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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Dec 14. 2023

뱃살공주 귀빠진 날 ①

나무관세음보살~~!!!

       


잊었다. 일주일 전까지는, 최소 이틀 전에 잊지 말고 미역국을 끓여야지 하며 착한 생각까지 했었다. 금요일 일박이일 동안 글 한 꼭지 쓰겠다는 의미 있는 핑계로 화려하고도 현란한, 허식과 비극의 공간 강원도 정선에서 노름에 미쳐 있었다.      


기실 노름판에서 돈은 따먹어도 사람은 따먹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잠식시켜놓고는 멈출 때는 단호하라고 모순투성이 충고를 경험하였다. 멈출 줄 모르는 유혹에 정신까지 탈탈 털렸다. 콘크리트 정글에 설치된 롤러코스트에 괴성을 지르던 일탈의 후유증이 일요일까지 이어지면서 ‘유배객과 대화’ 연재도 까먹고 말았다.






각설하고, 일요일 아침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힘이 너무나 공평하게 공원을 골고루 비춘다. 아주 일부지만(?) 재산을 날리고 온 남편은 죄의식이 자라 꼬랑지만큼은 남아 있어 새벽 운동을 마친 후 막 문을 연 마트에 들렸다. 두부 한 모와 약간의 삼겹살을 사서 결코 경쾌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집에 왔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으나 집은 여전히 잠에 들었다. 이때를 기회로 찰나에 불과한 행복을 경험하며, 영원하리라 착각하려는 남편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뱃살공주께서 기침할까 몸은 반대로 최소한만 움직였다. 잊지 않았다. 몸짓 하나에도 그동안 해이해진 마음을 꾸짖는 반성의 일갈을 담았다. 드디어 주방에 선 남편은 김치찌개와 일전을 겨뤄보겠다 재촉하며, 본격적으로 요리에 돌입하였다.


시작부터 투쟁심이 활력을 불어 넣는다. 더불어 휴화산이 움트며 폭발을 준비한다. 먼저 육수가 필요했다. 다시멸치와 다시마, 보리새우, 무와 함께 냄비에 물을 붓고 달이기 시작하였다. 가스레인지 파란 불꽃이 의기에 타오르는 내마음 같았다. 잘 익은 묵은김치 한 쪽을 꺼내 '네가 기꺼이 오늘의 희생양이 되라!' 하면서 손으로 꼭 짜서 물기를 뺀 후 준비를 해두었다. 며칠 전 처가에서 가져온 무 납작하게 썰고, 아랫도리 실한 대파 두 쪽 껍질 벗겨 엇썰어 놓았다. 느타리버섯은 씻어서 단정하게 갈라놓고 밥솥을 확인했다. 텅 비었다. 쌀을 씻어 메뉴에 ‘고슬백미’를 누른 후 본능처럼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맛있게 되라고 주문을 왼다.      


본격적으로 김치찌개를 만들기에 돌입하였다. 밑바닥이 둥근 팬을 달군 후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김치를 넣고 볶았다. 김치가 풀이 살짝 죽기 시작할 즈음 자르지 않은 삼겹살을 통째로 넣고 함께 익히기 시작하였다. 이 모두가 진리의 부스러기인 활자에서 터득한 정보다. 김이 오르며 냄새가 자극적이라 모처럼 새벽잠을 즐기는 뱃살마마를 깨울까 싶어 환기팬을 최소한으로 돌리면서 골고루 익혔다. 중간에 후추, 설탕, 소금 간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때도 과유불급이 주는 교훈을 잊지 않는다.      



팔팔 끓으며 내는 멸치육수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거름망을 걸친 후 김치와 삼겹살이 둘둘 말려서 사랑을 나누는 팬에 육수를 붓고 준비한 무를 넣고 한소끔 끓였다. 팬 가운데 이물질 거품이 모여들면 국자로 걷어내 국물이 맑게 해두는 것은 필수다. 이즈음에서 간을 확인해야 한다. 깊은 맛은 간장으로, 시원한 맛은 소금으로 맞추지만, 술꾼은 시원한 맛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넓게 썬 두부와 느타리버섯, 대파를 넣고 뚜껑을 닫아 중불로 한소끔 더 끓였다. 밥솥에서 밥이 다 되었다는 안내양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처럼 한결같은 목소리가 싫다. 언젠가는 밥솥에서 안성기나 정우성 같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길 기대한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밥솥을 열자 구수한 햅쌀밥 냄새가 행복하게 한다. 주걱으로 잘 섞어 고슬고슬하게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해두었다. 이때 콧노래가 흘러야 정상이다. 밥도 리듬을 타며 섞이기 때문이다.    

 

줌렌즈만 사용하면 정상적인 감각이 감을 잃는다. 오로지 맛있게만 만들려는 욕망이 조리 과정에서 지혜를 무시했을 수도 있다. 간장을 넣지 않았음에도 찌개 국물이 짙고 탁한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혀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맛을 확신했다. 식탁 가운데 김치찌개를 올리고, 냉장고에서 밑반찬 꺼내 놋그릇 접시에 정갈하게 담았다. 상차림이 끝났다. 아내와 아들놈을 깨웠다. 팅팅 부푼 얼굴로 실눈을 뜬 채 비틀대며 거실로 나온다. 아들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둘 다 사랑스러버 디지것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을 떠서 턱 아래 대령하였다. 뚜껑을 열자, 김치찌개 특유의 맛있는 냄새가 훅하고 올라와 식욕을 돋운다. 김치 찢어서 밥에 올려 맛있게 먹는다. 나도, 뱃살공주도, 아들놈도……. 두 숟갈 째 내 입속이 말했다. 국물 뒷맛이 따로 돈다. 착 감기는 맛이 아니라 살짝 느끼한 맛이 시비다.

“국물이 왜 이렇게 탁하지?”

결국 참지 못한 뱃살공주께서 한 마디 건넨다.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도, 이유도 알 수 없다.

“혹 김치와 삼겹살 볶을 때 옆에 눌어붙은 거 삼겹살로 문질러서 섞었어요?” 한다.

귀신이다! 양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기억이 있다. 원인은 탄 양념이었다. 그래도 맛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과정을 되돌려보았다. 처음 식용유에 김치를 볶는 것이 아니라 달군 팬에 물 반 컵 정도와 삼겹살을 먼저 넣고 그렇게 조려나온 기름으로 김치를 볶았어야 했다. 어설픈 정보와 싸구려 지식에 휘둘렸다. 연습 과정이 너무 짧았던 것이다.


아들놈이 대화를 돌린다.

“돼지고기 비계가 너무 물컹해 못 삼키겠어.”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먹지 마!”하는 순간 비계를 골라낸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밉상이다. 문득 약돌돼지 고기가 생각났다. 비계까지 꼬동꼬동한 기막힌 맛을 입이 기억해 냈다. 본능처럼 튀어나왔다.

“돼지고기는 약돌 먹여 키운 돼지가 최고지. 이 삼겹살은 아마 짬밥 먹여서 키운 돼지일 거야.” 했다.

내 말에 아들놈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약돌이라고 해서 미네랄뿐일 건데 하며 따진다. 뒤이어 뱃살공주가 철도 들었고, 구리, 마그네슘, 아연도…, 하며 말끝을 흐린다. 은근히 부화가 올라 내가 그랬다.      

“다음 놈이나, 네 이년에게 물어봐!” 다분히 격한 감정이 실렸다.


순간 식탁은 침묵에 들었다. 잠시 뒤, 뱃살공주께서 작정한 듯 핸드폰을 들고 확인한다. 그리고 낭독까지 한다. 정말 얄밉다는 생각이 들어 볼을 꼬집어 흔들고 싶었다. 내용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이 작금의 상황이 너무 싫었다. 목과 어깨에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숟가락은 놓고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느꼈다. 내 등 뒤로 무심심하고도 더심심한 신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것을……. 시공이 질리는 순간이.   



양치질 후 물로 얼굴을 헹궜다. 거울을 보자 어린 시절 아버지를 똑 닮았다. 눈동자에 힘을 실었다. 거울 속 아버지가 그랬다. ‘이 못난 놈아!’라고. 뭘 그리 아등바등 살고 있냐는 생각이 덮쳤다. 그동안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리고 두문불출, 화장실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반전이 필요했다.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본능을 기꺼이 재입력 시켜야 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주섬주섬 자전거 복장으로 챙겨 입었다. 겨울의 찬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싶었다. 허벅지와 장딴지에 뻑뻑하게 힘이 실리고, 숨이 목까지 차오르며 헉헉대는, 살아 있는 나를 느끼고 싶었다. 지금 당장 나에게는 그따위의 격려가 필요했다.     

 

메밀눈으로 바라보는 뱃살공주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평일에는 아내가 집을 나가지만, 휴일에는 그와는 반대로 남편이 집을 나가야 한다. 이것이 질서이자, 삶의 흐름이고, 리듬이라고 자위한다. 이렇게 해서 삶에 내적 질서와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야 한다. 특히 가정이란 하나를 채우면 하나는 비워야 한다는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며 생동감 넘치는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화살촉에 독을 바른 듯한 시선을 느끼자 진짜로 등짝이 아팠다. 이래봬도 육군 병장 출신이다. 이 정도 통증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뻔치가 있음이다.      

“몇 시에 올 건데요?” 뱃살공주의 얼음송곳 같은 질문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전거용 장갑과 헬멧을 챙겨 용감무쌍하게 밖으로 나왔다. 이때 표정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자칫 가볍게 보일 수 있어서다. 어깨도 흔들어선 곤란하다. 내가 지금 기분이 몹시 나쁘다는 사실을 은연중 드러내야 한다. 식탁 수련 화분에 붙은 메모지가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문을 열고 자전거를 챙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맥베스’에 나오는 대사처럼 심장이 갈빗대를 두드렸다.  





자전거를 타는 내내 악필이지만, 정성 들여 쓴 메모지 글이 잔상이 되어 따라 다녔다. ‘물김치, 김장아찌, 호두․카니 목욕, 냥이 화장실 청소, 몬스테라 정리, 잠바 바느질, 분수대 화장실 씻기, 베란다 화단 바꾸기’

나는 속으로 그랬다.


‘흥! 몸살 나겠네.’


다른 것은 몰라도 냥이들이 물을 너무나 싫어해서 목욕은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나조차도 배를 말려주다가 물린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뜻으로 알고 다독일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인간은 존재보다 소유에 관심이 많게 마련이다. 오후 2시를 넘긴 무렵이다. 적당한 피로와 적당하게 허기진 배를 해결하기 위해 단골 포장마차에 들렀다. 반갑게 맞는 쥔 할머니가 환하게 주름진 얼굴로 마치 너 주려고 숨겨 놓았다는 듯 한국은행 달력 세트를 갈무리해 준다. 벽걸이용, 탁상용, 다이어리, 수첩까지 들었다. 아무 연고도 인연도 없는 분에게 내리사랑을 경험하였다. 유통기한도 없는 희망은 비료나 물을 주지 않아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쑥쑥 자랐다.      


달력이 든 비닐 포장을 반으로 둥글게 말아 자전거 손잡이에 끼우자 딱 들어맞는다. 이것은 분명 나의 것이란 뜻이다. 보무도 당당히, 아니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에 경쾌하게 음박을 탔다.


내일이 뱃살공주마마 귀빠진 날이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말이다.


며칠 째 붙어 있는 뱃살공주님 메모. 내게 보내는 메시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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