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단편 2

시골 아이들의 사계절

by 장현수

여름방학에 뒷산에 올라 소먹이는 일은 시골 아이들한테 흔한 일이다. 아직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 밖에 되지 않았어도 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소가 순해서 아이의 말이라도 잘 따라주기 때문이다.

꼭두새벽 아버지께서 쩌렁쩌렁 높은 톤 목소리로 깨우시면 벌떡 일어나 아직 덜깬 눈을 비비며 집채만한 큰 소를 앞세우고 거기다가 어린 송아지까지 딸려서 동네 어귀를 돌아 한참이나 산으로 더 올라가 소를 풀어놓고 먹인다. 어느정도 풀을 뜯기고 나면 근처에 매어놓고 집으로 내려온다.


마당가 감나무 그늘아래 여섯식구가 옹기종기 둘러 앉아 아침을 먹는다.

날아 온 매미가 감나무 위에서 맴맴맴 우렁차게 운다. '매미소리 크니 오늘도 디기 더울랑갑다'(오늘도 무척 덥겠구나)하고 어머니께서 식사 중 이야기를 거드신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07시 50분 '즐거운 우리집' 연속극이 흘러 나온다. 매일 이 시간이면 듣게되는 드라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연속극 노래가 밝고 기운차다.


소들은 오뉴월 농번기가 끝나면 가을 수확기까지 휴식기였다. 학교에서는 소들의 영농일수가 평균 181일밖에 안된다며 농가 일손을 줄이고 소득향상을 위하여 일하는 일 수를 더 늘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소의 평균영농일수는 시험문제에도 여러번 나왔다.(친구 00는 같은 문제를 번번히 맞추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고된 농사일을 하는 우리 어미소가 불쌍해 보일 때가 많았다. 어린 송아지는 어미소가 논과 밭에서 힘들게 쟁기를 끌거나 써레질 하고 있을 때 바깥에 서서 눈물가득 머금은 눈으로 어미를 바라보며 음~매~하고 길게 울었다. 그리고 집에서나 소먹이러 갈 때 제 어미 꽁무니에 꼭 붙어 따라 다녔다.


새벽에 가서 매어 놓았던 소는 점심먹고 다시 올라가 낮이 긴 오후 내내 산자락으로 풀어 먹였다. 어떤 때는 새벽부터 먼산까지 몰고가서 처음부터 풀어 놓았다. 이럴 경우 두명씩 짝을 지워 아침부터 '소를 보러' (소를 지키기 위해)갔다. 하나씩 도시락을 싸가지고. 이런 먼 곳에서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웃 시군(市郡)을 넘어서는 경계선인 고개마루에 녹슨 간판 하나가 쓰러질듯 서 있었다. 간판에는 '공산당 빨갱이를 모조리 잡아내자'하는 색바랜 붉은 페인트 글씨체가 남아 있었다. 어디선가 '우.우.우.우.' 하는 낯선 새소리가 들려왔다. 웬지 느낌이 서늘했다.


소먹이러 처음 가서 그곳에 있는 높은 못둑을 올라가 큰 못을 직면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기세가 너무 웅장했기 때문이었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물은 도무지 처음이었다. 두려움이 들어 물가에서 멀어지려 하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를 데리고 갔던 예닐곱 살 위 한집안 탁이 할배가 '뭐가 무섭노' 하고 '내 따라 온나~'하며 이빨을 보이며 씽긋이 웃어 주었다. 넘어지고 빠질까 두려워하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겨우 못둑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조금씩 그 못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형들이 그 곳에서 헤엄치며 누빌 때 나는 가장자리 얕은 곳에서 찰방찰방 물놀이 했다.


그런데 그 여름 어느 한 날이었다. 수영하는 형들과 같이 못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또래 여자아이 하나가 문득 나타났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우라가 쩔었다. 그 아이는 폭이 어느정도 좁은 장소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번만에 헤엄쳐서 건넜다. 놀라고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것이 동기가 되었다. 얕은 곳에서 네발로 두발로 수없이 반복 연습을 했다. 드디어 몸이 물에 뜨고 헤엄을 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 앞에서 보란 듯이 좁은 그 장소를 헤엄치며 횡단했다. 헤엄치다 팔에 힘이 빠지면 숨을 멈춘채 물속에 고개를 담궜다. 머리만 물에 닿으면 나머지 팔다리는 자동으로 떴다. 겁이 줄고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자 드디어는 한가운데로도 횡단하게 되었다. 물가 높은 바위에 올라 형들따라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었다. 곧 이어 다이빙까지도 해볼 수 있었다. 물속으로 뛰어들 때 깊이 들어갈수록 차가운 물온도가 온 몸을 감쌌다. 그리고 드디어는 한일해협을 헤엄쳐 건넜다는 조오련 선수를 본받아 못 둘레를 몇 바퀴씩이나 돌며 헤엄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렇게 오후에는 소를 먹이러 산으로 갔지만 오전에는 소와 염소를 먹일 꼴을 베러 논과 밭 들로 갔다. 여름 방학동안 집에서 해야하는 정해진 일과였다. 동네 아이들 모두가 거의 똑 같은 일상이었다. 여름은 그렇다 치자. 그러면 겨울 방학때는?


겨울방학 때는 오전과 오후 각각 한 짐씩 산에 가서 나무를 해날랐다. 겨우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온 식구가 나서서 다음 해에 쓸 땔감을 준비했다. 온 동네가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동네에서 보다 산으로 오가며 동네사람들을 더 자주 만났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집집마다 차곡차곡 집채만하게 높이 쌓아 올린 나뭇단이 하나씩 생겼다. 그리고 뒷문 밖에는 병풍크기보다 높게 잘 쪼개진 장작을 쌓아 방 벽에 이어 또하나의 벽을 이루었다.


겨울은,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군불 땐 따뜻한 방 아랫목이 최고였다. 집집마다 불땐 방에서 긴긴밤 온갖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고구마를 깎아 먹으며 장기판도 벌이고 아버지는 짚으로 새끼를 꼬셨다. 놀러갔던 친구네 집 낮은 천정으로는 쥐들이 우두두두 한바탕 달리기 경주를 벌였다. 그러다가 드디어는 한마리가 툭하고 방바닥으로 떨어지지나 않나 싶을 정도로.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훨씬 전부터 부모님이 집안에서 '작은집'이라고 불렀던 큰 할아버지 댁에 밤마실 나가실때면 자주 따라갔다. 불 땐 따뜻한 방 어른들 틈새에서 나는 '헨델과 그레텔'을 읽었다.

도시사는 큰집 고모가 사가지고 온 맛있는 과자를 집안어른들 앞에 내어 놓았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모두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 했는데 이렇게 가져와 나누는 과자나 떡 등 먹거리를 어른들은 '차반'이라고 했다.

고향떠나 살다 다니러 온 아재도 이 방에서 타지 소식을 집안 사람들 앞에 보따리째 쏟아 놓았다.


이렇게 겨울철 시골 긴긴 겨울밤은 어른들에게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어른들의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 어느새 아이들은 졸음에 겨워하고 아직 애기들은 마침내 잠을 깨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드디어 어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입에 하품을 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밤하늘 환한 달빛이 비추어 주었다. 내일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모두 기대하며 늦은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면 봄과 가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둘 다 농번기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기이다.


봄.

이른 봄에 논을 갈고 볍씨를 뿌려 모종을 가꾸었다. 이어서 밀과 보리를 수확했다. 밀과 보리타작은 임시 타작마당(백구마당, 백마당이라 불렀다)부터 새로 만들었다. 바닥을 고르고 물을 뿌려 다지고 말린 뒤 도르깨를 휘둘러 타작을 했다. 아이들 용 작은 도르깨조차 기꺼이 한 몫을 하곤 했다.


보리와 밀 타작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물을 끌어 논에서는 모내기를 시작했다. 모내기는 늦어도 장마가 오기 전에 끝내야 했다. 촉박하게 몰려있는 영농시기 탓에 온 동네가 너나없이 골병을 앓았다.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드러 누웠던 귀신도 벌떡 일어나 거들어야 할 판이었다. 농번기에 학교는 4~5일을 가정실습의 날로 정하고 집에서 부모님을 도우도록 하였다.


가을.

벼수확을 하느라 일제히 벼를 베고 와롱기를 밟아가며 타작을 시작했다. 밭에서 누렇게 잘익은 콩도 튀어 달아나기 전에 줄기째 잘라와 말리고 도르깨로 두드려가며 콩타작을 했다.

고구마를 캐고 수수도 털었다. 오도가도 못하고 누렇게 익은 채 눌러앉은 누렁호박도 서리 맞기 전에 모두 따들여야 했다. 산과 들 곳곳에는 감과 밤이 또한 지천이었다. 언제 이 일을 누가 다하나.


이렇게 추수가 끝나면 이어서 보리를 심었다. 보리를 심기 전에 마굿간 거름을 일일이 밭으로 져날랐다. 거름을 뿌린 밭을 갈고 골을 탔다. 그리고 쓰레질로 뿌려놓은 보리 씨를 골고루 덮어 주었다. 일에 치어 코에서 단내가 나듯 마른 흙에서는 먼지가 폴폴 일었다.


그렇다면 시골 아이들은 언제 공부하나? 여름에는 오전에 꼴을 베어오고 오후에 소먹이고 겨울에는 오전 오후 한짐씩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왔다. 봄과 가을 농번기에는 일손을 도왔다. 결국 주경야독 그리고 학교 수업이 유일한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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