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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루 매화나무가 살아난 까닭 ①

두 번에 걸친 남해의 귀양살이- 소재 이이명

by 박필우입니다




숙종 대 노론 사대신 소재 이이명


1692년(숙종18) 5월 소재는 뛰는 듯이 기뻤다. 이것이 실로 얼마 만에 맛보는 행복감이던가? 동해 황망한 어촌마을에서 절도안치, 즉 외로운 섬으로 이배된다는 것은 더 무거운 중죄로 귀양살이에서 벗어날 날이 한세월이라는 의미다.


어찌되었던 죄를 짓고 중벌을 받는 유배인이 이러한 이배의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이명은 달랐다. 다정다감 한 장인이 유배 가 있는 남해로 이배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영해의 바닷바람이 상쾌하고 달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희빈 장씨가 낳은 왕자(훗날의 경종)를 두고 세자책봉문제가 남인들에 의해 불거졌다. 아직 중전(인현왕후 민씨)이 젊고 건강하니 시기상조라고 강하게 반대하였던 노론들은 임금(숙종)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름 하여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정국에 일대 피바람이 불었던 것인데, 이로 인해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이 귀양 가서 사사되고, 자신의 장인인 서포 김만중을 비롯하여 노론의 대신들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유배의 몸이 되고 말았다.


자신 또한 우암 송시열에게 수학하였으며, 장인 서포와는 정치적 동지요, 뜻을 함께하는 사이었으니 칼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기실 기사환국은 남인들이 일으킨 옥사가 아니다. 권력이 비대해진 서인들, 특히 노론대신들의 예봉을 꺾기 위한 숙종의 전략이었다.




사진 15. 용문사 (2).JPG 남해 용문사 대웅전 앞마당

경상도 땅 영해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슬픔의 바다였으며, 인골에 사무친 시간이었다. 외롭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디에 비견될 수 있었으랴. 한 자락 부는 바람은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피눈물이 흐르듯 하였다. 참형을 당한 형 포암(蒲菴)이 유난히 그리운 까닭이다. 그러나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들을 아무리 잊으려 해도 더욱 뚜렷해지는 얼굴들이 밤이면 잠 못 이루게 했다. 울분을 토하고, 마음은 우울증을 넘어 스스로 황폐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성리학과 실사구시를 동시에 접목하여 정치의 뜻을 펼치고자 노력하였으나, 아녀자의 치마폭에 휩싸여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임금에 대한 원망 또한 가볍지 않았다. 더불어 이 나라 조선의 앞날이 먹구름과 같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세제 문제는 정치적 이합집산에 나눔의 문제였다. 파워게임에서 초반에 뻗어버린 노론이 자뻑의 악수를 둔 것이지만, 이미 선조왕 대에 송강 정철이 휘두른 기축옥사에서 동인과 서인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말았던 것이다. 소재는 권력 아니면 죽음이라는 처절한 싸움판이 이토록 싫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언제고 이 아픔을 갚아줄 기회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적이 일어나 다시 복원이 이루어진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픈 생각도 들었다. 반목과 갈등 속에서 끝없이 이어져야 하는 정치판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유배객이 된 뒤로 조금씩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 자신을 죽이러 온 군사로 착각해 화들짝 놀라 가슴 졸이던 귀양살이에 그런 생각자체가 세상과 이별한 유배객에겐 사치일 뿐이었다.



남해로 이배 령이 떨어졌다. 당분간 사약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숨을 놓았고, 존경하는 장인과 함께 귀양살이를 할 수 있다는 현실이 그토록 반가웠던 것이다. 이이명은 이배를 서둘렀다. 젊은 날이라 어찌어찌 해서 영해군수를 통해 말 한 필을 구할 수 있었으나, 남해까지 이배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다.


때는 꽃피는 춘삼월이라 이토록 여유로운 이배길이나 장인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은 터라 마음이 급한 사연이었다. 가는 내내 간절한 마음이 되어 길을 재촉하곤 했다.


그렇게 갈망하던 남해에 도착을 하고, 자신의 유배지인 용문사 아래 적소에 여장을 풀자마자 장인 서포가 유배 가 있는 노도로 향했다. 물어물어 벽련마을에 도착을 하고보니, 앵강만 바다 중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삿갓이 떠다니듯 노도가 지척이라, 그것을 보자 반가움에 이이명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왔다.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외로움은 무엇으로 달랬을 것이며, 남다른 효심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걱정으로 날을 새웠을 장인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던 것이다. 그때였다. 아련한 심신을 깨우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노도엘 가시려나요?”


맑고 청아한 가릉빈가가 내는 천상의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작은 나룻배에 고사리 주먹으로 옹차게 노를 움켜쥐고 있는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총명한 눈망울이 사람의 마음속을 비추는 것 같고, 후광이 비치듯 단정한 매무새는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 같았다.


“방금 네가 내게 물은 것이냐?”

“그렇습니다만, 무슨 슬픈 사연이 있어 눈에 물이 고였습니다.”

“슬픈 사연이 아니라 기쁜 사연이란다. 그런데 그 작은 체구로 노를 젓는단 말이냐? 사공은 어디로 가신게냐?”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을 했다.

선비님께서는 어찌 크기로 세상을 재려 하십니까? 아무리 크다 해도 속이 비어있어 그 빈속을 욕심으로 채우려 하신다면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며, 아무리 작다한들 속이 차고, 심지가 굳다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가 수월할 터인데, 아직도 편협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신 겝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신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인데, 세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법이지요!”


이이명은 어린 아이의 핀잔 섞인 맹랑한 대꾸에 말을 잊었다. 어이없으나 그 말은 틀리지가 않았다. 아이의 총명함에 소재는 모처럼 시원한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벽진 곳에 저토록 총명한 아이가 있다니? 하며 소재는 내심 놀라하며 예사롭지 않은 아이임을 직감했다.


“하하하~ 네가 나를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내 닫힌 눈을 뜨게 해주는 아주 유쾌한 말이었다. 그래 어린 선비께서 둔한 저를 저곳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선비님을 내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어서 이곳에 오르시지요.”

이이명은 조금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소년의 총명함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하고 작은 배에 올랐다. 그러자 소년이 팔을 휘두르며 노를 젓자 조막만한 작은 배는 강풍에 돛 단 듯 노도를 향해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필시 보통소년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 번 직감하며, 그 모습에 넋을 놓고 있었다. 노를 젓던 소년이 말을 걸어왔다.




사진 19. 노도.JPG 남해군 상주면 벽력마을에서 바라본 노도




“이 작은 섬에는 무슨 연유로 가시는 겝니까? 혹시 묵고 노자할배를 만나로 가시는 것은 아닐 터이고......”

하며 말끝을 흐렸다. ‘묵고 노자할배’라? 이이명은 그 말이 재미있어 되물었다.

“방금 ‘먹고 놀자할배’라 하였느냐?”

“예, 저 섬에는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서책만 읽으며 글을 쓰시는 선비 한 분이 계셨지요! 그분을 일러 하는 말씀입니다.”

“그분이 이 섬으로 귀양 오신 분이라 하시더냐?”

“예, 임금님께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고, 쉬이 내 뱉은 죄로 여러 번 유배되었다가 또 그러길 여러 번이니, ‘상감마마 입 속의 혀처럼 놀아나지 못한 인생에 어찌 편안한 삶을 이룰 수 있겠느냐!’ 하셨지요. 그리고 매우 뛰어나 귀재라는 자찬과 권력욕이 남달랐던 죄로 절도안치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누구긴 누구이겠습니까? 묵고 노자할배지요.”

“네가 그분을 아느냐?”

“많이는 알지 못하나 가끔씩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뵐 수가 없으니 참......”

“아니 지금은 뵐 수가 없다니 그 무슨 말이더냐?”


소재는 방금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은 뵐 수가 없다니?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이 없다는 말인데, 처음 출발과 달리 불안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무슨 일 있냐고 다그쳐 물었으나 어린 사공은 앞만 바라본 채 노만 저어갔다. 벽련마을과 노도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쉬이 작은 배가 섬에 닫자 소년은 날듯이 몸을 날려 뭍에 올랐다. 그리곤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지만 재빠르기가 다람쥐 같았고, 몸놀림이 비호같았다. 헉헉거리며 소년을 따르자니 힘에 겨웠으나 노도의 주민 몇이서 바라보는 시선에 동정이 묻어있음을 느꼈다.


소재는 장인어른에게 예기치 못한 변고가 생긴 것이라 직감하였다. 가슴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겁고, 목이 메여오기 시작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멀리 잔잔한 바닷바람에 기대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꼬불꼬불 오솔길을 힘겹게 오른다. 그러나 소년은 힘든 기색 없이 나르듯 걸음을 재촉했다. 고갯길을 돌아서면 바다가 보이고, 가파른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는 샛길을 지나 한참을 오르자 멀리 초가 채가 초라하게 드러났다.


소재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가픈 숨을 몰아쉬며 소년을 보니 언제 그렇게 빨리 달렸냐는 듯 타박타박 소재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며 발걸음을 천천히 하고 있었다.


쓰러져 가는 초옥에 도착을 하자 분명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만큼 낡아 있었다. 쓰러져가는 초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였다. 소재는 불안한 마음이 되어 다그쳐 물었다.


“선생은 어디에 계신 게냐?”

소년은 머뭇거리다 소재를 빤히 올려다보며 운을 땐다.

“아마 지금쯤은 이 세상의 힘겨움을 다 내려놓고 극락에서 어머님과 꽃놀이를 즐기고 계시겠지요.”

“뭐라고? 그 말이 진정 사실이란 말이냐? 진정 서포 선생이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란 말이냐?”


소년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소재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목 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배에서 태어나 선생(船生)이라는 아호를 가진 서포 김만중은 유복자였으며, 유별난 효자였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구운몽>을 집필하고, 이곳 노도에서 숙종 임금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사씨남정기>를 지어 소설로써 깨우쳐 주고자 했었다.



사진 16. 유배문학관 야외.jpg 남해 유배문학관 야외 마당 / 소재 이이명 묘정비



그러나 귀양살이 도중 들려온 어머님 부음소식에 피를 토하고, 식음을 폐하고 통곡하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결국 남해로 유배된 지 햇수로는 4년째. 만 3년 1개월 23일이 되던 날, 56세의 나이로 한 많은 세상과 이별하고야 말았다. 소재는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했다.


그 모습을 얼마간 가만히 지켜보던 소년은 말을 이어갔다.

“할배가 말씀하셨지요. ‘내가 죽고 총명한 젊은이가 찾아오면 너무 슬퍼 말라 이르라. 인생이란 무릇 한낱 뜬구름과도 같은 것! 태어나면 죽음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법, 부귀영화도, 권력도 허망하고 또 허망한 것인데,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호연지기를 깨우쳐주기를 다하였으면, 죽음 앞에서 당당해 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땅을 움켜쥐듯 통곡하다 소년의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진정 그렇게 말씀하셨더냐? 진정 내가 찾아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더란 말이더냐?”

“예, 분명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약간의 언질을 주긴 하였지만 말입니다.”


소재는 아이의 말이 거짓이라도 좋았다. 장인인 서포 선생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말이 있다는 사실에 곡을 거두었다. 그리고 눈물을 훔치고, 혹여 그분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싶어 초옥을 살피기 시작했다. 초라한 초가는 적막감만 돌았고, 엉킨 이엉은 이리저리 마음처럼 어지러웠다. 탱자나무 얼기설기 심어있는 작은 집은 주인을 잃은 채 그렇게 삭아가고 있는 모습에 소재는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사방을 뒤졌으나 깨어진 질그릇 하나 뒹굴고, 부엌이라고 할 것도 없는 비좁은 공간은 궁핍하고 힘겨웠던 귀양살이를 대변하듯 그을음 하나 없이 거미줄만 이리저리 엉켜있었다. 한 평 남짓한 방안에는 평소 선생이 쓰다만 작은 벼루가 얼마나 갈아댔는지 바닥을 보이며 뒹굴고, 조각난 판자를 덧대어 만든 책상은 그사이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눈물로 범벅이 된 눈으로 바라본 작은 댓돌은 부서진 쪽마루와 높이를 같이하고, 뒤를 돌아서자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달래주었을 작은 옹달샘이 용도를 다한 채 흙이끼가 끼여 타들어가는 자신의 가슴 속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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