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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 돌아가지 않으리 ③

우리글을 사랑한 충과 효

by 박필우입니다

“어린 선비께서 참 많이도 알고계십니다! 그렇지, 역사란 유일하게 되돌아서 보는 미래인 것을.”

“그런데 할배는 글을 쓰시고 이렇게 꼭 남에게 보여주고 난 뒤, 할배의 글로 완성 하셨습니까?”

“그 물음은 무엇을 뜻하는지?” (계속)





“제가 사는 세상은 남에게 보이기는커녕 창작기법 익히기에만 전념하고, 조금만 지식이 쌓이면 글이란 거침이 없어지는데, 또한 자기검열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남발하는 글들이 많아서 말입지요.”


“어린 선비께서 사는 세상이 내 참으로 궁금하구먼! 그러나 지금의 세상도 별 차이가 없다네. 글이란 과거급제를 위한 현실적인 것뿐이지. 글이란 얼굴과 같은 것인데, 진지한 고민과 냉철한 자기검열을 통해야만 진정한 글이 창작될 수 있을 것이야. 그러고도 부족해 남에게 검열을 하게하니, 애상에만 빠진 천박한 글은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네.”


20200109_131802.jpg 노도. 사씨남정기원 / 유씨를 유혹하는 교씨



“할배 말씀을 들으니 속이 다 씨원합니다! 우리 세상도 등단제도라는 것이 있어 딱 맞춤형 글 외에, 폭넓고 다양한 문학들이 겹집살이 하듯 아웃사이드 고독을 한없이 품고 살아간답니다. 그리고 시인과 수필가가 또 얼마나 많다고요!”

“아웃사이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좋은 뜻은 아닌 듯 하구먼, 그러나 시인이 많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냐? 그만큼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 또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더냐! 아마 언젠가는 종교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야!”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송강 선생처럼 인성 따로, 글 따로이니 그게 꼬라지 보기 싫다는 말입지요! 사람은 언행일치도 중요하지만 심행일치(心行一致)와 더불어 글쟁이들에게 필행일치(筆行一致)가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이때 서포는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고, 한기가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동자는 서포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이부자리 위에 눕혔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꺼져가는 불을 더 지피고, 따스한 물 한 바가지를 가져와 서포의 입으로 한술 넣어주었다. 한참을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며 누워있던 서포는 늦은 밤에 어찌 돌아갈 거냐며 동자를 걱정했다. 동자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걱정 말라는 신호를 보냈고 서포는 그윽한 눈길로 동자의 손을 잡더니 피곤하다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동자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을 꽉 메우고 있었으며, 동자의 머리위로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서포의 섬 노도는 모두 조용히 꿈속에 빠져드는 시간이 된 것이다.


*

1690년 정월, 해가 바뀌고 남해로 유배 온 후 처음 맞는 혹독한 겨울이었다. 서포는 아침에 일어나자 간밤의 어수선한 꿈자리가 그슬렸다. 혹시 어머님께 무슨 일이 일어나신 것인지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서포의 예감은 적중했다. 청천벽력 같은 어머님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서포는 마루에 서 있다가 그 소식에 마당으로 떨어져 혼절하고 말았다. 그러다 깨어나 통곡하고 다시 혼절하기를 몇 번, 그가 통곡하는 소리는 멀리서 듣는 노도사람들에게도 절로 눈물이 나오게 만드니 그와 함께 아픔을 탄식하게 되었으며, 그의 효심에 노도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서포에게 있어 어머니는 모두였으며, 삶의 이유였다. 매일 그리움에 시를 읊었던 효자 김만중에게 어머니 부고 소식은 삶을 세상 끝자락에 서게 만들었다. 작년 동짓날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듬해 정월에 소식을 듣게 되자 불효한 죄를 어찌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을까? 스물에 청상이 된 어머니는 자식 둘을 훌륭히 키워냈으며, 72년을 살다가 그렇게 가신 것이다. 서포는 더는 세상으로 살아서 돌아갈 이유마저 없어졌다고 생각하였다.


세상과 단절을 생각하고, 적소의 초옥에 어머니 신위를 모시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곡을 하며 상을 올렸다. 그러자 이 통곡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의식처럼 다가왔는데, 서포의 곡을 듣기위해 삽짝 밖에는 사람들이 모였다가 곡이 끝나면 돌아가곤 했다. 그 속에 간간히 어린 동자의 모습도 보였으나, 동자의 위로도 서포의 슬픔에 위안이 되지 못했음은 당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곡을 마친 서포는 섬 주민들 사이에 옴팡 끼여 있는 동자를 손짓으로 불렀다. 동자는 말없이 다가가 위패에 잔을 올리고 경건하게 절했다. 그리고는 서포와 절을 마친 후 마주 앉았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문득 동자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전에 쓰시던 <선비 정경부인 행장>을 마무리 하셔야지요. 그래야 평소 어머님이 보여주신 아름다움과 현명함을 만 천하에 알릴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할배 사위이신 소재 선생이 이르길 ‘효자가 심히 슬퍼 곡을 하면 묘소에 풀이 마르고, 전나무가 죽는다.’ 합디다. 부디 마음을 다잡으시고, 몸을 돌보시길 간원합니다.”

“네가 내 사위 소재를 아느냐? 언제 만났던 것이냐? 건강은 하다더냐? 거 참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한 일이로다!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답답하구나! 어서 말 좀 해 주시게나.”


서포는 사위인 소재 이이명의 말에 지금까지 슬픔을 걷어두고 다그쳐 묻기 시작했다.

“예, 잠시 뵌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영해에 계십니다만 몇 해 뒤에 이곳으로 이배되어 오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할배와 서로 만날 수 없어 이것이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그 외에는 이놈도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습니다. 더는 묻지 마십시오. 이제 슬픔을 거두시고 학문의 결실을 맺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후대의 사람들이 할배를 본받고, 또한 경외하는 마음이 되어 할배의 외롭고 고단했던 유배 생활이 헛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서포는 영해로 유배 가 있는 자신의 사위 소식에 또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글들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렇게 굳히게 된다.

“그래 동자의 뜻은 내 잘 알겠으나 불효한 이 몸이 어찌 따뜻한 방을 찾겠으며, 따뜻한 밥을 입으로 넘길 수 있겠느냐! 내 염려는 고마우나 내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그동안 쌓여있던 글들을 묶어놓아야겠구나! 그리고 혹여 내 사위 소재를 다시 만나게 되거든 꼭 이 말을 전해주시게나.”


“무슨 ……?”

“만약에 내가 죽고 소재가 찾아오면 너무 슬퍼 말라 이르라. 인생이란 무릇 한낱 뜬구름과도 같은 것! 태어나면 죽음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데, 부귀영화도, 권력도 허망하고 또 허망한 것이며, 사람으로 태어나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에게 호연지기를 깨우쳐주기를 다하였으면, 죽음 앞에서 당당해 질 수 있다고. 꼭 이렇게 전해주시게나.”

“……”



IMG_6721.JPG 삿갓섬 노도, 김만중 적소터 유허지



*

또 그렇게 유배의 시각은 야속하게도 흐른다. 적소에 심어놓은 매화가 두 번의 꽃을 피워냈고, 늘 그랬듯 서포와 동자의 만남은 몇 번을 더했으나 서포는 점점 쇠약해 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위한 <선비정경부인행장>을 마무리 하였으며, 한시라도 어머니를 위한 망혼곡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사씨남정기>가 장안에 화재가 된 것도 알고 있었으나 자신이 쓴 글이라는 것을 구태여 알리고 싶지 않았다.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던 서포 김만중은 어머니의 임종마저 보지 못했다. 그렇게 애통해 하다 피눈물을 쏟으며 글을 완성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 하고도 5개월째 접어들던 1692년 4월 30일 매화꽃이 시들고 가지에 파란 잎이 돋아나기 시작할 즈음 가슴앓이와 더불어 풍토병이 겹쳐 한 많은 세상과 이별을 하고 만다. 남해로 유배 온지 햇수로는 4년째, 만 3년 하고도 1개월 23일 되는 날 56세의 나이었다.


어머니의 삼년상을 다 치르기도 전에 세상을 뜬 서포 김만중이었다. 서포가 한 많은 유배를 끝내고 이 세상을 하직하던 날, 봄날의 파란 하늘은 그가 살았던 노도를 환하게 비추었으며, 꽃잎은 꽃비로 변하여 하늘하늘 떨어졌다. 어린 동자는 서포가 가던 마지막 날을 곁에서 지켜주었다.


마지막으로 동자와 주고받은 대화는 이랬다. 눈물로 인사를 올리던 동자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 그대가 있어서 한 많은 삶을 아름답게 거둘 수 있었다며 심히 슬퍼 말라고, 그리고 동자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천천히 이어갔다.


“내 말년의 벗이며 기이하고 다정한 나의 동자님, 내가 죽더라도 슬퍼 마시게나. 우리가 만약 지구 대륙 꼭짓점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시게, 그때 말일세, 앞으로 보나, 뒤를 돌아서 보나,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모두가 북쪽이나 남쪽이 되듯, 우리 희로애락 인생이란 것도 결국은 죽음을 향해 서있는 것이니, 고집멸도苦集滅道, 라, 어떤 삶을 살아가더라도 세월에 대한 미련일랑 버리시고, 한시각이라 하여도 소중히 여기며 후회되는 삶을 살지 마시게나. 착하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하시고 진실로 세상과 마주하시게나. 참 많이 고맙고 또 고마우이…….


서포는 거친 숨을 몇 번 몰아쉬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후부터 적소의 뜰에 심겨있던 매화 두 그루는 시름시름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푸르던 나뭇잎도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주인 잃은 슬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국어를 사랑하고, 우리글을 예찬했던 그는 학사나 사대부 집안에서 지은 한시(漢詩)나 부(賦)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그 진가를 따진다면 국어가 더욱 훌륭하다고 주장했다. 즉 자기나라 말을 자기나라 글로 적어야 한다며 그렇게 함으로써 천지가 감동하고, 귀신과도 통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우리글을 사랑했던 서포 김만중이었다. ♠




















* 다음 주 토요일(17일)에는 숙종 대 노론 사대신 중 한 사람이자, 서포 김만중 사위인 소재 이이명의 유배객 삶에 대해 소개합니다. 유일하게 남해도로 두 번씩이나 유배온 이이명은 서울로 압송되던 중 한강진에서 사사됩니다. 피를 부르는 조선 정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라 어느 시각에서 다뤄야할 지 조심스럽긴 합니다.


* 설명절 연휴 평안하시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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