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결심합니다. 들고 다니겠다고
무기 같은 책, 벽돌처럼 두꺼운 책을 의미한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를 가야 하는 날이라면 반드시 챙겨야 아이템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조배터리와 책이다. 휴대폰의 방전을 방지하기 위한 보조배터리, 그리고 책... 일반 책이 아닌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벽돌형 책 말이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고개를 떨구며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다. 그 디지털 숲 속에서 원시적인 종이를 펼치는 순간 지하철 안에 있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나를 향해 빠르게 움직인다. 사람들은 책을 처음이라도 본 것 마냥 두껍디 두꺼운 벽돌형 책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실 나도 두꺼운 책을 지니고 다닌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읽고 싶었던 SF소설 <삼체>가 그렇게 두꺼운 책이라는 것을 도서관에 가서야 깨달았다. 3편으로 구성된 류츠신 작가의 삼체 시리즈는 총 2000페이지에 가까운 초대형 SF소설이다. (1편 삼체문제, 452페이지, 2편 암흑의 숲 716페이지, 3편 사신의 영생 803페이지) 읽고 싶다고 결심했으니 무기 같은 책을 들고 다니는 것 또한 나의 책임이었다. 집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독서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무게 때문인지 일어나서 책을 읽다 보면 손목이 시큰시큰거릴 때도 있다. 그래도 벽돌같이 생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광활한 글자 속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와 세상을 향한 작가의 외침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벽돌형 책을 바라본 친구가 이야기하기를...
'너는 무슨 가방에 벽돌을 들고 다니냐?, 안 무거워?'
'무겁긴 한데 왔다 갔다 하려면 이거라도 있어야 해 안 그러면 휴대폰만 보고 있었을걸?'
'휴대폰 보면 되잖아 요즘 유튜브도 볼 거 많은데, 요약해 주는 콘텐츠도 많고 흠... 너 책 왜 읽어?'
유튜브가 잘되어 있다 보니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책을 요약해 주는 북튜버까지 있으니 스스로 글을 읽을 필요가 없어진 그런 세상이 되었다.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라서 씁쓸한 감정이 차올랐다. 감정을 억누르며 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책을 사랑하지만 아직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독서의 이유를 찾아 방랑하고 있는데 내 가방에는 벽돌형은 어서 읽으라고 손짓을 한다. 그렇게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책을 꺼내 읽는다.
벽돌형 책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들
1. 책이 두꺼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2. 작가는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것인가?
3. 두꺼워진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
4.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향유해 보자!
5. 긴 글이 탄생한 이유는 아마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이며 이를 표현하는 데는 그것보다 더 오래, 그리고 길게 표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친구 앞에서 횡설수설하는 나의 모습처럼.
-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든 조물주는 비웃을 테지만, 인간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조물주는 비웃음조차 짓지 않을 것이다.
(류츠신, 삼체 3부 사신의 영생, 자음과 모음,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