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33

홍시의 기쁨

by 장현수

감사하게도 풍성한 수확 덕분이었다. 형제들에게 처가 식구들에게 집안 어른들께 또 서울 가까운 이웃들에게 일일이 나누고 나누고도 아직 이렇게도 많이 남았다니.


수확한 감이 8상자였다. 퍼주고 이제 남은 3상자이다. 한 상자당 적어도 150개씩이다. 총 1,200개의 감 중에서 450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저온창고 안에서 겨울을 지나는 동안 딱딱했던 감들은 모두 몰랑몰랑 홍시가 되었다. 홍시가 되지 않았다면 아직 택배로 여러군데 더 많이 나눌 수도 있겠지만 홍시가 되었으니 이제 더이상 그럴 수 없었다.


현장감이 나와 다소 차이가 있는 어떤 분이 가까이 계셔서


'감을 땄을 때 곧바로 곶감을 했어야 했다'


라며 '정말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셨다.


처음부터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기온 급강하로 인해 짧은 사과 수확기가 짧아졌다. 얼기 전 사과따기가 급해서 하마터면 같은 시기 겹친 감수확은 '(ㄴㅁ)을 머금고' 포기할까도 했었다. 일꾼이라고는 오직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짬을 냈던 것이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기란 쉽지 않았다.


지붕 끝으로 딥 블루 하늘 색이 차가웠다. 그리고 그 하늘은 끝모를 듯 이어졌다. 펼쳐진 하늘 속으로 빨려들 듯 외로운 심정이 한순간 아이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구름 한점이 그 하늘 아래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수확이 끝나 드디어 바빴던 들판의 향기가 사라지고 모두 겨울나기 준비로 바빴다. 아이의 시골이었다. 굴뚝에선 너 나없이 저녁 불때는 연기가 솟았다. 곧이어 켜질 호롱불. 집집마다. 곶감 이야기. 호랑이가 '나 당황하셨어요?'하고 물러 날.


어느 늦가을 한나절 어머니께서 마당가에 득석(짚으로 촘촘히 엮은 멍석)을 깔고 깎은 감을 촘촘히 늘어놓고 말리고 계셨다. 그리고 매일 매일 조금 조금씩 마를 때마다 납작해지도록 손으로 일일이 모양을 내셨다. 그렇게 잘 말린 곶감은 분(粉)이 많아서 쫀덕하고 깊은 단맛이 났다. 겨우내 어머니께서 하나씩 간식으로 꺼내 주실때 아끼느라 우리는 앞닛빨로 조금씩 조금씩 갉거나 떼어 먹곤했다.


오늘 남은 눈 앞의 이 많은 홍시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어머니 생각이 벌집을 건드린 듯 또다시 한꺼번에 물밀듯이 떠밀려왔다.


어머니가 두고 가신 가슴 높이만한 빈 단지를 뒤엉간(시골말. 초가집 뒷 공간. 방문앞 마루보다 넓다)에서 하나 들어냈다. 무게가 만만찮았다. 수돗가에서 팔뻗어 안으로 솔질해서 깨끗하게 씻어냈다. 그리고 여러번 헹궈냈다. 이 물은 뒷산계곡에서 흘러내려 온 맑은 물이다. 하늘 높이 울창한 숲이 만들어 낸 물이다. 푸른 하늘 닮고 스걱스걱 숲의 소리가 담긴 고운 물이다.


홍시 상자를 꺼냈다. 저온창고에 두고 있다가 밖으로 꺼내보니 눈이 부실듯이 색깔이 예뻤다.

갈라진 틈으로 속살이 보석처럼 빛났다. 달달하고 투명한 맑은 향기를 품고 홍시에서 눈물 한방울이 뚝 떨어졌다. 여기까지 잘 견뎌왔구나 홍시야~

하나 하나 꺼내서 꼭지를 모두 따냈다. 그리고 넓은 대야에 담았다. 한 상자에 한 대야씩. 더 이상은 들고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자칫 엎지를 지도 몰랐다. 조심이 최고였다. 가득담은 홍시 대야를 두 손으로 꽉잡고 창고로 향했다. 단지 두껑을 열고 단지 속으로 하나씩 일일이 포개 담았다. 두번째 세번째 대야까지.

봄이 지나면 홍시는 단지 안에서 저절로 숙성해서 자연스럽게 식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그들끼리 수많은 대화와 이야기가 이 안에서 이어지고 녹아들 것이다. 나에 대한 평판도 숱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건강하도록 일년내내 가꾸고 때맞춰 따들여 주었으니... 99%는 그들이 내는 맛일 것이고 나머지 1%는 나로 인한 맛일 지도 모른다. 홍시로 만든 식초는 아내가 특히 좋아했다. 아내한테 특별 선물이다.


올해 가을이 오면 감따서 사과택배 보낼 때 예쁜 봉지에 담아 맛보라고 하나씩 사과에 더해 넣어 드리고 싶다. 사과대신 왜 감을 넣었냐고 그 분들이 오해만 하지 않으신다면. 물론 지불하신 값대로 사과무게는 절대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오로지 시골의 정을 하나 더 담아 드리고 싶은 것이다.


감 딸 때 올해는 아들이 때맞춰 와줬으면 좋겠다. 아들하고 같이 해본 지지난 해 감따기가 즐거웠던 한때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럴 기회가 앞으로 더 얼마나 남아 있을까. 계기로 아버지를 알아주길 바라고 아들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감나무는 위 아래 내리막 긴 밭 맨 아래쪽 언저리에 우뚝 서 있다. 한그루다. 펼친 가지가 사방으로 30미터는 족히 넘을 것이다.


추석지나 늦가을 빨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는 예쁘다. 그래서 캐논 카메라 400미리 렌즈 줌 당겨 사진 찍기를 즐겨한다.


우리 부모님은 아들이 그래야 할 줄 그리고 좋아 할 줄 다 아시고 감나무도 사과나무도 밭도 집도 미리 준비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버지 어머니를 먼저 이 땅에 보내 주셨다. 그 은혜에 감사함이 벅차 오른다. 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와 있게 되었는지도 우연이란 없다. 미리 짜여진 각본처럼 척척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삶이 완벽하게 맞춰지는 퍼즐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