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
일주일여 떠나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노랑이가 맨 먼저 나와 맞아준다. 잘있었어 노랑이~ 노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마에 찟긴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 노랑이 안부가 걱정되고 궁금했는데 무사하니 정말 다행이다.
차에서 내려 먼저 사료통부터 살폈다. 깨끗하게 비어있다. 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주일 내내 같이 있을 때는 부어놓은 사료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떠나 있는 동안에 혹시나 싶어 평상시 먹는 양의 두배 정도로 여유있게 부어놓고 갔었지만 이렇게 비어있게 될 줄 몰랐다. 이들이 얼마나 굶었을까. 들판에 나가 들쥐 사냥이라도 했을까. 아무리 야생이지만 아이들한테 조금이나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노랑이가 살고 있는 창고문도 열어 보았다. 창고안에도 사료를 따로 세 그릇이나 가득 부어 놓았었는데 거기조차도 깨끗하다. 살고 있는 노랑이 얼룩이 이쁜이 외에 다른 고양이들도 먹이를 찾아 이곳까지 찾아 왔음에 틀림없다.
다음번에는 더 많이 부어 놓아야겠다.
작은 곳간 문을 열고 반쯤 남은 사료 포대를 꺼냈다. 빈 사료통에 한꺼번에 먼저 내리 부었다. 그리고 빈 그릇마다 다시 가득가득 채웠다. 이윽고 갈기가 범상치 않은 파란 눈의 페르시안도 왔다. 곧이어 노랑이 이웃형 얼룩이 그리고 이쁜이도 왔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인 순심이 카타리나도 왔다. 그동안 이들도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이들이 죽고 사는 것도 이제 얼마쯤은 나한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먹이고 돌보는 것이 갈수록 부자연스럽지가 않다.
밀양 시골집으로 들어 올 때 마트에 들러 소고기 국거리를 샀다. 시골에서는 먹고싶은 대로 먹는다. 또는 재료가 남아 있는 대로 해먹게 된다. 혼자라서 근사하게 요리해서 깨끗한 식탁 위에 차려놓고 먹기 쉽지않다. 손님이 오면 혹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골 식사는 그냥 한끼 때우는 식이다.
사과를 보관하고 있는 저온창고에 가서 이제 세 개 남은 무우 중 하나를 꺼냈다. 아직 깨끗하다. 곰팡이 피거나 상하지 않았다. 이제 소고기 무우국부터 끓일 참이다.
아내가 늘 걱정인 것은 내가 시골에서 뭐해 먹는가이다. 걱정되니 먹고 싶은 음식있으면 사먹으라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그러나 나가서 사먹을 시간이 아깝다. 아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시골가서 산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마다 뭐해먹고 사는지 참으로 궁금해들 한다. 남자라서 그럴 것이다. 잘먹고 다니고 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만.
시골가서 살기위해 한때는 유튜브에서 찾아 조리방법 연구를 많이 했다. 그때 수집한 레시피가 지금도 내 파일함에 가득하다. 어머니 모시면서 살겠다고 작정했을 때부터였다. 그러나 시도해보지도 못한채 홀로 계시던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다. 그리고 남은 집, 남은 사과나무들. 나는 서울 그곳은 밀양. 386km 떨어진 거리.
그 많은 레시피를 나를 위해 사용해볼 생각은...있으되 언감생심이다. 일하느라 바빠 부엌에서 밍기적 거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아내 그리고 여동생이 한번씩 해주고 가는 반찬들이 매우 요긴하다. 그리고 혼자 있으니 많이 먹히지도 않는다. 음식을 해서 먹더라도 맛으로보다 삶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한 의무로서의 비중이 훨씬 크다.
이번주는 소고기 무웃국을 이틀에 걸쳐 먹기로. 그리고 다음날은 참치캔 김치찌게, 그리고 지난주 사놓고 먹지 못한 닭고기를 국해서 먹을 참이다. 밭에서는 새봄을 맞아 시금치와 상추 그리고 부쩍 자란 쪽파가 있고 부추가 살짜기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이른 봄 어머니는 서울에 간 아들 준다고 부추 첫물을 아끼지 않고 보내셨다. 밭에서 나는 여러가지 채소들 이것으로 이루는 자연식이 좋다. 그나저나 지난 가을에 사놓았던 냉동 우족탕은 언제나 고아먹나. 끓이는 불곁에 오래 지키고 서서 기다릴 여유가 없으니.
이제 집에 막 도착했으니 점심 밥부터 챙겨 먹고나서야 볼 일들을 볼 참이다. 오후 한시반. 소고기 무웃국부터 끓이기 시작했다. 소고기 국은 끓이기 참 쉽다. 무우 하나를 빗겨썰어 큰 냄비에 넣고 물을 적당히 붓는다. 거기다가 사 온 국거리 소고기를 얹는다. 그리고 끓인다. 간은 참치 액젖으로 하고 어느정도 끓으면 다진 마늘을 충분히 넣는다. 그리고 파를 넣는다. 고추가루를 넣기도 하고 넣지 않고 말갛게 할 수도 있다. 끓으면 냄비 뚜껑으로 물이 넘쳐 흐르니 곁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냉동실에 정리해놓은 누렁 호박이 있어 호박죽을 같이 끓였다. 이것도 참 쉽다. 물에 한번더 헹궈서 냄비에 담고 물을 적당하게 따른다. 그리고 쌀가루를 뿌리고 소금과 설탕을 넣고 저어가며 푹 끓여 주기만하면 된다. 젓기를 멈추면 쌀가루가 바닥으로 내려 앉아 바닥에 눌러 붙고 탄다. 끓을 때 거품이 퍽 퍽 튀어 오르니 얼굴에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혼자 있으니 내가 먹을 만하면 되기에 음식 잘하고 못하고의 부담이 전혀 없다. 작년 가을 쯤에는 솎아낸 가을무우 잎줄기로 처음 물김치도 담가 보았다. 소금절임이 과해 김치통 두통을 혼자서 비워내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실패의 경험으로 또다시 하게 될 경우 짜지 않게 할 자신이 생겼다.
계란찜은 전자레인지에 처음 5분 돌리고 물기 확인 후 1~2분 더 돌려 준다. 랩을 씌우고 포크로 랩에 구멍을 뻥뻥뻥 여러군데 미리 뚫어 준다.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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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밑반찬 포함 1식 2~3찬이 나의 한끼다. 그러다보니 의외로 간식이 먹힌다. 캐슈넛 그리고 솔티드 피스타치오 때로는 찐빵이나 누룽지 비스켓이 주요 간식이다. 혈당 조절이 필요해서 누가 준 양갱은 손이 거의 가지 않아 한쪽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이제 곧 봄이 되고 여름 가을이 되면 계절마다 집뒤 텃밭에서 다양한 채소들이 자랄 것이다. 어머니께서 예전에 심으신 취나물이 기대가 된다. 그 향긋함은 미각을 일깨운다. 그리고 비로소 봄임을 실감케 해준다. 봄을 코로 숨쉬고 입으로 먹어보며 느끼는 것이다.
밭에서 나는 감자도 고구마도 토마토 가지 오이 애호박 호박잎 강낭콩도. 파와 쪽파도 좋다. 들깻잎 그리고 두릅도 있다. 봄이 오고 밭에서 사과나무가 꽃피고 야산에서 꿩이 소리내며 깃털을 세우고 푸르르 날아 오를 때 밭 한켠에 무덤을 지우고 평안히 잠들어 있는 16년 우리 해피와 오래지 않은 삶으로 안타까운 초롱이를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점심식사를 마쳤다. 이제 할 일은 잠잘 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이다. 며칠을 식어있었던 터라 미리 불때놓아야 큰방 전기담요 깔고 잘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불때는 아궁이 근처 종이박스 집에서 생채기 투성이 순심이 카타리나가 머물고 있다가 다가오는 나를 보고 자리를 피한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 순심아. 불이 잘 붙도록 굴뚝 환풍기 스위치부터 올린다. 사과나무 장작을 넉넉히 써서 불을 땐다. 사과나무 불꽃은 푸르고 빠알갛다. 그리고 불살이 얼마나 센지 불붙은 등걸에서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참나무 숯불에 고기를 먼저 구운 뒤 사과나무 숯불로 마무리 하면 고기 향이 그렇게 좋다'고 했다. 의외로 사과나무 숯 열기가 엄청난 고온이다.
사과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엔 개별 판매가 어려운 흠사과다. 공판장에 넘기는 것이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헐값이다. 중간 유통자들을 먹여 살려야하는 책무가 사과 생산자에게 있는 것이다. 노랑이와 이쁜이 그리고 얼룩이 3인방이 일하는 내 곁으로 조심조심 다가와 본다. 그리고 하나씩 내 눈치를 살피며 잽싸게 옆으로 지나친다. 안 잡아 먹는다 이녀석들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얼룩이가 창고에서 제일 높은 곳, 쌓아놓은 박스 위에 올라가 나를 주시한다. 곧이어 노랑이도 형따라 올라가 자세를 잡는다.
사과 작업으로 집안의 일을 드디어 마치고 마샬 스피커를 챙기고 사과 밭으로 나선다. 이제 언제 가지치기한 나무들을 다 줍나.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과나무 골마다 깔려있는 가지들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오래된 나무들이라 병들고 죽은 나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두 베고 잘라냈다. '덕분'인지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나무도 줄고 산 나무의 가지도 많이 줄었으니 내가 해야 할 일도 작년 보다도 많이 줄게 되었다. 올해 육십삼세. 무리하지 말자. 더 이상 나무를 심고 키우는 일은 과거의 일일 뿐이다. 이 밭에서 사과 나무가 모두 사라지면 드디어 내가 할 일도 끝나는 것이기에. 남은 날을 천국으로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하심으로 오늘도 복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