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31

두 할매

by 장현수

산과 산을 잇는 고가다리 아래를 차를 몰고 지나간다. 정면으로 보이는 저 쪽 산허리를 타고 케이블카가 꼭대기로 오르고 있다. 이제 곧 봄이 오겠지만 2월 중순은 아직 쌀쌀한데 어디서 오신 분이길래 아침 9시 이른 이 시간에~


곧 수민가가 눈앞에 들어온다. 나보다 나이 한참어린 할매가 식당하시는 곳. 관광지 얼음골 입구 맞은편 수백대 넓은 주차장을 끼고 능이오리백숙이 일품인 식당이다. 이곳에서 유명하고 전통깊은 염소고기 국 또한 잘하는 집이다. 자주 하는 음식이 아니기에 언제 염소고기 나오는 날 특별히 친한 분들 모시고 꼭 오고 싶다.


사과나무 전지작업을 시작했다. 38년된 나무는 올해도 수고를 너무 많이 했다. 얼마나 많은 사과를 달아 풍성한 수확을 하게 해주었는지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 이들로서는 죽을 힘을 다해서 한 해 사과를 이렇게도 튼실하게 잘 키워놓았다. 이제 기력이 쇠진하여 병들어 죽은 가지들이 또다시 많이 생겼다.


하나하나 베어 낼 때마다 내 팔을 잘라내는 듯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밑둥치 큰 나무가 가지는 이제 겨우 한두개 남았다. 10개도 더 되던 그 많던 가지들은 약해지고 병들어서 해마다 이렇게 숫자가 줄어간다. 심지어는 38년 된 밑둥치까지 베어내야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90년대초 한창이던 사과재배를 이제 2026년 내가 3년째 맡아 해보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서 이제 나의 세대로 온 것이다. 그러나 이른 나이로 온것이 아니라 환갑의 나이로 온 터라 남은 세월에 도무지 자신이 없다. 토질개선과 오래된 나무 수종갱신을 하기에 현실적으로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을 따라야 할까.


철학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우리밭의 사과나무에게서 나는 손을 뗄 수가 없다.


밤새 꿈속에서 무언가에 매달렸다. 서울에 있던 아내가 이곳을 잠시 들렀다가 어제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배웅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깊이 파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같이 따라 올라가야겠다는 자포자기 심정이 뒤따랐다. 의도치 않게 울음마저 솟구쳐 올라왔다.


그렇지만 마음의 위안을 곧 찾을 수 있었다. 언제라도 내가 서울가서 다시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까.


그러나 한편 절망의 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생을 마치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는 순간 나는 더 얼마나 외롭고 고독해질까. 소망을 갖게 해주는 교회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영원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생명의 삶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끝까지 붙잡고 의지한다.


카톡이 먼저왔다. 수민가 할매한테서. 아직 밀양에 있는지 아니면 서울 올라갔는지 물어보는 거였다. 구정 설 전 다음주 월요일 새벽에 올라갈 예정이었다. 아직 촌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사과를 고맙게도 주문해 주었다. 6박스씩이나.


박스에 주문한 사과를 담고 있는데 창고 안 집에서 나온 노랑이가 내 곁에서 맴돌았다. 캔 간식을 따서 그릇에 담아 주었다. 와서 먹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뿌듯하고 편했다. 그래 맛있게 많이 먹어라 노랑아~ 마침 우리 집을 지나가던 이쁜이도 왔다. 그리고 노랑이가 먹는 간식을 사이좋게 먹었다. 또 마음이 놓였다. 홀로 지내는 노랑이 한테 잠시라도, 와서 간식 먹을 때만이라도 머물러 준다면 고맙겠다 이쁜아. 노랑이 심심하지 않도록 해줘 외롭지 않도록 무섭지 않도록 해줘 이쁜아. 노랑이 부서진 이마는 상처부위가 마른 채 어제보단 조금 더 아물고 있었다.


흠사과 3, 알 작은 사과 3박스 담기를 마치고 얼음골 수민가로 향했다. 트렁크에 반시 홍시감도 노랑상자로 한상자 실었다. 음식하시는 분이니 홍시가 많아도 어떻게 잘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내게 마음을 써줘서 고마운 심정을 감으로나마 갚고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아침에 새로 끓였다면서 맛있는 염소국을 한냄비나 챙겨 주었다. 사과값도 30만원 넘게 받고 이 귀한 음식도 푸짐하게 받고. 그저께 서울에서 다섯분 목사님이 오셨을때 능이오리백숙 식사하고 나올때도 새로 담근 고추장을 시골에서 나 혼자 있다고 한통씩이나 건네 주었음에도 여전히 정이 뚝뚝 흘렀다.


밀양 삼문동에 수민가 할매의 언니 할매도 진짜 마음이 어진 사람이다. 나하고 동갑이지만 한집안이라 항렬로 할매다. 그러나 언제나 친구처럼이다. 할매와 친구되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들를 때마다 빈손으로 나를 보내지 않는다. 갖은 반찬거리, 음식 등. 그저께 다섯분 목사님을 위해 삼문동 할매 차를 빌렸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없고 나조차도 아무한테나 그러한 부탁을 할 수없다. 삼문동 할매이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두 할매가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신 천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서 혼자하는 삶, 사서하는 고생의 삶일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나를 위해 축복의 은총을 이들 두 할매를 통해 남김없이 부어주시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주께서 이들을 돌보시고 복주시기를. 그리고 나로하여 이들을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을 항상 허락하여 주시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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