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 4

서울 한달 살아보기를 원하는 M동생

by 장현수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인근 대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 후로는 전라도 광주, 강원도 철원 동송, 다시 또 전라도 광주, 그리고 서울에서 살았다. 직장발령에 따라 경남 창녕, 밀양 그리고 김해를 거쳐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만 산지도 벌써 22년째다.


서울은 사실상 고향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는 곳이다. 광화문, 경복궁, 시청광장, 북한산, 정동, 덕수궁, 독립문, 딜쿠샤 서양식 저택과 그 곁의 권율장군 집터 은행나무, 삼청동길, 인사동길, 감사원 뒷길 궁궐 담장따라 동숭동 대학로까지 내려가는 산 길 등등 서울은 내게 일상이 되었다.


사과밭으로 나갔다. 발자욱 소리를 듣고 벌써 밭 언저리까지 주니어 구월이가 마중 나왔다. 우리 해피가 그랬듯이 주니어도 너무 너무 반가워서 인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배를 내밀고 발라당 드러누웠다. 그리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뒹굴었다. 아마도 반가워서 하는 인사 일 것이다. 그리고 혼자 심심하니 같이 놀아 달라고 하는 제스처 일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안다고 사람도 아닌 작은 생명하나가 이렇게나 환대를 해주다니... 너무 고맙다. '나는 네가 고맙다 주니어야~' 마음을 담은 손으로 주니어의 머리를 꼭꼭 쓰다듬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미리 챙겨 온 캔 간식을 꺼내 먹기좋게 골고루 펼쳐 주었다. '잘 먹기 바란다. 그리고 오래오래 안전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 주니어~'


밭에서 일하고 있는 중에도 주니어가 한참 떨어진 집에서 나를 찾아 밭길로 내려왔다. 그리고 다가와 발밑에서 드러 누웠다. 다시 일어서서 내 발등 위로 두 발을 나란히 올리고 섰다. 그리고 주변을 두루 살핀다. 가벼운 발누름의 이 느낌이 좋다.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발을 살짝 떼었을 때 다시 일을 시작해보지만 주니어가 이제는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사이로 그대로 가만히 앉았다. 움직이는 내 발에 밟힐까봐 걱정이 되었다.

주니어는 내가 쉬면서 간식먹을 때도 곁으로 왔다. 그리고 앉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달라는 시늉을 했다.


이른 봄 싸늘한 공기다. 구름없는 하늘이 푸르기만하다. 마샬 스피커에서 봄을 깨우는 신나는 음악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온다. 사과나무들이 바야흐로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기를 바란다.


간식타임을 맞는다. 아무곳이나 앉은 채로 맛밤이랑 비스킷을 먹으면서 잠시 숨을 돌린다. 여기서는 강건너 저 건너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동네로 차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모두 보인다.


우리밭과 이웃해 살고 있는 동생 M이 전망좋은 이곳에서 볼 수 있었던 일에 대해 언젠가 증언 해 준 바가 있다. 어느119 구급차 한 대가 강을 건너 우리 마을로 들어왔고 또 얼마 후 다시 빠져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전경이 훤히 내다 보이는 이곳에서 번에 목격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바로 그 119 구급차는 그날 밤에 갑자기 쓰러지신 우리 아버지를 태운 차였다. 차 안에서 의식 잃고 누워계신 아버지 앞에서 엄마는 절망의 소용돌이 깊은 상심의 바다 한가운데 홀로 계셨다. 얼마나 외롭고 두려우셨을까 엄마는. 그 자리는 결국 두 분이 함께 하신 마지막 이별의 자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마음으로 엄마는 눈물로 두 분이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알 길은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길로 우리 가족의 곁을 영영 떠나셨다.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내 마음 가운데 산사태로 무너져 내렸다.


밭 가운데 잠시 앉아 쉬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이 밭을 일구느라 얼마나 많은 애를 쓰셨을까. 아버지의 체취가 땀으로 얼룩져 온 밭에 그대로 스며있을 것이다. 밭 어디선가에서 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들려 다.

(뭐든)'빨리 안가져오고 뭐하노~' 하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그립다. '예 아버지 지금 가져갑니다~' 하고 (뭐든)들고 아버지께로 달려가는 나...

한자락 바람이 뜬금없이 내 뺨을 훅 스치고 지나간다.


언젠가 옆집 동생 M은 이야기 도중 '서울에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옆에 있던 그의 언니 J는 '나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 못살겠더라' 며 고개를 저었다. M은 사대문 안 종로같은 곳에서 한달살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지... 서울에 살면 청계천도 볼 수있고 여의도 벚꽃도 볼 수 있고 한강변에도 가볼 수 있지... 차없이 지하철만으로도 여기저기 다 다녀 볼 수 있으니 무척 편리하지... 조선의 역사 그리고 구한말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곳이 많으니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한번 가볼만한 곳이기도 하겠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지방 지사무소에서 서울 본부로 자원하여 올라왔었다. 그 이유는 본부에서 정해주는 일만 하는 영업점이 너무 따분해서였다. 본부에서는 다양한 부서를 거치며 창의적인 업무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직장내 업무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더불어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 살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게 되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밤인데 밭으로 다시 나왔다. 전동 가위 등 일하는 도구들을 밭에다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내일 또 일하러 나와야 하기에 두고 와도 될 듯 했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밤늦게 비소식이 있었다. 전동가위가 비를 맞으면 고장날 수 있기에.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감한 일이 생겼다. 고양이 주니어 구월이가 이 밤중에 나를 보고 집밖으로 뛰쳐 나온 것이었다. 살짝 왔다 조용히 갈려고 했는데 그만 들켜 버렸다. 곁에 온 주니어가 강아지도 아니고 나만 따라 다녔다. 앞에서 아예 드러누웠다. 그만 쿨~ 자도록 달래면서(고양이는 야행성임에도) 안고 창고 집안으로 떠밀다시피 들여 보냈다. 그런데 소용없었다. 또다시 나왔다. 그럴 때마다 다시 안아서 들여다 보냈다. 몇번을 반복했다. 심지어는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어쩌자고 따라 나서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살짝 고민이 되었다. 주인 S나 동생 M 부부를 이 밤에 부를 수도 없고.


이 일은 어두운 밤중 들녘 길모퉁이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면 구분조차 되지않는 작은 얼룩 고양이 한마리와 밀고 당기며 분주히 씨름하고 있는 60대 할아버지의 모습이 가관이겠다. 그렇지만 이 또한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디서 이러한 경험을 쉽게 해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나만 누릴 수 있는 호사임이 틀림없다.


서울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하고 볼 것이 많다. 그러나 나로서는 시골에서 마주하는 한적한 이 삶이 다. 그러나 서울 경험이 없는 동생 M은 나와 다르다.


동생 M이 서울가서 한달살기 하고 싶다는 바램을 언젠가 꼭 이룰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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