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장마는 아직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기온은 어느덧 30도에 가까워졌다. 올여름은 얼마나 더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더 더워지기 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집 밖을 나섰다. 에어컨이 있는 지하철과 버스 안은 천국 같았다. 하루 종일 그곳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곳은 골목을 비집고 가야 한다.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인간 숲을 지나 걷고 또 걸었다.
관광객과 체험학습으로 서울을 찾은 이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평일이어서 괜찮을 것이라는 심리 안정제는 소용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집을 떠나겠다는 마음을 가진 순간 푹푹 찌는 날씨와 사람으로 만들어진 복잡함은 견디고 버텨야 하는 작은 숙제였다.
서촌에는 관광객을 겨냥한 상점가가 즐비하다. 관광객에게는 그 상점가들이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상점과 사람을 지나 골목길을 들어가다 보면 조그마한 책방이 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책방 안에서는 그림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40~50대 수강생이 고즈넉한 책방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그림 수업과 별도로 책방은 자유로운 구경이 가능했다.
책방의 구조가 신기했다. 판매를 위한 책은 서가의 제일 아래쪽에 있었다. 사람 눈에 잘 보이는 서가 상단에는 포스트잇과 메모지가 붙여진 헌 책이 있었다. 사람 때가 묻은 책들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책과 함께 타인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은 독자가 완성한다. 독자는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간다. 그리고 타인과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나'다움을 확장 및 정립시켜 간다. 독서를 처음 시작 할 때 나는 낙서가 없는 깔끔한 책을 좋아했다. 메모, 밑줄을 하면 책이 가진 순수성을 헤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러운 책을 선호한다. 다시 말해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을 좋아한다.
복잡한 서울 한복판, 숨겨진 골목 안에는 사람이 있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스스로 '나'다움을 찾아가고 함께의 가치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런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을 떠나 발걸음을 옮겼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 부지런하게 사람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