리를 내기도 한다. 기어코 하나를 집어 내민다. 해피가 손가락을 깨물듯이 먹이를 잽싸게 나꿔챈다. 이 동작은 내가 먹기를 그칠 때까지 반복이다. 몰래 먹고 있을 수도 없다.


제 집에서 자고 있다고 안심할 수 없다. 어느 샌가 눈치채고 나온다. 마치 몰랐다는 듯이 앞발을 앞으로 쭈욱 내밀고 뒷발을 하나씩 길게 뒤로 빼가며 기지개를 펴고 밖으로 천천히 나오신다(?). 아 이런 들켰구나 싶다. '싶다'가 아니라 이미 '들킨 것'으로 봐야 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하는 해피 속마음이 훤히 보인다.


우리 해피가 좋아하는 것은 사료가 아니다. 개껌이나 살코기 캔 같은 간식도 아니다. 아빠가 먹고 있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다이다. 찐 고구마도 삶은 밤조차도. 심지어 익힌 계란까지도. 사과먹는 강아지는 해피말고 또 어디 있을까. 아빠는 해피가 바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리에 앉았다가도 함부로 일어서지 못한다. 소심하게 또는 조신하게 일어서야 할 때가 많다. 조금이라도 동작이 커지면 감당이 불감당 오해를 불러 올 가능성이 크다.


잠바를 걸치거나 하는 옷차림도 신경을 써야 한다. 쉽게 그래서는 안된다. 집에서는 추워도 좀 떨든지...


우리 해피 눈치가 100단이다. 동작을 사뭇 다르게 이해한 해피가 어디선가 후다닥 달려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나갈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데 말이지. 달려나오게 만들었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꼼짝없이 산책길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밤이든 낮이든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아랑곳 없다. "내일 가면 안될까 우리 해피~ 아까 한번 갔다 왔잖아" 하고 호소력 있게 눈맞추며 혹시나 하고 해보는 애원조 부탁은 타오르는 불길속에 기름만 더 붓는 격이다. 눈치없이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면 할 수없이 책임을 지기로 한다. 어쨌거나. 비가 내리고 있는 밤 10시 지난 시각임에도.


아들에게도 딸한테도 아내에게마저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전화통화 중에도 우리 해피를 곁눈으로라도 살피며 항상 주의해야 한다. 말조심이다. 부지불식간에 '밖에', '산책' 이란 말이 무심코 튀어 나와서는 안된다. 이러한 단어가 입밖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 우리 해피는 벌써 현관문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아차차 해 본들 이미 후회는 늦다. 나온 말을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다. 뱉은 말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아빠가. 아빠가 불쌍하다. 안그러니? 우리 해피야~


이에 대해 한결같이 일관성을 견지하고 있는 우리 해피의 태도는~

"나는 모름. 내 알 바 아님"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 문을 나서 발이 닳도록 익숙한 밤길을 언제나처럼 (신월동 밤 어느 골목 풍경)우리 해피가 앞서고 아빠가 하염없이 사랑스런 눈으로 구부정 뒤따르고 있다.

우리 해피~ 엄마 아빠 침대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