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바라보는 나의 시골
시골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마음이 벌써 쿵덕쿵덕 들떠있다. 어서 내려가고 싶다. 가서 해야 할 일들이 한장의 종이위에 가득 그려져 있다.
시골을 떠나 매주 서울에 머무는 3일 동안은 시골생활 모든 것이 스톱이다. 연락조차 먹통이고 깜깜이다. 비워 둔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매순간 궁금함이 그지없다. 걱정과 궁금함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가장으로 가족을 살펴야 하고 예약해 둔 병원도 가야한다. 하나님의 충성된 자녀로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맡은 사역을 감당한다.
시골과 서울 1인 2역의 삶이다.
월요일 아침에 서둘러 다시 시골로 내려간다. KTX를 타고 두 시간 반을 간다. 첫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노랑이 안부다. 태어나서 첫겨울을 당한(?) 노랑이가 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괜찮은지 마음이 조마 조마하다. 몇 달 먼저 난 얼룩이 형이 옆에서 잘 돌봐주고 있을까. 잠잘 때 서로 체온을 나누며 잘 버티고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창밖으로 황량한 겨울 산과 나목이 보인다. 겨울은 약한 자들에게 치명적이다. 여름은 그늘로 피하거나 물로라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울은 끝까지 피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 돌보아야 할 약한 자 가난한 자는 추우면 추운데로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웅크리고 앉아 털이 곤두서 있는 고양이들 특히 노랑이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을 집안으로 데려올 수조차 없다. 몇번 시도해 보았지만 그들이 불안해하며 날뛰는 통에 현관문을 다시 열 수밖에 없었다. 이 자연의 이치를 나는 이제 받아들일려고 한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염려하는 것이 그들을 결코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들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받아주면 좋겠다.
시골가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잠잘 방 아궁이에 장작 불을 넣는 것이다. 낮에 미리 불을 지펴놔야 밤될 무렵 구들목에 열기가 오른다. 그리고 노랑이가 혹시나 와서 불을 쬐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창고안 새집으로 옮겨 간 이후로 좀처럼 아궁이 있는 집으로 와서 머무는 적이 없다. 왜일까 싶다. 여기에서 환란을 겪었던 것일까. 그래서 이 집에서 쫓겨났다고 여기고 있는 걸까. 그래도 노랑이를 위해 장작을 아궁이 깊숙히 밀어 넣지 않는다. 열기가 아궁이 근처에 좀더 넓게 퍼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밤새 불타도록 엄청나게 굵은 화목을 등걸 위에 올려 놓는다.
불을 지펴놓고 나면 주문받고 온 사과택배 준비를 한다. 사과를 하나하나 골라 박스에 담을 때마다 기도를 한다. 우리 사과를 받은 분들이 맛있게 드시기를 그리고 맛있다고 칭찬받는 사과가 되기를. 사과를 통해 모든 분들의 건강과 가정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기를. 그래서...
우리사과 얼음골해피사과연구소에서 생산한 사과를 드시는 분들은 사과를 드시면서 축복의 기도를 함께 받게 되는 귀한 분들인 것이다.
택배작업이 끝나면 주스공장 보낼 사과를 손질한다. 병반 부위를 깨끗하게 도려낸다. 이 주스는 100%로 사과로만 만든다. 달고 맛있는 사과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스는 만들자 마자 바로 소비가 된다. 벌써 수십 박스가 나갔다. 이마저 축복의 기도가 더해져서.
사과손질은 의외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노랑상자 하나에 한시간 정도다. 15상자가 있는데 이번주 다시 서울 올라가기 전에 손질을 마치고 주스공장으로 보낼 수 있을까. 벌써 햇살이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주스사과 손질을 내일로 미루고 스산한 저녁이 되면 마당에 쌓여진 화목 나무들을 정리하고 옮겨야 한다. 좋은 이웃인 00 사장님이 힘들게 나 서울가고 없는 사이에 실어다 놓아 준 것이다. 일일이 톱으로 자르고 장작은 장작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한 곳에 쟁이고 쌓는다. 아직은 생나무 생가지이므로 올해 11월 겨울용 땔감이 될 것이다.
밤이 지나 날이 밝으면 두군데 사과 밭에다 거름을 뿌릴 것이다. 어린나무와 성장속도가 더딘 약한 나무가 대상이다. 지난 달 20kg 100포대를 미리 사두었다. 올해도 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리기를 기대해 본다.
거름을 주고 나면 가장 큰 일이 드디어 남아있다. 가지치기 즉 사과나무 전지작업이다. 쭈삣 쭈삣 솟아오는 가지가 1차 대상이다. 그리고 병든 가지다. 병들어 부풀어 오른 마른 나무 껍질도 제거한다. 마른 껍질 속에 월동하는 병충해가 이불삼아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전지작업은 2주정도 예상되는 작업이다. 사다리를 타며 찬바람을 온종일 맞아야 하는 일이다. 사다리 위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건강한 몸을 유지해 주시기를 기도부터 먼저한다. 혼자 일하고 있기에 일하다가 다쳐도 아무도 모른다. 이제 그런 나이에 다다른 듯 스스로를 걱정한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이제 낮익은 고향 도시 언저리가 하나둘씩 나타난다. 긴늪 소나무 숲이 보인다. 'Nature 카페'는 월요일엔 문이 닫힌 채다. 쉬는 날인 것이다. 동남아 향이 은근 스며있는 '판단라떼' 메뉴가 있다. 그리고 압도적인 총 천연색 영상물이 정면 대형 모니터를 타고 흐르는 곳이다.
어느새 영남루 동산 자락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역이다. 열차가 드디어 멈춰선다. 털커덕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미끌리듯 열차 문이 한쪽으로 스르륵 열린다.
해야 할 모든 일을 머릿 속에 가득 남겨둔 채 어쨋거나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미리 약속한 고향친구들 만나 식사자리부터 가고 볼 일이다. 그들에게 밥은 내가 사기로 했다. 우리 사과를 사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시골의 하루는 오늘도 어김없이 놓여진 일들로 무한대로 길고 결코 끝나질 않는다. 그들이 모두 나만을 필요로 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다. 나의 존재가 이토록 중요한가 새삼 느낀다. 그러므로 이 삶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