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화의 한자락

숫자읽기와 단어체계

by 장현수

독일사는 따님 부부를 둔 권사님께 그들의 안부를 종종 묻게 되면서 독일에 대한 잊혀졌던 생각들이 갑자기 되살아 났다.


더우기 몇년 전에 아내와 아들과 더불어 독일을 다녀왔던 터이기도 하다. 들른 곳이 프랑크푸르트, 트리어, 뮌헨, 하이델베르크, 뉘른베르크 등이다.


독일은 우리의 대중가요 트로트처럼 슐라거라는 대중음악이 있다. 헬레네 피셔, 볼켄 프라이, 베아트리체 에글리 등 유명가수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대중을 아우르는 뛰어난 가창력과 역동적인 댄스가 일품이다.


독일은 무엇보다 숫자를 거꾸로 읽는다. 21에서 99까지. 그들이 읽을 때 85는 '오와 팔십'(5 und 80)이다. 숫자가 만단위 이상으로 더 커지면 일일이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만약 23,583(숫자 천단위에서 끊을 때 우리처럼 콤마가 아니고 마침표다) 이라는 숫자가 있다고 치면 읽을 때(우리말로 순서대로 한다면) '3과20천5백3과80'이 된다. 유럽전체 로마자 어 문화권으로 아랍어 숫자 읽는 방식이 그대로 도입된 결과이지만 이들 중 미국이나 영국을 포함한 나라들은 16세기 경에 이미 이와 다르게 지금의 읽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쓰는 언어다(히브리어를 포함한 중동의 언어 대부분이 해당). 바꿀 수 있었던 나라들 모두 강력한 단일 정부 체제하에서 제도화 할 수 있었던 결과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체제 후 350여개의 소국 체제로 나누어지는 바람에 그당시 다른 나라들처럼 제도화해서 바꿀 수 있었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로 남아있다. 지금은 다시 통일된 상태에서 변경이 가능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어렵게 정착한 문화체계를 다시 바꾸는 일은 또 다른 더 큰 혼란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그러면 시계를 읽을 때 09시 35분은 어떻게 읽을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순서대로 읽는다. 갈길이 먼데 언제 일일이 따져가며 읽을 수 있나~ 그런데 독일은 머릿속으로 굳이 그려가며 읽는 것 같다. 그들이 읽을 때 '10시 30분전에 5분후'라고 한다.


독일 사람들도 누가 시간을 물으면 이렇게 답하는데 신경 쓰이고 힘들기는 하나보다. 길에서 시간을 묻는 일은 없다고 하니 말이다. 시간을 물으면 답하기까지 머리 싸매가며 오분은 더 소요될 것같다. 틀린 답이 나올 확률이 더 클 것 같다. 보이는 숫자를 굳이 보이지 않는 숫자를 떠올리며 분석을 해야 한다니...


독일말은 다양한 합성어가 있다. 단어의 연결이 이어지면서 띄어쓰기를 생략한 경우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긴 글자가 나올만도 하다. 무려 67글자가 되는 한 단어도 있다. 여러 단어를 하나씩 이어 붙인 결과다. 그러나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된 것은 아니다. 합쳐진 개별 단어 고유의 뜻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생일 케이크 담는 그릇은 '생일+케이크+그릇'으로 묶어 한 단어로 표현한다. 도나우강 증기선 운항회사의 선장은 '도나우강+증기선+운항+회사+선장'의 형식이다. 이렇게 쓰는 것이 독일에서는 유머로도 통한다니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가지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단어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전 연인들 사이 '사랑단어'라고 할만한 그리고 여전히 부모와 같이 지내고 있는 청년들의 '우정단어'라고 할만한 단어가 한 예이다. 바로 'Sturmfrei'다. 독일에서 "나 오늘 Sturmfrei야 자기~" 라고 여자친구가 슬쩍 기대오며 남자친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면 둘 사이에만 통하는 은밀한 신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단어는 부모들이 집을 비우고 출타 중이란 말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안계신 지금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을 저지를 절호의 찬스다. 연인이나 친구를 불러 빈 집안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집으로 갈래?혹은 놀러 올래? 할 때는 해방감을 만끽하거나 기쁘다거나 신나하는 기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감정표현의 단어로 'Fremdschamen(a는 움라우트 a)'은 옆사람이 저지른 일 때문에 괜히 함께 있던 나까지 부끄러워질 때 쓰는 말이다.

'Torschlusspanik'도 있다. 남들과의 비교심리에서 나오는 말이다. 어떤 중요한 일을 남들보다 뒤쳐져 하지 못하고 놓칠 것 같은 불안이나 염려, 걱정이 찾아 올 때 이 단어가 곧잘 쓰인다.


권사님의 따님 부부가 한국으로 올 기회가 있을 때 사랑방 모임에 초대를 하고 싶다. 그들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독일의 문화에 대해 듣고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그리고 언제 다시 독일을 가 볼 수 있을까. 가게되면 건물과 풍경만이 아닌 그들의 삶 가운데로 파고 들어가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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